아이돌 팬덤, 경제적 가치 창출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진화
방탄소년단(BTS)·테일러 스위프트, 거대 팬덤 구축
공통점은 ‘적극 소통’…유튜브·블로그 등 활용해 팬들과 연대해

[커버스토리-팬덤의 경제학]
BTS. (사진=연합뉴스)
BTS. (사진=연합뉴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돌 팬클럽은 ‘음지 문화’였다. 과도하게 열광하는 ‘마니아 이미지’가 강해 팬클럽 활동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두고 ‘빠순이’라는 비하 용어까지 사용했다.

다른 산업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팬들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다 큰 어른들이 얄팍한 상술로 경제 능력도 없는 어린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탐하냐는 지적이었다. 아이돌 문화를 이끄는 ‘팬클럽’의 주축은 교복을 입은 중고등생이었고 성인들에게는 무관심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팬클럽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은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다. 경제 활동을 시작하면서 구매력이 커지자 팬클럽은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팬클럽의 나이대가 3040세대까지 확대되면서 이들은 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 집단으로 진화했다. 특히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거대 팬덤을 거느린 대표 가수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거대 팬덤을 만들 수 있었을까.연대하는 BTS와 아미…365일 공유하는 일상BTS는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약 3년간 공들여 선보인 첫 아이돌 그룹으로, 2013년 데뷔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BTS의 경제적 가치를 46억5000만 달러(약 6조원)로 평가했다. 포천은 지난해 10월 BTS 멤버들의 군 입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매년 5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손실 주체를 BTS 소속사 ‘하이브’가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BTS의 완전체 활동은 2025년으로 예상되는 만큼 총 손실액은 10조원이 넘는 셈이다. 포천은 ‘BTS가 1년간 벌어들이는 수익은 한국 26개 중견기업의 수익을 합친 금액’이라고 전했다.

BTS가 수조원의 경제 가치 효과를 가지게 된 데는 공식 팬덤 ‘아미(ARMY)’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아미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존재한다. 방 의장이 전략적으로 ‘거대 팬덤’을 키운 결과다. 미국 연예뉴스 전문지 벌처(Vulture)는 BTS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아시아 팝이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긴 역사에서 이야기는 보통 짧게 끝난다’며 ‘몇 번의 문화적 실수 이후 그들은 결국 아시아로 돌아간다. 다른 그룹과 BTS의 차이점은 바로 방시혁’이라고 분석했다.

방 의장은 BTS 데뷔 초부터 ‘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이들의 작업 과정과 성장기를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공개하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BTS 멤버들은 틈나는 대로 블로그에 영상 또는 사진을 올려 일상을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했다. 데뷔 소식도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다.
BTS 브이로그. (사진=BTS 유튜브 갈무리)
BTS 브이로그. (사진=BTS 유튜브 갈무리)
데뷔 전부터 전 세계에서 팬들을 확보한 비결이다. BTS는 데뷔 직전 게재한 영상에서 “이게 블로그에 올리는 마지막 콘텐츠가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 호주와 스페인에서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밝혔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적극 활용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정기적으로 유튜브 채널에 개인 브이로그를 공유하며 팬덤을 구축했다. 비활동기도 없다. BTS는 음반을 내지 않을 때도 유튜브 등을 활용해 멤버들의 근황을 알렸다.

이는 당시 아이돌을 우상 또는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신비주의를 고수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존 공식을 탈피하는 선택이었다. ‘소통 우선주의’를 택해 아이돌의 친근함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방 의장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BTS가 팬들과 직접 소통을 통해 쌓은 충성심이 미국에서 성공과 관련이 있다”며 “K팝 팬들은 그들의 아이돌들과 친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데뷔 후에는 미국을 적극 공략했다. 2014~2015년 당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력 시장은 ‘일본’이었지만 방 의장은 미국에 대해 고민했다. 2014년 공개한 첫 정규 앨범 ‘다크 앤 와일드(DARK & WILD)’는 본토 힙합 느낌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녹음을 미국에서 진행했다.

콘텐츠 역시 미국을 타깃으로 제작했다. 벌처는 “의도했든, 우연이든 BTS의 ‘더 모스트 뷰티풀 모멘트(The Most Beautiful Moment)’ 노래의 모든 것은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2015년께 인기를 끈 미국 소셜 미디어 ‘텀블러(Tumblr)’의 취향과 딱 맞다”며 “텀블러는 당시 서양의 K팝 팬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었다. 게다가 ‘화양연화’ 파트1과 2의 앨범 커버는 미국에서 인기를 끈 베이퍼웨이브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베이퍼웨이브는 음악의 특정 장르 또는 그 장르와 비슷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스타일을 의미한다. 2010년대 초부터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1980~1990년대 유행한 음악들을 조합하거나 서양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언어(한자·한글 등)를 이미지에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BTS가 2015년 출시한 ‘화양연화’ 앨범 커버에는 한자로 ‘花樣年華(화양연화)’가 적혀 있다.

방 의장의 전략은 전 세계 팬들의 자발적 연대로 이어졌다. 벌처는 ‘BTS가 미국에서 판매한 10만 장의 물리적 단위는 10만 명의 개별 팬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그들의 앨범 발매를 위해 판매한 18만 장의 티켓도 마찬가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충성심 강한 팬 1명이 음반 1개만 구매하는 게 아니라 수십 개 또는 수백 개까지 구매한다는 뜻이다.

BTS 팬덤의 또다른 키워드는 공감이다. BTS 멤버들은 직접 가사를 쓴다. 10대 때는 10대의 감성으로 썼고 20대 때는 20대의 고민을 녹였다. 위로도 하고 울분도 터뜨리고 때로는 사회 비판적 내용을 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공감의 전제는 진정성이다. BTS의 진정성은 수많은 세계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음악 스타일은 최신의 유행을 따르지만 기존의 힙합 등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은 가사를 접한 팬들은 이들의 음악에 빠져든 것이다. 추구하는 음악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미가 포착된 순간, 인기는 질적 변화의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들을 수 있었고 자신의 삶을 노래에 투영하며 아미들은 서로를 독려하는 거대한 팬덤으로 진화했다. 의미를 갖는 팬덤이 BTS의 다른 면모였다. 유엔에서 연설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팬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사진=테일러 스위프트 유튜브 갈무리)
테일러 스위프트. (사진=테일러 스위프트 유튜브 갈무리)
스위프트 소통으로 쌓아 올린 ‘팬덤 충성도’한국에 BTS와 아미가 있다면 미국에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스위프티(Swifties)가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06년 데뷔한 미국의 여성 솔로 가수다. 미국 시장 조사 업체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53%)이 스위프트의 팬으로 확인됐다. 모닝컨설트는 올해 3~8월 진행된 콘서트 투어 ‘에라스(Eras)’와 관련해 “팝스타가 5년 만에 미국 투어를 한다”며 “미국 인구의 절반이 (콘서트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고 열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팬덤이 구축된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데뷔 초기에는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 중심으로 구축됐다. 스위프트의 1집과 2집의 앨범 장르가 컨트리 음악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컨트리 음악은 미국에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끈 장르다. 스위프트는 데뷔 초부터 백인 중·장년층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후 팝·포크·얼터너티브 록(록음악의 한 장르) 등 다양한 장르 변신을 시도하며 팬덤을 확대했다.
BTS·테일러 스위프트, 어떻게 거대 팬덤 거느리게 됐나[팬덤의 경제학]
2010년대 들어 팬덤의 나이대가 다양해지고 10대 소녀들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팬덤은 48%의 남성과 52%의 여성으로 구성된다. 나이대는 밀레니얼 세대(45%), 베이비부머(23%), X세대(21%), Z세대(11%) 등으로 다양하다.

‘직접 소통’의 결과다. 스위프트가 팬의 브라이덜 샤워(결혼을 앞둔 신부를 위한 파티)에 깜짝 방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2014년 스위프트는 자신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서프라이징 지나’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영상을 올렸다. 자신의 오랜 팬인 지나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 브라이덜 샤워에 참석하는 내용이다. 당시 스위프트가 영상 말미에 “지나야, 너의 인생에 날 초대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한 부분이 팬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이 밖에 스위프트는 앨범 발매 전 팬들에게만 미리 음원을 공개하거나 팬의 결혼식에 방문하는 등 팬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 패션 잡지 리에디션은 ‘테일러 스위프트는 우리 시대 가장 성공적인 팝스타’라며 ‘진정성 있는 이미지와 노래의 스토리텔링, 비교할 수 없는 음악적 재능과 함께 팬과의 소통 능력이 그 이유’라고 밝혔다. 매체는 ‘스위프트는 감정적으로 팬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인스타그램·트위터·텀블러 등 다양한 SNS를 활용해 팬덤과 교류한다. 스위프트는 팬을 알아가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의 겸손함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통으로 구축한 팬들의 충성도는 막강하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스위프트 팬덤은 매우 헌신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경제적 효과는 막강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역별 경제 동향을 담은 보고서 ‘베이지북에서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가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할 정도다.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관계자는 “필라델피아 지역은 관광 회복이 둔화하고 있지만 5월에는 필라델피아 호텔 수익이 높게 집계됐다”고 말했다. 5월은 스위프트가 필라델피아 링컨 파이낸셜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진행한 달이다.

보수적인 Fed 보고서에 스위프트가 등장하자 미국 언론들은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음악 전문 매체 폴스타는 스위프트가 진행하는 여섯째 순회 공연(미국과 해외 포함)에서 13억 달러(약 1조7147억원)의 수입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공연 수입만 집계한 것이다. 그가 가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하면 스위프트와 그 팬덤이 갖는 경제 효과는 웬만한 기업을 뛰어넘고도 남는다는 평가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