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4)
와인 맛 올리는 ‘비결 1번’은 ‘적정 온도’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10월은 와인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집 근처 한적한 곳에 자리만 펴면 준비 끝, 고급 식당 야외 테라스가 부럽지 않다. 특히 하루 평균 기온이 와인 서빙 최적 온도와 비슷한 계절이라 이동이나 보관에도 별 부담이 없다.

좋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라면 이제는 즐기는 일만 남았다. 꼭 와인 전용 잔이 아니면 어떠랴. 종이컵 냄새 나지 않고 ‘버건디 컬러’를 감상할 수 있는 투명 유리 재질이라면 그 어떤 잔이라도 들고 ‘건배’를 외쳐도 좋다.

와인을 맛있고 지혜롭게 마시는 방법은 적정 온도, 숙성 기간, 마리아주(와인과 곁들여 먹는 음식)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적정 서빙 온도’ 이야기로 시작한다.

와인 풍미와 향은 대부분 미각과 후각으로 느낀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마시는 온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 혀나 구강에 분포돼 있는 ‘맛 세포(미뢰)’의 뇌 전달 정보 특성 때문이다.

미지근한 청량음료나 싸늘하게 식은 삼계탕을 상상해 보면 된다. 지난여름 폭염 속에서도 펄펄 끓는 삼계탕에 숟가락이 가는 것은 그동안 쌓인 맛 경험 덕분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첫 잔을 채운 후 시간이 좀 지나고 적정 온도에 가까워질수록 풍미와 향이 짙어진다. 둘째와 셋째 잔에서는 더 많은 복합미를 분리해 잡거나 표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와인을 천천히 마시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와인의 최적 서빙 온도는 몇 도일까. ‘종류에 따라 다르다’가 답이다. 레드 와인은 보통 섭씨 영상 14~18도에서 마시는 것이 적절하다. 요즘처럼 선선한 계절에는 상온에 두고 마셔도 제맛을 보기에 충분하다.

다만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껍질 두꺼운 품종으로 보디감이 묵직(풀 보디)하다면 좀더 높은 온도에서 마셔도 좋다. 반면 피노 누아처럼 껍질이 얇은 포도로 담가 보디감이 가벼운(라이트 보디) 와인은 섭씨 영상 14도 안팎이 적절하다.

여기서 말하는 ‘보디감’은 포도 껍질과 씨에 다량 들어있는 타닌과 알코올이 주는 질감에 대한 표현이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물과 우유, 미숫가루 질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물은 라이트, 우유는 미디엄, 미숫가루는 풀 보디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의 적정 서빙 온도는 섭씨 영상 10도 안팎으로 본다. 풍부한 과일향과 상큼한 맛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다. 다만 오크통 숙성 향을 더 느끼고 싶거나 보디감 있는 고급 화이트 와인은 서빙 온도를 좀 더 올려도 좋다.

한편 스위트나 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이보다 훨씬 더 차가운 섭씨 영상 7~12도가 적절하다. 샴페인 풍미와 기포의 향연을 마지막 잔까지 누리고 싶다면 아이스 버킷 사용을 권장한다.

그렇다고 와인을 마실 때마다 온도계를 가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현장 경험 많은 소믈리에들은 ‘레드 와인은 병에 손등을 댔을 때 약간 차가운 느낌이 적정 온도’라고 말한다.

화이트나 스파클링 와인은 직접 마셔보고 파악하는 것이 정확하다. 병 표면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정작 와인은 미지근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 잔은 어떻게 잡으면 좋을까. 레드 잔이야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스템 부분(중간 가느다란 다리) 잡기를 권장한다. 체온이 와인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한편 가정 일반 냉장고에 와인을 보관해도 될까. 무방하다. 다만 마시기 두어 시간 전에 미리 꺼내 오픈(브리딩)해 놓아야 적정 온도를 맞출 수 있다.

특히 고가 와인은 서빙 온도에 훨씬 더 민감하다. 너무 차면 떫은맛과 신맛이 강해 큰 기대를 갖고 와인 모임에 참석한 손님들이 크게 실망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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