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링크가 앞당긴 별들의 전쟁]
우주 제패 나선 억만장자들…"우주 소프트웨어 선점하라"[스타링크가 앞당긴 별들의 전쟁①]
“지구는 1000조 달러 경제가 될 수 없지만 우주는 가능하다.”

우주 투자 전략 컨설팅사인 스페이스어드바이저스의 로버트 제이콥슨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우주산업 시장 규모는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1000조 달러는 우리 돈으로 135경원이다.

IMF가 올해 펴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세계 경제의 국내총생산(GDP)은 105조 달러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보다 10배가량 큰돈이 우주에 묻혀 있다는 말이다.

불가능한 전망 같지만, 미국은 최근 더 큰 숫자를 향해 본격적으로 우주로 비행을 시작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10월 5일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 로켓을 이용해 ‘16 프시케’ 소행성 탐사선을 발사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을 공전하고 있는 이 소행성의 가치는 무려 1000경 달러로 추정된다. 행성이 철, 니켈, 금, 백금, 텅스텐으로 이뤄져 있어 채광 시 지구에서 필요한 자원을 우주에서 끌어다 쓸 수 있게 된다.

우주를 발판으로 ‘조만장자’가 되기를 꿈꾸는 기업인들이 너도나도 우주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인류의 발길이 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황금’이 묻혀 있다고 믿으며 신대륙 탐험에 나섰던 16세기 유럽인들처럼 ‘뉴 스페이스’를 향한 경쟁이 점화됐다. 스타링크 3년 만에 이룬 스페이스X 첫 흑자
스타링크 위성 안테나./스타링크
스타링크 위성 안테나./스타링크
그동안 우주산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막대한 투자 비용에 비해 오랜 시간 이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새 이정표가 세워졌다.

글로벌 우주산업 선두주자인 스페이스X가 올해 1분기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저궤도 통신위성을 상용화해 인터넷 우주 시대를 연 지 3년 만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주력 사업은 크게 두 가지다. 우주에 위성이나 사람을 운반하는 발사체(로켓)사업과 위성 사업이다. 팰컨9, 팰컨헤비, 스타십 등 재사용 가능한 스페이스X의 로켓은 우주로 가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우주 경제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X의 진짜 황금알은 로켓이 아니라 저궤도 통신위성인 ‘스타링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2023년 1분기 매출 15억 달러, 순이익 5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머스크가 2002년 ‘화성 식민지 개척’을 목표로 창업한 지 21년 만이다. 스페이스X는 실적발표를 하지 않기 때문에 WSJ가 내부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사업별로는 우주 시장의 문턱을 낮춘 로켓사업 매출이 아직은 더 크다. 미래에셋증권이 추정한 스페이스X 로켓사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3870억원으로 스타링크 매출(1979억원)을 앞지른다. 2025년부터는 둘의 그래프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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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링크의 매출이 로켓사업 매출을 따라잡는다. 추정치에 따르면 2031년에는 스타링크가 스페이스X 매출의 90%를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인터넷 혁명 이후 모든 산업 분야의 기술 진보가 이뤄진 것처럼 우주 인터넷을 활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간스탠리는 2040년 세계 우주산업 시장 규모를 1조1000억 달러(약 1490조원)로 전망했는데, 이 가운데 5800억 달러(약 780조원) 이상이 우주 인터넷 시장의 몫으로 알려졌다.
kg당 10달러…머스크는 어떻게 우주를 지배했나
우주 제패 나선 억만장자들…"우주 소프트웨어 선점하라"[스타링크가 앞당긴 별들의 전쟁①]
스타링크의 성공 이전에 머스크는 ‘로켓의 경제성’을 확보하며 우주 경제 포문을 열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주에 싣고 가는 비용을 줄여 우주산업의 장벽을 낮췄다.

스페이스X가 상용화한 로켓은 ‘팰컨9’과 ‘팰컨헤비’다. 두 로켓의 핵심은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로켓에는 여러 단의 추진체가 있는데, 스페이스X는 1단계 추진체를 재사용한다.

원래대로라면 바다에 떨어져야 하는 추진체가 설정된 착륙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추진체를 재사용하면 로켓 발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머스크가 밝힌 바에 따르면 로켓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단계 추진체가 60%, 2단계 추진체가 20%, 페어링이 10%, 나머지 연료비 등이 10%다.

2021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중량 1kg 물체를 지구 저궤도에 올리려면 유럽의 아리안 5호로는 8900달러(1100만원), 미국 아틀라스V로는 1만3400달러(1600만원)가 소요된다. 반면 재활용 가능한 팰컨9 로켓으로는 2700달러(340만원), 팰컨헤비로는 1400달러(190만원)면 된다.

스페이스X가 선보일 새로운 발사체 스타십의 발사 비용은 kg당 10달러까지 줄어들 수 있는데, 이는 팰컨헤비의 0.7% 수준이다.

새로운 우주발사체에서 모든 우주산업이 시작한다. 우주로 가는 길목을 터야 위성이나 물건을 나르고 사람을 이동시키며 새로운 공간으로의 혁신이 가능하다. 스페이스X가 새로운 우주 시장, ‘뉴 스페이스’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이유다. 머스크보다 일찍 뛰어든 베이조스 ‘달’ 향한 집념
 제프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2021년 자신이 설립한 우주 개발회사 블루 오리진의 '뉴 셰퍼드호'를 타고 우주여행을 다녀왔다./연합뉴스
제프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2021년 자신이 설립한 우주 개발회사 블루 오리진의 '뉴 셰퍼드호'를 타고 우주여행을 다녀왔다./연합뉴스
시장 선도자인 스페이스X를 추격할 수 있는 기업은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뿐이다. 아마존은 지난 10월 6일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시험용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며 ‘우주 인터넷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마존이 2018년부터 100억 달러를 쏟아부은 위성인터넷 사업인 카이퍼프로젝트의 첫 성과다.

아마존의 위성인터넷 사업은 베이조스가 꿈꾸는 우주산업의 극히 일부다. 머스크가 우주산업의 근거지를 ‘화성’으로 삼았다면 베이조스는 ‘달’로 향하고 있다. 우주를 향한 베이조스의 꿈은 머스크보다 먼저 시작됐다. 어릴 때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보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운 베이조스는 2000년 우주 개발 기업 블루오리진을 창업했다.

2021년에는 블루오리진이 개발한 ‘뉴셰퍼드’ 로켓으로 베이조스가 고도 108km까지 올라간 뒤 11분간 우주관광을 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위성 발사를 위한 ‘뉴글렌’ 로켓도 개발 중이다. NASA는 지난 2월 화성 자기권 무인(無人) 탐사선을 블루오리진의 뉴글렌 로켓으로 발사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달을 향한 베이조스의 꿈도 올해 빛을 봤다. NASA는 지난 5월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을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 달착륙선 개발업체로 지정했다.

이번 계약 규모는 34억 달러(약 4조5000억원)다. 블루오리진은 2029년으로 예정된 아르테미스 5호에서 달 착륙선인 ‘블루문’에 우주인을 태우고 첫 시험 비행을 할 계획이다. 그 전에 한 차례 달 착륙 무인 시험비행도 계획돼 있다. 고래 싸움에 새로 생겨나는 생태계
지난 2월 스페이스X의 위성 '스타링크'를 탑재한 '팔콘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월 스페이스X의 위성 '스타링크'를 탑재한 '팔콘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연합뉴스
글로벌 IT 기업과 스타트업들도 우주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발사체, 관측 위성, 달 착륙 등 탐사의 영역이었던 우주가 산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우주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거나 우주 잔해 처리, 지상에서 위성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가능성을 보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위성통신 기업 글로벌 스타에 약 6000억원(4억5000만 달러)을 투자했다. 아이폰14부터 탑재되는 ‘위성 SOS’ 서비스를 비롯해 향후 위성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지난 5월 미국의 인공위성 기업 막사 테크놀로지(MAXAR Technology)는 약 8조원(64억 달러)에 미국 사모펀드에 인수됐다. 막사 테크놀로지는 인공위성을 활용해 공급망을 살피거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지역의 이미지를 촬영해 데이터를 구축해온 기업이다.

반도체 회사 퀄컴은 올해 초 위성통신 사업자인 이리듐과 협력해 위성 기반의 메시지 송수신 기능 ‘스냅드래건 새틀라이트’를 공개했다.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며 새로운 우주산업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강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우주산업에서 발사체와 위성이 하드웨어라면, 저궤도 위성이 우주에서 수행하는 임무는 소프트웨어라고 볼 수 있다”며 “시장 규모는 항상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크기 때문에 한국 역시 진입장벽이 낮아진 우주 시장에서 IoT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전 지구를 아우르는 우주 데이터를 활용해 국방, 원자재나 공급망 파악, 부동산 산업 등 데이터 분야의 서비스가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032년 한국 달 탐사를 위한 로버를 개발하고 있는 조남석 무인탐사연구소 대표는 “몇 년 전까지 국내에 우주 데이터나 위성 데이터를 가공하는 업체들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도 10개 이상 생겨났다”며 “기존에 기밀처럼 여겨지던 위성 데이터가 민간 기업을 통해 하나둘 공개되면서 스타트업이 우주 데이터를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