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위니아전자(옛 동부대우전자) 광주공장. 사진=위니아전자
위니아전자(옛 동부대우전자) 광주공장. 사진=위니아전자
위니아전자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유위니아그룹 전반으로 파장이 번지고 있다.

주요 계열사인 위니아전자와 자회사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이 9월 2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25일에는 대유위니아그룹의 중간지주사 격인 대유플러스가, 10월 4일에는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옛 위니아딤채)가 36억원 규모의 만기어음을 막지 못하고 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각각 신청하며 그룹 전체가 격랑에 휩싸였다.

대유위니아그룹의 지배구조는 ‘박영우 회장 및 특수관계자→동강홀딩스→대유홀딩스→계열사’로 이어진다. 계열사 간 지분출자나 자금대여, 지급보증 등이 얽혀 있어 주력 계열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가 흔들리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위니아전자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들이 줄이어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며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져 줄도산 리스크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위니아전자
사진=위니아전자
위기 진원지는 ‘대우 뿌리’ 위니아전자

옛 대우전자의 후신인 위니아전자가 그룹 재무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클라쎄’ 브랜드로 세탁기·냉장고 등을 판매해온 위니아전자는 2021년 1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면서도 순손실 758억원을 냈고, 2022년에는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재무제표를 공시하지 않았다.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전자제품업체 위니아도 상황이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 연결 영업손실은 69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영업손실 437억원)보다 적자가 확대됐다. 상반기 말 기준 자본잠식률은 374%다.

수년간 이어진 경영난으로 인해 위니아전자와 위니아는 임금 체불 사태도 겪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10월 4일 고용노동부를 통해 확인한 대유위니아그룹 내 가전 3사(위니아·위니아전자·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의 체불 임금 규모만 총 553억원에 달한다. 위니아전자 364억원, 위니아 120억원,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이 68억원 규모다.

2022년 5월 취임한 박현철 위니아전자 대표는 직원 400여 명의 임금과 퇴직금 약 302억원을 체불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박현철 대표는 대유위니아그룹 오너인 박영우 회장의 형 박영호 씨의 아들로 박 회장에겐 조카다.

위니아전자는 중국 톈진 공장 매각에 이어 3000억원 규모의 멕시코 공장 매각과 회생절차 등으로 임금 체불 변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영우 회장은 대유위니아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과 임금 체불 논란으로 10월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소환된 상태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위니아, 36억원 못 막아 부도

광주에 본사를 둔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450여 곳에 달하는 협력사들도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해 줄도산 위기에 빠졌다. 위니아는 전자어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대금을 지급해왔는데, 금융권 차입금을 갚지 못하면서 어음 할인을 받았던 협력사들이 이를 대신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광주상공회의소는 10월 10일 호소문을 통해 “임금·퇴직금 체불액 규모가 550억원을 훌쩍 넘었으며, 1년 이상 지속한 임금 체불로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자금난 등이 장기화하면 협력사의 줄도산도 피할 수 없다”며 금융권과 정부, 지자체에 대책을 촉구했다.

대유위니아그룹은 1999년 광주에서 현대차·기아의 협력업체로 출발해 기반을 다졌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2010년 창업상호저축은행(현 스마트저축은행), 2011년 몽베르컨트리클럽 골프장, 2014년 위니아만도(현 위니아), 2018년 동부대우전자(현 위니아전자)를 각각 인수해 규모를 키웠다.

견실한 중견그룹이었던 대유위니아그룹은 왜 위기에 빠졌을까. 시장에선 무리한 사명 변경과 체질 개선 실패, 경영 실책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2022년 2월 미국 올랜도에 위치한 오렌지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미국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인 ‘KBIS(The Kitchen & Bath Industry Show)에 마련된 위니아전자 부스. 사진=위니아전자
2022년 2월 미국 올랜도에 위치한 오렌지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미국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인 ‘KBIS(The Kitchen & Bath Industry Show)에 마련된 위니아전자 부스. 사진=위니아전자
1. ‘대우’ 떼고 내리막길

대유위니아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위니아전자의 주력 생산시설인 중국 톈진 공장이 셧다운되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로 매출이 줄고 재고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악재도 겹쳤다.

하지만 업계에선 ‘대우’ 브랜드를 뗀 것을 가장 큰 패착으로 본다. 2019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사명을 대유그룹에서 대유위니아그룹으로 변경했다. 2020년엔 대우 상표권을 갖고 있던 포스코인터내셔널과의 상표권 계약이 만료되자 위니아대우에서 ‘대우’를 떼고 위니아전자로 사명을 바꿨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조차 해외에서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은 대우 브랜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경영진이 해외에서 생소한 브랜드로 취급되는 위니아를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니아전자는 대우 브랜드를 뗀 이후 해외시장에서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하는 위니아전자는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잃고 시장 지배력이 약화했다.

대우 브랜드는 1999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한국에선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중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남미 등 해외에서 여전히 ‘한국 가전제품 명가’ 이미지로 인지도가 높다.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 시절 구축한 해외 영업망도 탄탄하다.

대우전자는 1993년 고장 없는 튼튼한 제품을 만들자며 ‘탱크주의’를 마케팅 슬로건으로 내걸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협하며 가전 빅3로 불리기도 했다.

대우 상표권을 보유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163국의 총 3483건에 달하는 상표권을 통해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로열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위니아전자가 내놓은 대우 브랜드는 2021년 튀르키예의 가전업체 베스텔이 사들여 10년간 대우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베스텔은 지난 9월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에서도 대우 로고와 이름을 내건 가전제품들을 선보인 바 있다.

2. 사업 다각화로 빨래방·로봇까지 손대

2014년 인수한 위니아의 체질 개선 노력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5년 출시된 위니아의 김치냉장고 브랜드 ‘딤채’는 김치냉장고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지만, 딤채 판매 비중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사업구조의 편중이 심했다.

김치냉장고는 김장철인 하반기가 최고 성수기라 그동안 상반기에 만성적 적자를 내고 하반기에 이를 만회하는 수익구조였다. 하반기 김치냉장고 실적이 부진할 경우 유동성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 사업 다각화가 절실했다.

위니아는 종합가전업체로서 김치냉장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에어컨·냉장고·에어가전·밥솥 등 생활가전 제품군을 늘려갔다. 대유위니아그룹은 위니아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일환으로 2018년 동부대우전자(현 위니아전자)를 1200억원에 인수한다.

하지만 삼성·LG전자의 아성을 넘기 어려웠다. 업계 관계자는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한 뒤 연구개발(R&D) 투자를 소홀히 해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주력인 김치냉장고에서도 대기업들에 시장점유율을 내주게 됐다”고 말했다.

손을 댄 신사업들도 지지부진했다.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2017년 빨래방 사업에 진출했고 2022년엔 로봇사업에도 진출했다. 2022년 3월 사명을 위니아딤채에서 ‘딤채’를 뺀 위니아로 바꿨다. 하지만 유의미한 매출 상승을 끌어내진 못했다는 평가다.
대유위니아타워 종합R&D센터 전경. 사진=위니아
대유위니아타워 종합R&D센터 전경. 사진=위니아
3. 550억원대 임금 체불…남양유업 인수 헛발질

일각에선 경영진의 잇따른 실책이 대유위니아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남양유업 인수전이 거론된다. 대유위니아그룹은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와 분쟁 중이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백기사로 등판했다가 결국 결별하면서 320억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날릴 처지에 놓여 있다.

대유위니아그룹은 2021년 11월 남양유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상호 협력 이행협약을 체결했다. M&A 주체는 대유홀딩스다. 홍원식 회장이 한앤컴퍼니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대유위니아그룹에 남양유업을 매각하기 위해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의 법정다툼이 마무리되면 홍 회장 측이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 37만8938주를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설 계획이었다. 거래 금액은 약 3200억원이었다. 대유홀딩스는 계약금으로 약 320억원을 지급하며 인수 의지를 드러냈지만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의 소송 과정에서 점점 더 불리해지자 손을 떼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홍 회장에 지급한 32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당초 법조계에선 대유위니아그룹의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예상을 깨고 1심에서 홍 회장이 승소했고, 대유위니아그룹은 항소했다. 대유위니아그룹은 경영난에 소송비용 부담까지 늘어나자 곤혹스러운 처지다.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협력사들은 대유위니아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도 지난 2월부터 그룹사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박영우 회장이 미국 뉴욕에 고가 빌딩을 매입한 점 등에 대한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박영우 회장은 2022년 2월 위니아아메리카유한회사를 통해 미국 뉴저지 주 포트리 소재 대형 오피스빌딩인 사우스폴 빌딩을 약 3100만 달러에 매입했다가 위니아전자 임금체불 사태가 빚어지자 최근 다시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사들은 “국내 김치냉장고 브랜드 1위 업체가 불과 2년 만에 거액의 적자로 전환해 법정관리 사태가 발생한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그룹 지배 관계에서 주식 흐름도 비정상적이어서 정부나 국회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