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올드머니 트렌드에 고전 브랜드 '폴로' 재조명
전략도 한몫…무신사·컬리·제페토 협업 통해 Z세대 인지도 높여
한국 영업익 2020년 652억원→2022년 1533억원으로

폴로 랄프로렌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셔츠. (사진=폴로 랄프로렌 홈페이지)
폴로 랄프로렌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셔츠. (사진=폴로 랄프로렌 홈페이지)
X세대 브랜드, 압구정동 오렌지족 교복, 아재룩(아저씨들이 자주 입는 패션 스타일)….


낡은 수식어를 가진 1967년생, 올해 56살이 된 브랜드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클래식의 대명사 ‘폴로 랄프로렌’이 그 주인공이다. ‘올드머니’와 ‘레트로(복고)’ 트렌드가 겹친 결과다. 상류사회 스타일의 대표적인 브랜드이자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폴로 랄프로렌이 젊어지고 있다.1980년대 브랜드, 폴로 랄프로렌1967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폴로 랄프로렌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힙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다.

폴로 랄프로렌은 이름에서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폴로(Polo)는 말을 타고 스틱으로 공을 목표 지점까지 옮기는 구기종목으로, 왕실·귀족과 역사를 함께한 대표적인 상류층 문화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서 국왕을 수호하는 부대 훈련에서 시작돼 ‘왕의 스포츠’라고도 불린다.

이후 말을 능숙하게 다뤄야 하는 전제조건 탓에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역사가 이어졌다. 폴로 랄프로렌을 대표하는 ‘포니 로고’ 역시 말을 타고 스틱을 사용하는 역동적인 폴로 선수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폴로 랄프로렌은 설립 초기 남성복만 판매했다. 1969년 뉴욕 맨해튼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넥타이, 셔츠 등 남성 라인을 선보였고, 여성복은 1972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대표 상품이 된 ‘반소매 피케 티셔츠’ 역시 이때 나왔다. 최고급 소재를 사용한 24가지 색상의 반소매 제품은 ‘미국 스타일’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폴로가 유명해진 계기는 1974년 잭 클레이튼 감독이 제작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가 입고 나온 대부분의 의상은 폴로 랄프로렌 제품이었고, 맞춤 슈트도 랄프로렌에서 제작했다. 폴로 랄프로렌은 ‘개츠비 룩’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으며, 1976년 창업자 로런이 우수한 디자이너에 수여하는 ‘코티상’을 수상하며 패션업계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폴로 랄프로렌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때다. 1989년 백인 남성을 타깃으로 ‘성조기 스웨터’를 선보이면서 ‘국민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13개의 별이 포함된 1777년 초기 미국 국기를 전면 디자인에 배치한 니트 스웨터는 출시 직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이후 폴로 랄프로렌은 미국인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다.

세계적인 브랜드 전략가 마틴 롤은 “폴로 랄프로렌은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라며 “설립 초기부터 미국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설립된 지 50년밖에 안 됐지만 미국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사진=폴로 랄프로렌 홈페이지
사진=폴로 랄프로렌 홈페이지
올드머니·레트로에 반응한 Z세대폴로 랄프로렌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980년대다. 1982년 의류 생산업체 신한인터내셔널이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한국 판매가 시작됐다. 이후 일경물산, 두산의류BG 등을 거쳤다. 2011년 폴로랄프로렌 코리아를 설립하고 직진출로 전환했다.

국내에서도 폴로 랄프로렌은 1990년대부터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 라이선스를 보유한 국내 기업들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위해 노세일 전략을 고수했지만 X세대 사이에서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로 인해 포니 로고의 말 다리가 3개인 가품까지 시중에 유통되는 등 논란도 발생했다. 국내 매출이 오르자 폴로 랄프로렌은 2004년 한국어 전용 사이트도 운영했다. 이전까지 폴로 랄프로렌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았으나 소비자 편의를 위해 한국어를 지원하는 등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자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2011년 직진출 전환 후 고급화 전략을 택한 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폴로 랄프로렌은 당시 최고급 남성 라인인 ‘랄프로렌 블랙라벨’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선보이며 변화를 시도했다. ‘폴로’가 가진 캐주얼 브랜드 이미지를 없애고 ‘명품’으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직진출 1년 만인 2012년 폴로 랄프로렌 캐주얼 부문은 백화점에서 점유율이 하락했다. 2010년까지 캐주얼 시장 1위를 놓치지 않았으나 직진출 전환 후 삼성물산 빈폴에 넘겨주었고, 라코스테에도 밀리며 영향력이 급속도로 줄었다. 같은 시기 아웃도어 패션이 인기를 끈 것도 캐주얼 업계에 영향을 미쳤다.

폴로 랄프로렌이 국내에서 다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패션업계에 레트로(복고)가 새로운 유행으로 번지면서 선택을 받기 시작했고, 올해 올드머니 트렌드까지 겹치면서 폴로 랄프로렌의 셔츠, 니트 등이 떠오르고 있다.

올드머니룩은 ‘상속받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옷차림’을 뜻한다. 특히 상류층의 고급 취미로 꼽히는 승마·테니스·요트·골프 관련 의류가 대표적인 올드머니룩이다.

로이터통신은 “랄프로렌이 코치와 함께 디지털 중심의 Z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며 “스웨트셔츠, 니트웨어, 폴로 제품 라인 등이 젊은 쇼핑객들로부터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무신사, 컬리 등 유통 플랫폼과 협업해 MZ세대들의 접근성을 높인 게 매출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1020세대 사용 비중이 높은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파트너십을 맺고 3D 아바타로 이미지를 개선한 것도 주효했다.
폴로 랄프로렌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꽈배기 니트류. (사진=폴로 랄프로렌 홈페이지)
폴로 랄프로렌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꽈배기 니트류. (사진=폴로 랄프로렌 홈페이지)
성적표도 기대 이상폴로 랄프로렌의 상승세는 수치로 입증된다. 11월 8일 랄프로렌은 2024 회계연도 2분기(7~9월)에 매출 16억3300만 달러, 영업이익 1억645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영업이익률은 10.1%다.

주당순이익(EPS)는 2.19달러로, 전년 동기(2.18달러) 대비 소폭 줄었다. 원가 부담이 늘어나고, 달러 가치가 약화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시장전망치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랄프로렌의 이번 분기 EPS가 1.92달러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랄프로렌은 “아시아에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0% 증가한 3억4800만 달러”라며 “오프라인 매장에서 7% 늘었고, 온라인 기준으로는 19%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 팔로어가 크게 늘었고 동종 업체를 크게 앞지르는 디지털 검색 트렌드를 바탕으로 강력한 성장을 이루었다”며 “소비자 지표는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재고가 줄어든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랄프로렌은 “재고가 건전해지고 있다”며 “이번 분기 전 세계 재고는 12억 달러,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랄프로렌은 2024 회계연도 1분기(4~6월)에도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분기 매출은 14억965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0.40% 느는 데 그쳤지만, EPS는 1.06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29% 늘었다.

한국 사업 분위기는 더 좋다. 랄프로렌 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4819억원, 영업이익은 1533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대비 25.5%, 영업이익은 38.6% 늘었다. 2020년과 비교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5.2%, 135.1% 급증했다.

전망도 긍정적이다. 랄프로렌은 “인플레이션 압박, 달러 변동성 등의 문제가 있지만 2024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은 한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며 “영업이익률은 12.3~12.5%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