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를 운영하는 마크 파버는 정반대였다. 그는 1987년 미국 블랙먼데이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Dr. Doom)’이란 별명을 얻었다. 둘의 희비가 엇갈린 것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한창일 때였다. 코언은 낙관론을 견지했다. 반면 파버는 자산 처분을 권했다. 이후는 알려진 대로다.
경제학자나 시장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비관론을 견지하는 것이 어쩌면 편리하다. 줄기차게 비관론을 외치다 실제 위기가 닥치면 ‘족집게’로 칭송받기 때문이다. 월가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다르다. 투자가 늘어야 수익이 증가하는 만큼 애써 낙관론 편에 서려고 한다.
그런 월가에서 최근 비관론이 많아졌다고 한다. 영화 ‘빅 쇼트’의 모델인 마이클 버리 시온자산운용 최고경영자는 최근 포트폴리오의 90%를 증시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연 7%대 금리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지 소로스와 워런 버핏도 폭락장을 대비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JP모건은 얼마 전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시작되는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비관론이 많아지는 것은 급등하는 금리 때문이다. 상승폭도 가파르고 속도도 빨라서다.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1981년 연 15.8%까지 오른 뒤 추세적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2020년 6월에는 0.66%까지 떨어졌다. 이후 상승세로 반전해 올 10월 초에는 5%에 육박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영향이 컸다.
금리가 급속히 오르면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 대출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계와 기업 모두 상환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국채를 찍어 풍족한 살림을 영위했던 정부도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금융위기도 ‘낮은 금리→무차별적 투자→거품 생성→금리인상→거품 붕괴’라는 과정을 거쳤다. 1637년의 튤립버블은 네덜란드가 금리를 연 8%에서 2.5%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촉발됐다. 1929년 대공황도 Fed가 기준금리를 3.5%에서 6%로 인상한 것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1980년대 활활 타올랐던 일본 부동산 버블도 금리인상에 따라 붕괴됐다. ‘금리의 역습’이란 단어도 이래서 나왔다.
문제는 미국 금리 상승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도 영향을 받는다. 부진한 경기를 감안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 상황이지만, 미국 기준금리와의 격차(2.0%포인트)를 더 벌릴 수는 없다.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금리를 덜컥 올릴 수도 없다. 가계대출과 자영업 대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연체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통째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너무 비관적인 얘기만 했다. 희망적인 소식도 많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 올 들어 처음으로 조(兆) 단위 영업이익(2조4000억원)을 냈다. 10월 초 하루평균 수출액은 13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 부진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의 역습을 되새겨야 할 시간이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비하는 위기는 오지 않는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이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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