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도와주세요.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경쟁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경제성장률이 뒷걸음질할 것으로 봅니다. 제조업 주문량은 15% 줄었습니다. 최고경영자(CEO) 100명 중 53명은 계획했던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 얘기일까. 혹시 한국이 아닐까. 너무나 비슷한데? 다행히도 아니다. 독일 얘기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타블로이드 신문인 빌트(Bild)는 지난 8월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당시 휴가 중인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기사를 통해 ‘경제 모든 분야에서 경보가 울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독일은 세계 4위 경제 대국이다. 제조업 강국이다. 그런 독일이 휘청거리고 있다. 올 성장률은 마이너스 0.3%를 기록할(IMF) 것으로 추정된다. G7(선진 7개국) 국가 중 유일한 역성장이다.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에서 값싼 에너지를 수입해 왔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타격을 받았다. 중국 수출 증대로 재미를 봤지만 중국 경제 침체로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에 매달리다가 전기차나 반도체 등 신산업으로의 전환이 늦었다. 고령화로 고숙련 노동자의 부족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독일의 경제 위기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경제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도 제조업 비율이 27.9%에 달한다. 독일(20.8%)보다 오히려 높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48%로 독일(50%)과 맞먹는다. 총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나 된다. 독일 수출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10.6%)보다 역시 높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현상도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독일 못지않게 한국 경제도 쉽지 않다. 올 성장률은 1.5%에 그칠 전망(경제협력개발기구)이라 한다. 외환 위기 이후 25년 만에 일본(1.8%)에 역전당할 상황이다. 수출은 12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가계 부채는 GDP의 108%까지 늘었다. 기업 부도율과 연체율도 증가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장사도 40%(대기업 제외)나 된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관료주의가 확산된다지만 독일 정도는 아니다. 독일에서 창업 허가를 받으려면 120일이나 걸린다. 한국에선 이르면 1주일 만에 허가를 받는다. 반도체 편중이 문제라지만 2차전지와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서도 한국 기업의 약진은 눈부시다.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한 스타트업들의 도전은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외부 환경에 쉽게 꺾일 한국 경제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독일과 아주 다른 점이 거슬린다. 바로 정치권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그저 싸우는 게 일이다. 지난 1년간 한 일이라곤 ‘방탄 시비’밖에 없다.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도 나 몰라라다. 기업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법인세 인하 등에는 관심조차 없다.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 연금 교육 개혁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독일은 2000년대 초에도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이를 노동·연금 개혁을 중심으로 한 ‘하르츠 개혁’을 통해 극복했다. 정치권의 결단이 바탕이 됐다. 지금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도와주세요.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경제가 정치권에 보내는 절절한 호소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