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알겠는데요, 그걸 해야 하는 제가 너무 힘든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풀어내야 하는 것 또한 리더의 숙제다. 이를 위해 기억했으면 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긍정’이다. 말 그대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불평이나 불만을 갖기보다 ‘잘될 거야’라는 마인드로 조직을 이끌자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좀 위험하다. 긍정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낙천이 아닌 긍정을 추구해야퀴즈 하나. 당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고 가정해 보자. 언제 이 곳을 나갈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른다. 이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이들은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어. 이제 죽는 일만 남았어’라며 인생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반면 ‘난 운이 좋으니까 이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나갈 수 있을 거야’라며 희망 가득한 기대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어떤가. 전자보다 후자가 긍정적인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이니까 후자 쪽을 택할 것인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두 개의 보기 중 답은 없다.
정답은 ‘수용소를 나갈 때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기’다. 이게 긍정적인 사람이다.
무슨 말이냐고. 전자의 사람을 우리는 비관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해 버린다. 그럼 후자 유형은 무엇일까. 낙천주의자다. 크리스마스에 실패하면 삼일절 특사로, 그것도 안 되면 광복절에 특사로 풀려나길 기대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다 잘될 거야’라고 생각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기대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반복된 상실감에 따른 고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진짜 긍정적인 사람은 갇혀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이 얘기는 베트남전쟁 때 하노이 힐턴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의 이야기다. 실제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더 열심히 운동을 했고, 함께 수감된 포로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암호를 만들어 비밀 대화를 나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긍정이다. 짐 콜린스는 그 장교의 이름을 따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잘 풀릴 거야’라고 낙관한 회사들은 하나같이 무너졌고, 어려운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 대응한 회사들이 살아남았다는 것. 그만큼 막연한 낙천주의는 위험하다. 긍정과 낙천, 비슷한 말 같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리더가 낙천이 아닌 긍정을 추구하며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다.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업무를 하려면, 스스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일주일의 행복’을 꿈꾸며 구매하는 복권, 이 당첨 결과에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없다.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의 날씨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나의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면, 나의 삶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출근길의 교통체증은 어떤가. 어쩔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건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출근 시간을 앞당기면 어떨까. 30분 일찍 침대에서 벗어나는 건 힘들 수 있지만 교통체증,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는 고통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조직에서의 업무관리도 마찬가지다. 상위 리더로부터 갑작스러운 업무 변경 지시가 떨어졌을 때 불평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와중에 기존에 진행해 왔던 결과물 중 활용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찾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다.
타 부서의 업무 협조가 잘 안 돼서 일의 진척이 늦어진다면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냐고 탓하고 싸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론 답답했던 내 속은 풀릴지 몰라도 정작 중요한 일의 결과엔 별 영향을 못 미친다.
지금이라도 우리 부서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도와주면 더 빨리 처리가 될지, 그리고 상대 팀이 작게라도 도와줄 수 있는 업무는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게 낫다. ‘영향력’에 집중하는 리더의 태도에서 구성원들 역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게 된다.
오해하지 말자. 구조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으니 체념하고 있는 현실에 순응해 살라는 게 아니다.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는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일단 지금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는 노력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것을 바꾸기 위해 힘쓰는 것을 구분해 생각하자는 뜻이다. 명확히 말하는 습관을 길러라구성원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직원들이 리더에게 힘든 것을 얘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 중에 리더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문제다.
이럴 때 리더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왜 내가 해줄 수도 없는 걸 얘기하냐’는 생각이 들면 ‘짜증’이 난다. 이건 앞서 얘기한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이 반응은 조금만 미뤄두자.
그렇다면 구성원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도록 일단 ‘알겠다’고 답을 해주면 될까. 아니다. 해줄 수 없는 일에 함부로 수락하는 건 위험하다. 리더의 약속이 ‘공수표’라는 걸 알게 되면 리더에 대한 신뢰만 깎일 뿐이다. 이때 필요한 게 ‘명확한 소통’이다. 앞서 설명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대응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요청 사항에 리더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셋 중 하나다. 첫째는 ‘해주겠다’는 약속.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둘째는 “언제까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하기다. 구성원의 상황을 들으니 필요한 것임은 알겠으나 조직 차원에서 가능한 지원인지 검토가 필요한 경우다. 그리고 실제로 상위 리더와 논의를 해 보고, 기한 내에 답변을 주자.
마지막 셋째는 ‘안 된다’고 밝히는 것이다. 이때 꼭 필요한 게 ‘이유’다. 전례가 없다거나 회사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괜찮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명확히 설명해야 구성원들이 ‘왜곡된’ 기대를 갖지 않는다.
가뜩이나 힘든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니,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리더의 자리는 힘들다. 그 고민의 무게를 조금 덜기 위한 팁을 하나 제시한다. 구성원들과 함께 ‘설레는 끝 그림’ 가져보기다.
하루하루의 업무에 치이다 보면 기분 좋은 경험보다 힘겨움을 느낄 때가 훨씬 더 많다. 그 힘듦을 이겨내려면 마음속 어딘가에 작게라도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거창한 보상이 주어지면 좋겠지만, 이것이 기대감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는 성취감이나 내가 새로운 걸 알아내 조금은 성장했다는 느낌 같은 것도 가능하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업무 과정에서 한 템포 멈추고 ‘끝 그림’을 떠올려 보며 구성원들과 함께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면 어떨까. 이것이 리더에게 필요한 긍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김한솔 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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