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스피어 공연장에 거대한 눈알이 등장했다. 사진=스피어 인스타그램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스피어 공연장에 거대한 눈알이 등장했다. 사진=스피어 인스타그램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 한복판에 들어선 초대형 돔형 공연장 ‘스피어(Sphere)’가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스피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형 건축물로 높이 111.6m, 바닥 지름 157.3m이며, 외벽에 설치된 스크린 면적은 5만3000㎡에 달한다. 외벽에는 고해상도 LED 스크린(엑소스피어) 120만개가 1만7500석 규모의 객석을 360도로 감싸고 있어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도 생동감 넘치는 영상을 즐길 수 있다.

16만7000개의 스피커가 탑재된 장내에는 어느 객석에서든 동일한 음향을 즐길 수 있어 콘서트, 운동 경기 등을 개최하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스피어는 10월 2일(현지 시간) 아일랜드 출신의 록밴드 U2의 ‘U2: UV Achtung Baby Live at Sphere’ 콘서트를 시작으로 공식 오픈했다. 오픈 전부터 거대한 눈알, 농구공, 지구, 달, 성조기 등을 역동적인 영상 콘텐츠로 펼쳐보여 화제가 됐다.

스피어는 미국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매디슨스퀘어가든(MSG) 스피어 엔터테인먼트가 카지노회사 라스베이거스 샌즈와 합작해 건립됐다. MSG 그룹은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미국프로농구(NBA) 구단 뉴욕 닉스 등을 소유한 돌란 가문이 운영한다. 착공 후 완공까지 7년이 걸렸다. 코로나19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늘어 총 23억 달러(약 3조1000억원)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록밴드 U2 콘서트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스피어 공연장. 사진=U2 웹사이트
록밴드 U2 콘서트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스피어 공연장. 사진=U2 웹사이트
7년째 표류 중인 CJ라이브시티 사업

한국에도 스피어에 필적할 아레나급 음악 전문 공연장이 추진되고 있다. CJ그룹이 경기 고양시에 건설 중인 ‘CJ라이브시티’다.

CJ라이브시티는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미국의 AEG와 손잡고 경기 고양시 장항동 한류월드 30만2265㎡(약 10만평) 부지에 1조8000억원을 들여 실내 2만 명, 야외 4만 명 등 총 6만 명 수용이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 아레나와 한류 콘텐츠 체험장, 호텔 등 상업시설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CJ라이브시티는 2015년 CJ ENM이 경기도가 공모한 ‘K-컬처밸리’ 사업에 단독 응모해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K-콘텐츠의 성지로 만들겠다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주목받았으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류천 수질개선 문제, 전력 수급 차질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3차례에 걸친 사업안 변경, 각종 인허가 지연에 건설경기 악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며 공사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사업안을 3차례나 변경하게 된 것은 사업 대상자 선정 직후인 2016년 터진 ‘최순실 게이트’로 특혜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경기도의 행정사무조사로 1년 이상 사업이 중단됐다. 당초 놀이기구 중심의 테마파크를 K팝 아레나와 상업시설 중심으로 변경했고, 준공 기한도 원래 계획보다 늦춰진 2024년 말까지가 됐다.
CJ라이브시티 아레나 조감도. 사진=CJ라이브시티
CJ라이브시티 아레나 조감도. 사진=CJ라이브시티
공사비 급증에 공사 중단…사업 축소되나

7년째 사업이 표류하며 적자가 누적돼 자본잠식 상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순차입금의존도는 89.9%에 달한다. 지분 90%를 보유한 모기업인 CJ ENM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으나 CJ ENM도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등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

CJ라이브시티는 공사비 급증으로 지난 4월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시공사인 (주)한화 건설부문과도 공사비를 둘러싸고 재협의를 하는 등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2024년 준공이 목표였으나 3월 말 기준 공정률이 17%에 불과해 준공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겹치자 CJ라이브시티 측은 최근 국토교통부의 민관합동 PF조정위원회에 최근 사업 조정 신청을 냈다. CJ라이브시티 측은 사업협약 체결 이후 경기도의 행정사무조사, 개발계획 변경 허가, 아레나 착공 허가 등에 약 50개월이 소요됐고, 이후에도 대용량 전력 수전 유예, 한류천 수질개선 지연 등이 이어져 민간사업자 자력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CJ라이브시티가 사업 기간 연장과 일부 사업부지 조정 등을 요청하는 사업계획조정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래 계획보다 사업 규모가 더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CJ라이브시티는 "사업 축소는 조정위의 객관적 판단을 돕기 위해 산출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일뿐"이라며 "사업 축소가 아닌 '사업 계획 변경'"이라고 설명했다.

CJ라이브시티는 K팝 공연 전문 아레나의 선두주자 격이다. ‘국내 최초 아레나, 세계 최초 K팝 공연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업이 장기간 표류한 데 따라 핵심 콘셉트를 후발주자에 빼앗길 수도 있다.

서울·경기·부산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 투자를 유치해 CJ라이브시티와 유사한 K팝 전문 공연장 콘셉트의 복합문화단지 조성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어서다. 현재 서울 창동(서울아레나), 경기 하남(MSG 스피어) 등에서 아레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선 기존 공연장과의 중복 문제와 유치 과열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사 중인 스피어 공연장. 사진=MSG 엔터테인먼트
공사 중인 스피어 공연장. 사진=MSG 엔터테인먼트
서울·하남도 K팝 공연장 유치전…과열 우려

서울 도봉구 창동역 인근에 들어설 K팝 전문 공연장인 ‘서울아레나’는 올해 11월 착공에 들어간다. 카카오가 2022년 4월 서울아레나 사업의 시행자로 선정됐으나 인허가와 공사비 인상으로 착공 시기를 미뤄왔다.

서울아레나는 연면적 11만9096㎡ 부지에 아레나급 음악 전문 공연장(1만8269석)과 중형 공연장(2010석), 대중음악 지원 시설 등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최대 2만8000명까지 동시에 수용할 수 있어 서울 동북권 핵심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당초 준공 시점은 2025년이었지만 실시 계획 승인이 약 5개월가량 늦어진 만큼 업계에선 준공 지연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한 송도국제도시 8공구 R2·B1·B2블록(총 21만㎡) 부지 일대에 6조8000억원 규모의 ‘K팝 콘텐츠 시티’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는 백지화됐다.

K팝 콘텐츠 시티 조성 사업이 가수 겸 배우인 김민종 씨가 공동대표인 KC컨텐츠에 특혜를 줬다는 논란에 휩싸이는 등 관련 의혹이 계속되고 있고 지역 주민 간 갈등도 해결되지 않아 원활한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송도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구형 대규모 복합 공연장인 스피어를 유치할 계획이었으나 프로젝트가 무산돼 그동안 유치에 공들였던 스피어를 놓치게 됐다.

스피어의 송도 유치는 무산됐으나 하남 유치에는 청신호가 커졌다. 스피어를 운영하는 MSG의 데이비드 스턴 부회장은 지난 5월 하남시와 ‘스피어 하남’을 짓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MSG는 라스베이거스에 이어 영국 런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도 스피어를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아시아의 거점으로 K팝에 경쟁력을 지닌 한국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남시는 ‘세계 최고의 한류문화도시 하남’ 건설을 목표로 미사섬에 K팝 공연장과 세계적인 영상 스튜디오가 있는 ‘K-스타월드’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MSG가 먼저 K-스타월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으며 2025년 착공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남시는 스피어를 유치해 거대한 공 모양의 최첨단 K팝 공연장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시는 세계 1위 공연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 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았다. 2만 석 규모 최첨단 아레나 공연장과 전시 관람 체험 시설, K-콘텐츠 관련 글로벌 인재육성과 콘서트 이용객 수용을 위한 숙박시설 등이 포함된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