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통제 확대·미중 갈등에 외국인 투자자·중국 자산가들 불안감 느껴
부양 나선 당국, 보험사에 장기 주식투자 문 열어

10월 30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열린 중국 중앙금융공작회의 모습. 사진=중국 재정부
10월 30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열린 중국 중앙금융공작회의 모습. 사진=중국 재정부
미·중 갈등, 내수부진, 위안화 약세, 부동산 시장 위기 등 잇따른 악재로 중국 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에서 탈출하는 ‘차이나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급감하고, 중국에 투자하려는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규모도 빠른 속도로 줄면서다. 중국 증시에서 이탈하는 외국인 매도 행렬도 이어지는 추세다. 이 와중에 중국 본토에서 해외로 자산을 이전하려는 중국 부자들의 불법 송금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증시 부양책을 내는 등 시장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본격적인 경기 회복과 미·중 관계 개선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탈(脫)차이나’ 행렬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월 FDI 급감…하락세 이어져
지난 9월 대(對) 중국 FDI가 전년 동기 대비 34% 급감했다.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FDI는 지난 5월부터 5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감소폭도 하반기로 갈수록 더 커지는 추세다. 올해 9월까지 중국의 누적 FDI는 9199억7000만 위안(약 169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2.7% 줄었는데 7월까지 누적은 -4%, 8월까지 누적은 -5.1%로 감소폭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 투자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확연하다.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중국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가 모집한 외국인 자금은 올 들어 57억 달러로 지난해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충격적인 수준의 투자금 감소라는 지적이다. 외국 기업들이 더 이상 중국에 재투자를 하지 않고, 중국서 거둔 이익을 밖으로 빼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동부유 정책의 타깃이 됐던 플랫폼 기업과 온라인 교육업체 등이 정부 정책으로 한순간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인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증시에서도 외국인들이 자금을 빼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매도 행렬이 이어지면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선전과 홍콩 증시 교차거래를 뜻하는 선강퉁, 상하이와 홍콩 증시 교차거래를 뜻하는 후강퉁 제도를 통해 중국 본토 주식시장의 위안화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지난 10월 한 달간 외국인투자자들은 467억 위안(약 8조640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지난 8월과 9월에도 모두 1270억 위안을 순매도했는데, 3개월 연속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증시도 외국인 매도 행렬 속에서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외국인 투자금은 약 2조3000억 위안 규모로, 전체 중국 증시의 3%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행렬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국 시장을 불안하게 본다는 징표라는 점에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틀어쥐는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당이 인민은행을 직접 관리·감독하는 등 금융 부문에 대한 당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도 중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지난 10월 30~31일 열린 제6차 금융공작회의도 이 같은 중국 공산당 움직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1997년 시작돼 5년 주기로 열려온 중국 금융공작회의는 금융산업의 리스크를 점검하고 중장기 목표를 설정하는 자리다. 금융산업 각 분야 경영자들과 인민은행 등 규제 당국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7년 5차 회의에 이어 이번 6차 회의도 직접 주재했다. 이에 대해 그가 61조 달러 규모의 중국 금융에 대한 통제력을 더 강하게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올해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선 공산당 내에 금융공작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이 위원회는 은행과 보험, 증권 분야에 대한 감독 기능은 물론 인민은행도 감독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동안 국무원 총리가 경제를 지휘하고 국무원 산하 인민은행이 금융리스크를 관리해왔다면, 시 주석 집권 3기가 본격화되면서 금융 부문도 공산당의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국무원을 공산당 지휘 감독을 받는 국가기구로 바꾸는 국무원조직법 개정안도 추진 중이다. 사회 전 분야에 공산당의 통일적 지도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시장친화적 정책을 펼쳐온 중국의 이 같은 변화는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진출을 꺼리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당 지도부가 금융리스크 완화를 명목으로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규제 관련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는 의미여서다.

이처럼 전반적인 사회통제 강화와 공동부유 정책의 영향 등으로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 부자들도 탈차이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부유층 사이에서 올 들어 국제 불법 송금조직을 활용한 현금 빼돌리기가 유행하면서다. 중국에선 연간 5만 달러 한도 내에서 해외 송금이 가능한데, 이 탓에 불법 송금조직을 통해 ‘환치기’를 하는 중국 자산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을 통해 송금할 때보다 환전 수수료가 20~30% 비싸지만 합법적으로 거액을 해외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이를 감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해외로 몰래 자금을 옮기는 지하경제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2021년 중국 서부 간쑤성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약 14조원 규모의 자금을 관리하는 불법 송금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미·중 갈등 해소되어야
이 밖에도 외국 자금이 중국에서 탈출하는 차이나 엑소더스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원인으로 미·중 갈등, 미·중 금리 격차 등이 손꼽힌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고, 이에 해외자본도 중국 재투자를 꺼리고 있어서다.

미·중 금리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큰 원인이다. 미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이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자금을 이동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연방 정부의 재정적자 국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글로벌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현재 4.8% 선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10월 중순에는 2007년 이후 16년 만에 5%를 돌파하기도 했다. 반면 내수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오히려 금리를 낮추고 있다. 인민은행은 올 들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두 차례 인하했다. 연내 금리를 더 낮출 가능성도 크다. 그러다 보니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도 7.3위안 선까지 올라 있다. 이는 올 들어 6.1% 평가절하된 것이다.

중국 정부도 외국인 이탈이 본격화된 하반기부터 증시 부양책을 꾸준히 내면서 시장 달래기에 나선 모습이다. 우선 15년 만에 주식거래 인지세를 낮추고, 대주주 지분 축소를 규제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서다. 그런데 시장이 무너진 것에 비해선 너무 미약한 증시 대책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증시 활성화 대책 이후에도 힘을 못 쓴 중국 증시가 이를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10월 30일 중국 재정부는 보험사들의 주식 장기투자를 허용하는 조치를 새롭게 내놨다. 기존 1년 단위 순자산 수익률 평가를 3년 주기로 일부 늘리는 방식을 통해서다. 운영자금이 큰 보험사들이 주식 매수 행렬에 가담할 경우 주식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도 국내 투자 채널인 센트럴후이진을 통해 주식 매수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 한국에 비유하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주식 매입에 나서는 것인데, 가장 확실한 증시 부양책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중국 정부가 더 이상의 증시 하방압력은 막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란 평가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11월 미·중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미·중 갈등이 완화될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로 얼어붙은 중국 투자 분위기도 반전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부양책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끌어올릴지도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