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테슬라·아마존·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도 로봇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고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그만큼 높은 성장성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극심해진 구인난과 노동력 부족, 가파른 임금 상승, 노동자 안전 문제, 자동화 수요 확대는 기업들이 로봇 도입 결정에 가속페달을 밟게 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전문 서비스 로봇이 미래 로봇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전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이 2020년 250억 달러에서 2030년 1600억~260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로봇 시장은 크게 서비스용 로봇과 산업용 로봇으로 나눌 수 있다. 서비스용 로봇은 물류, 접객, 의료, 전문청소, 고객응대 등을 수행한다. 산업용 로봇은 주요 제조 공정에서 조립, 용접, 적재, 포장·물류 등을 수행한다. 산업용 로봇은 주요 제조업에서 도입이 상당 부분 진행된 성숙시장이지만, 서비스 로봇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향후 로봇산업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한화, 미래산업 로봇 시장 출사표
기업들은 다가오는 로봇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앞다퉈 로봇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한화와 두산도 로봇사업 대전에 참전했다. 이들 그룹은 오너일가가 직접 로봇사업의 경영 지휘봉을 잡았다.
두산로보틱스는 두산그룹 오너 4세인 박인원 대표를 2022년 말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힘을 싣고 있다. 박 대표는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삼남이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2015년 설립된 두산로보틱스는 2018년부터 줄곧 국내 협동로봇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선 점유율 5.4%로 4위 수준이다. 최소 5kg에서 최대 25kg까지 견딜 수 있는 13개 협동로봇 라인업을 바탕으로 제조, 서비스, 의료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총 40여 개국, 100여 개의 국내외 세일즈 채널을 기반으로 전체 매출의 약 60% 이상을 해외(북미·유럽 등)에서 창출하고 있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꼽히던 두산로보틱스는 10월 5일 성공적인 코스피 데뷔전을 치렀다. 박 대표는 상장 기념식에서 “두산로보틱스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한 생태계 구축, AI 및 AMR(자율주행로봇) 기술 내재화 등을 통해 협동로봇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에선 10월 4일 한화로보틱스가 공식 출범했다. (주)한화 모멘텀 부문의 자동화(FA) 사업부 중 협동로봇과 무인운반차(AGV), 자율이동로봇(AMR) 사업을 분리한 회사다. 한화로보틱스 지분은 (주)한화가 68%, 호텔앤드리조트가 32% 보유하고 있다. 2022년 120억원 정도였던 매출은 2031년 21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로봇사업은 한화그룹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다. 김승연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본부장(전무)이 한화로보틱스의 전략기획 부문을 총괄한다. 김 전무는 지난 9월 경기 판교 한화미래기술연구소를 직접 찾아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게 로봇산업의 핵심”이라며 “한화로보틱스를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로보틱스는 협동로봇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산업용 협동로봇뿐 아니라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서비스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라인업을 늘려갈 계획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공동 사업 참여자로 나선 만큼 한화가 운영하는 리조트·호텔·식음료(F&B) 등 사업장에도 첨단 로봇기술이 도입될 전망이다.
한화로보틱스는 최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공작기계 전시회에서 최대 14kg의 하중을 들 수 있고, 1420mm를 구동할 수 있는 협동로봇 ‘HCR-14’를 선보인 바 있다. 한화로보틱스는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해 미국·유럽 등 전 세계 30곳 이상의 거점을 통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현재까지 한화 협동로봇 판매의 60% 이상이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이뤄졌다. 보행 보조·달 탐사까지…‘신상 로봇’ 쏟아진다
삼성전자·현대차·LG전자는 로봇사업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사업에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로봇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868억원을 들여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로봇 개발업체인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14.99%를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지분율을 59.94%까지 늘릴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계약도 맺어 향후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해 최대주주에 오를 가능성도 열어놨다.
삼성전자는 투자 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서 연내에 자율주행 서빙 로봇을, 2024년 상반기에는 물류로봇(AMR)을 선보여 로봇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웨어러블 로봇 ‘봇핏(Bot Fit)’을 출시할 계획이다.
봇핏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 2019’에서 선보였던 EX1(젬스힙)의 정식 명칭이다. 봇핏은 시니어 케어와 운동 보조를 아우르는 헬스케어 로봇으로 착용 시 다이어트 측면에서 칼로리 소모와 산소 섭취량이 각각 61%, 75%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 분야로 로봇을 선택했다. 2021년 6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뒤 제조 분야뿐 아니라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미래항공모빌리티(AAM)에도 로봇기술 접목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우주 분야로 모빌리티 영역을 확장해 한국천문연구원 등 국내 6개 연구기관과 달 탐사 전용 로버(이동형 로봇)도 개발 중이다. 제조 현장에도 2021년부터 ARM을 도입해 공정 효율성을 높이고 산업재해를 줄이고 있다.
국내 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해외 생산 거점에도 적용한다. 최근 현대위아는 2024년부터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조지아 공장)과 현대모비스 미국 공장라인에 AMR 물류 로봇을 공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LG전자는 2017년 인천국제공항에서 LG 클로이 가이드봇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클로이’ 브랜드를 통해 서브봇(서랍형·선반형)·바리스타봇·셰프봇·캐리봇 등 7종의 로봇 라인업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BS사업본부 로봇사업담당 산하에 해외영업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해외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인력 부족과 임금 인상 여파로 서비스 로봇을 찾는 해외 사업장이 늘고 있어 일본 식당 프랜차이즈와 미국 식당·마트 등에 클로이 서브봇을 공급하며 해외 서비스 로봇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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