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자에게 독점권을 인정한 특허법과 자유로운 경쟁을 도모하는 공정거래법은 언뜻 보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공정거래법은 “특허권의 정당한 권리행사로 인정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함으로써 두 법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공정위는 특허 라이선스 계약 공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지침을 마련하는 등으로 특허권 행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규정을 제공하고 있지만 특허권자의 권리행사가 정당한 것인지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용이하지 않다.
얼마 전 특허권자의 특허권 행사의 불공정행위 여부를 판단한 서울고등법원 판례가 선고됐다.
디지털 방송에서 칩셋에 사용하는 오디오 코덱 표준필수특허에 대해 라이선스 권한을 가진 A회사는 칩셋을 이용해 셋톱박스를 제조하는 B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칩셋을 유통하는 형태의 C플랫폼은 셋톱박스 제조사가 C플랫폼을 통해 특허권자에게 특허 사용승인을 신청하면 특허권자가 C플랫폼에 대해 이를 승인하고, 칩셋 제조사가 C플랫폼을 거쳐 그 승인 여부를 확인하고 셋톱박스 제조사에 해당 특허기술을 칩셋에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키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이는 위 라이선스 계약 이후 새롭게 도입된 공급 방식이다. A회사는 실시료 감사 과정에서 B회사가 제품 판매 수량을 누락해 보고한 것으로 판단해 B회사에 추가 실시료 지급을 요구하면서 이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C플랫폼에서 B회사에 대한 특허 사용승인을 중단했다. 이후 A회사는 B회사와 추가 실시료 지급을 합의한 이후 B회사에 대해 C플랫폼을 통한 승인 절차를 개시했다.
공정위는 B회사가 셋톱박스 생산을 위해서는 A회사의 표준필수특허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A회사의 거래상 우월한 지위가 인정되는데, C플랫폼에서 B회사에 대해 특허 사용 승인을 중단한 행위는 B회사에 합의를 종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사절차와 무관한 C플랫폼 승인 권한을 이용한 것이고, 이는 이미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허락한 표준필수특허 사용을 제한한 것으로 불이익제공에 의한 거래상 지위남용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A회사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은 공정위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은 B회사의 판매 수량 누락 보고 등 라이선스 계약 위반이 인정되고, B회사의 C플랫폼 사용승인에 대한 권리가 기존 라이선스 계약상 보장된 권리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또 가령 C플랫폼 사용승인이 기존 라이선스 계약상 보장하고 있는 권리라고 하더라도 A회사는 B회사의 라이선스 계약 위반행위에 따라 C플랫폼에 대해 특허 사용승인을 보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A회사의 B회사에 대한 감사가 위법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A회사가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위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춰 부당하게 불이익을 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공정위의 처분을 취소했다. 위 판결은 공정위가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해당 판례는 ‘공정·합리적·비차별적 조건’으로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FRAND 확약)를 부담하고 그 남용행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표준필수특허라도, 실시권자의 라이선스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 특허권자가 계약에 따라 그 실시권 허여를 중단할 수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한편 이처럼 같은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이 달라진 것만 보더라도 특허권자의 특허권 행사의 정당성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허권자는 실시허여 및 실시료 산정, 그 위반행위 제재 등의 특허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그 행위의 근거규정이나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권리남용 행위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차효진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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