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인 1980년대 초반 짜장면 값은 5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끼리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를 모아 짜장면과 단무지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기억이 새롭다. 그 짜장면 값이 7000원을 넘었다고 한다. 10월 서울지역 평균 짜장면 값은 7069원(한국소비자원)이다. 1년 전(6300원)보다 12.2% 뛰었다. 40년 전과 비교하면 14배 올랐다.
짜장면만이 아니다. 삼계탕과 비빔밥은 1만6846원과 1만500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9%와 8.8% 상승했다. 냉면 값도 1만3000원을 넘었다. 삼겹살 1인분(200g)도 2만원에 육박(1만9253원)했다.
오비맥주 값도 7%가량 올랐다. 소맥(소주+맥주)에 삼겹살을 먹으려면 1인당 3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회식은커녕 점심 먹기도 힘들다”는 직장인들의 호소가 엄살이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국제 정세 불안과 이상기후 등으로 국제유가와 식재료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문제는 생필품 중심으로, 물가 오름폭이 가파르다는 점이다. 10월 배추 한 포기 값은 6587원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5476원)보다 20.3% 뛰었다. 대파, 쪽파, 깻잎 값도 한 달 새에 20% 이상 상승했다. ‘김치플레이션’이나 ‘삼겹살로 깻잎을 싸 먹어야 할 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먹는 것만이 아니다. 서울 택시비가 26% 오른데 이어 서울 지하철 요금과 시내버스 요금도 각각 150원과 300원 인상됐다. 전기요금도 시기만 문제일 뿐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경기는 바닥을 기는데 물가만 오르니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원유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9월 배럴당 93.25달러로 전달보다 8%가량 올랐다. 이 영향으로 국내 수입 물가는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다시 3%대로 올라섰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유가는 150달러를 넘어서고 내년 세계 물가상승률은 6.7%에 이를 것(블룸버그)이라는 전망도 있다.
역사적 변곡점을 이뤘던 여러 사건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금이고, 다른 하나는 물가상승이다. 세금의 무서움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이라는 얘기도 있으니 말이다. 미국 독립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1773년)도 세금징수가 도화선이 됐다.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도 버금가는 작용을 했다.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린 1917년 2월혁명과 2010년에 불었던 ‘아랍의 봄(재스민 혁명)’의 이면에는 식량값 폭등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고 장기간 긴축기조를 고수하는 것도 인플레이션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서다.
너무 비약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한 것에 대한 원인 분석이 많다. 소통 방식, 인사 내용, 편중된 메시지 등 다양하다. 어느 언론인은 SNS에서 이례적으로 물가상승을 한 원인으로 짚었다. “물가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고통이므로 자유민주주의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라는 한 야당 의원의 말도 인용했다. 생활물가 폭등이 민심이반을 불렀다는 분석이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완력으로 마냥 누를 수도 없다. 최근 물가상승은 해외 요인이 커서 더욱 그렇다. 정밀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우선돼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매일같이 물가관리회의를 여는 쇼라도 해야 한다. 민생은 말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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