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사진=연합뉴스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사진=연합뉴스
은행과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 금융권 협회장의 인선이 막을 올렸다. 수억원의 연봉에다가 금융당국이나 정부와 가교역할을 하는 자리인 만큼 향후 정부 고위직 도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직 관료는 물론 전현직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은행권에서는 정부 및 정치권과 각종 금융 현안을 조율할 수 있는 ‘힘 있는 회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협회 ‘맏형’ 인선 레이스은행연합회는 10월 30일 정기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한 달 뒤인 11월 30일 임기가 끝나는 김광수 현 회장의 후임자를 선출하기 위한 작업이다.

연합회에 따르면 회추위에는 김광수 회장과 4대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등 11개 회원사 은행장이 참석한다. 이들은 각각 1명씩 차기 회장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은행장이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추천받는 후보자가 고사하는 경우가 있어 최종 후보 인선까지는 ‘안갯속’이다. 이후 자격 검증 등 두세 차례 내부 논의를 거쳐 최종 후보자가 가려진다.

단수 후보가 정해지면 총회에서 추대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출한다. 복수의 후보자가 나올 경우 회원사의 투표로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23개 정회원사가 모두 참여하는 사원총회 의결에서 최종 협회장이 선임될 예정이다.

정관에 따르면 은행연합회장은 임기 3년에 1회 연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역대 회장 13명 중 정춘택 3~4대 회장만이 연임에 성공했다. 김광수 회장이 연임을 할 수도 있지만 김 회장도 단임으로 끝낼 가능성이 높다.

은행연합회장의 힘은 막강하다. 23개 정회원 은행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다. 특히 은행권을 대표해 금융당국과 소통해야 하는 업무로 향후 정부 고위직 도전의 교두보가 될 수 있어 각광 받는다. 업계에선 금융협회의 ‘맏형’ 자리로 불린다. 연봉도 7억원이나 된다.

여기에 임기 3년을 보장받는다. 이 때문에 그동안 고위 관료 출신들이 차지하고 싶어했던 자리다. 최근 고위 공직자의 민간기업 재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 취업 제한이 거의 없는 은행연합회장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시기도 좋다. 금융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3년 차인 지금이 협회장 임기를 채울 수 있는 적기”란 말이 나온다. 후보군들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이유다.

그동안 역대 회장은 14명. 이 중 현재 김광수 회장을 포함한 11명은 관 출신이다. 은행연합회장이 은행업권과 금융당국의 소통을 담당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인 만큼 업무 특성상 경제부처 관료를 지낸 인사들을 선호했다. 민간 출신을 관료들이 무시하는 문화가 금융계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정부 청사가 있던)과천에서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자리에 앉아서 은행장을 불러들였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현 14대 김광수 회장은 대표적인 반민반관 경력을 지냈다.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30여 년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금융관료로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호남 출신 재무 관료’의 대표 주자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잇따라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며, 2018년 4월 NH금융지주 회장이 되면서 금융권에 복귀했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2020년 은행연합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 밖에 11대 박병원 전 회장의 경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하긴 했지만, 행시 17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냈다. 이전 은행연합회장도 대부분 산업은행이나 한국은행에서 총재 또는 부총재를 지냈던 인물들이다. 유지창(9대), 신동규(10대) 전 회장은 행시 출신이다.
민관 거물급 맞붙는 차기 은행연합회장
민관 거물급 맞붙는 차기 은행연합회장
민관 하마평…이번엔 다르다?이번 하마평에도 관료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고 있다. ‘대관’ 업무에 특장점이 있는 관료 출신이다.

대표적인 후보군이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과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윤종원 전 기업은행장 등이다. 정은보 전 금감원장은 기재부 차관보, 금융위 부위원장·증선위원장 등을 거쳤다. 2021년 금감원장으로 취임했으나 지난해 새 정부 출범에 사의를 표명했다. 현재 보험연구원 연구자문위원이며 각종 금융기관 및 금융사 인선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는 주요 인물이다.

윤종원 전 행장은 행정고시 27회로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윤 정부 들어서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추천으로 현 정부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된 바 있다. 이 밖에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도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출마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회원사도 관 출신 인사에 기대는 측면이 있다. 특히 비금융 사업 진출과 최고경영자(CEO) 징계 등을 포함한 내부통제 이슈가 최근 은행권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은행권의 목소리를 정계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게 금융권의 판단이다. 앞서 하영구 전 회장(12대)과 김태영 전 회장(13대)이 순수 민간 출신인데, 민간 출신 회장으로는 정부에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아쉬움이 금융권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들이 있다는 점에서 예년보다 민간 출신 회장이 선임될 가능성도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수 후보군 중에서도 용산과 서초동 인맥이 두터운 이들이 많아 민간 출신으로 업무에 정통하면서도 관과 연이 닿은 ‘반민반관’ 인사가 유력하게 검토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과 허인 전 KB국민은행장(KB금융 부회장) 두 명이 유력하다. 조준희 전 행장은 대선 캠프에서 있었던 인연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기업은행장을 거쳐 YTN 사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직능본부 금융산업지원본부장을 맡았다.

현직 가운데선 KB금융지주 회장 최종 후보에 올랐던 허인 KB금융 부회장이 거론된다. 허인 부회장은 서울대 법대 80학번,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으로 법조계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KB에서도 서울 삼성서초타운지점장을 지냈다.

올해 초 퇴임한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병환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 11월 20일 임기 만료를 앞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유력 후보군이다. 특히 윤종규 회장은 풍부한 관록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은행 맏형을 맡을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회장은 퇴임 후 거취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나 은행권에서는 윤 회장의 향후 거취를 주목하고 있다.

깜짝 인물이 선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13대 김태영 전 회장 역시 전혀 이름이 거론되지 않다 막판에 깜짝 등장한 케이스다. 특히 전직 관료나 정치인 출신의 경우 정부 개입에 따른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는 만큼 민간 출신이 우세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퇴임한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 등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 전 행장은 ‘전략통’으로 은행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빠른 판단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돼 왔다. 이 밖에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여전히 후보로 거론된다.

후보군들의 변수는 나이다. 70세 전후의 인물들이 많아 최근 금융환경에 걸맞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조준희 전 사장은 1954년생으로 만 69세, 윤종규 회장은 1955년생으로 만 68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협회는 이익단체이기 때문에 민관을 막론하고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을 뽑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은행연합회는 제14대 회장을 선출할 당시 2020년 11월 23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제3차 회의와 이사회를 열고, 제2차 회의에서 후보로 결정한 6명에 대한 자질·능력·경력을 논의한 결과 김광수 회장을 은행연합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은행연합회 회추위는 이르면 이번 주 1차 회의를 열고 회장 후보군을 논의한다. 선정된 최종 후보는 이달 중순께 23개 회원사가 참여하는 사원총회 의결을 거쳐 차기 회장으로 선출될 예정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