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 등 표현, 명예훼손 아냐”
출간 10년 만에 논란 종지부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연합뉴스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문제가 된 각 표현은 의견 표명일 뿐 실제 있었던 일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사실 적시’는 아니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학문적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그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박 교수를 기소한 지 약 8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1·2심 엇갈린 판결, 대법서 ‘무죄’ 확정

대법원 3부는 2023년 10월 2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 표명으로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며 무죄 취지로 이같이 선고했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이 저서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피해자들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저서는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의 내용이 군인을 상대하는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생활을 위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된 사람”이라며 “위안소에서 일본군과 성적 쾌락을 위해 아편을 사용한 사람”이라고 기술했다.

해당 서적에는 또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 의식을 가지고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심 또는 위안부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본인 병사들을 정신적으로 위안해 주는 생활을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의 동원 과정에서 일본군의 강제 연행은 없었고, 있다고 한다면 군인 개인의 일탈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다.

2017년 1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저서의 35개 표현 중 5개 표현은 사실 적시에 해당하나, 나머지 30개 표현은 의견 표명에 불과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5개 표현 중 3개 표현은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나머지 2개 표현은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열린 2심에서 재판부는 공소 사실에 대해 일부 유죄로 판단하고 피고인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사실 적시로 인정한 5개 표현 외에 추가로 6개 표현을 사실 적시로 인정한 가운데 이 표현을 허위 사실 및 명예훼손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특정됐고, 고의성도 인정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사와 피고인은 모두 항고했다.

대법원에서 또다시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에 대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사진=연합뉴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사진=연합뉴스
“학문적 표현물은 잣대 달라야”

대법원은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거나 피해자들의 자기 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해당 도서는 피고인이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던 중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과정에서 나온 ‘학문적 주장’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의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을 했다는 등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뿐만 아니라 당시 제국주의 사조와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조선인 위안부가 구성원 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각 표현이 피해자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기소된 일부 표현들도 ‘사실 적시’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일부 표현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처지, 역할에 관한 피고인의 학문적 의견 내지 주장의 표현으로 보일 뿐”이라며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 의식을 가지고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했다’는 명제를 전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인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만든 첫 판례”라며 “학문적 표현물에 대한 평가는 형사 처벌에 의하기보다 공개적 토론과 비판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문적 표현의 자유 행사와 연구 대상자의 존엄성·인격권에 대한 존중이 모두 헌법 질서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한계를 명확히 했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국민 상식에 이견 제시했다고 고발한 사건”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2014년 6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이 박 교수에 대한 민형사 고소장을 내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듬해 11월 박 교수를 기소했다. 재임 시절 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 책임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등 국내외 지식인 380여 명은 당시 ‘한국 검찰이 학문과 출판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1심 무죄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히자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급기야 국내외 지식인 98명이 참여한 ‘제국의 위안부 소송 지원 모임’은 2017년 12월 7일 발족식을 열고 “재판부 판결이 학계와 문화계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김철 연세대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학계, 문화예술계, 법조계 등에서 50명이 참여했다. 고종석, 배수아 등 중견작가들도 성명에 동참했다.

48명의 해외 문화계와 학계 인사들도 우려를 밝혔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지식인으로 꼽히는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를 비롯해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교수, 존 트리트 예일대 명예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동참했다.

일본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대표적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지한파 경제학자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대표적인 진보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대만 등의 지식인들도 모임에 이름을 올렸다.

약 8년의 법정 싸움 끝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박 교수는 회견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해결 방법에 대한 지원단체의 주장에 대해 검토한 책”이라며 “검사는 지원단체의 ‘법적 해결’이라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느냐며 저를 매국노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원단체 주변인들이 만들고, 국민의 상식이 되고 국가의 견해가 돼 버린 생각에 이견을 제시했다고 해서 고발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제가 강제연행을 부인했다는 것은 커다란 오해”라며 “제가 시도한 것은 양극단을 비판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토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지원단체의 사고나 활동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는 것이 ‘제국의 위안부’가 제시하는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긴 재판 기간에 위안부 피해자 중 김군자 할머니가 2017년 세상을 떠나고, 공동 원고인 김순옥·유희남·정복수·김외한·김정분 할머니 등도 별세했다. 원고 9명 중 이옥선·강일출·박옥선 할머니 등 3명은 생존해 있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어두워 상고심 법정에는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