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이조시, 반도체부터 조선소까지 일자리 넘치는데 인구 30% 감소
-1대1 오더메이드 이주체험으로 2030 이주 급증

[스페셜리포트 : 지방생존 리포트④]
사이조시는 3년 연속 '젊은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로 꼽혔다./김영은 기자
사이조시는 3년 연속 '젊은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로 꼽혔다./김영은 기자
“사이조시가 젊은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라고요? 일본에서 노잼도시로 유명한데 희한하네요.”

20년째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김유성 씨가 말했다. 일본은 4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혼슈와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다. 사이조시는 4개 섬 중에서도 가장 작고 낙후된 시코쿠섬 에히메현에 위치한 지역이다. 인구 1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지만 대학이나 직업학교(전문대)는 없다.

무엇보다 도쿄나 오사카와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공항도 없고 신칸센도 지나가지 않는다. 대도심에서 직통으로 올 수 있는 교통편이 없다. 도쿄까지 철도를 타고 가려면 8시간이 걸리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려면 차를 타고 에히메현 마쓰야마 공항까지 1시간 30분 남짓 달려야 한다.
일본 '노잼도시'가 '살고싶은 지방 1위'로 거듭난 비결[지방생존 리포트④]
도쿄에서 8시간 걸리는데
“젊은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
도쿄에서 철도로 8시간 떨어진 이 도시는 모든 지자체가 꿈꾸는 타이틀을 따냈다. ‘젊은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 자리에 3년 연속 올랐다. 일본의 대형 출판사인 다카라지마사가 매년 펴내는 ‘시골생활의 책’이 조사한 순위다.

2021년에는 ‘젊은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 ‘육아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 ‘은퇴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 1위’를 모두 석권했다. 전 세대를 아울러 이주하고 싶은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반도체부터 조선소까지
일자리 다 모였지만 인구 감소는 심각
이마바리조선 사이조시 공장 전경./이마바리 조선
이마바리조선 사이조시 공장 전경./이마바리 조선
표면적으로 보면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사이조시는 일자리가 넘치는 도시다. 바다와 강이 30km 내에 있어 물이 맑고 수자원이 풍부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물이 필요한 기업의 공장은 죄다 사이조시로 모였다.

이마바리조선, 르네사스반도체, 일본제철, 코카콜라, 스미모토 금속광산, 다니구치금속 등 내로라하는 제조업 기업의 생산기지가 사이조시에 모여있다. 올해 8월 기준 사이조시의 유효구인배율은 1.37배였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37개라는 뜻이다.

일본 전국 평균(1.29)보다 높았다. 사이조시의 유효구인배율은 1980년대부터 쭉 일본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일자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사이조시의 인구 그래프는 거꾸로 갔다. 일자리는 넘치는데, 인구는 급감했다. 지난 30년간 사이조시의 인구 감소율은 28%였다. 같은 기간 일본의 전국 평균(16%)보다 2배나 심각했다.

제조업에 치중된 일자리와 주요 도심과의 거리, 대학이 없어 유출되는 인구가 사이조시 쇠락의 원인이었다. 이 상태로 가면 2045년 사이조시 인구는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2015년 10만 8174명이던 인구가 2045년 7만8307명으로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는 심각성을 인지했다. 2017년 사이조시는 지역 ‘브랜딩’에 돌입한다. 인구 유출이 가장 심각한 20~24세 인구를 비롯한 젊은 세대를 유입하는 게 목표였다.

사이조시는 관광정책 대신 ‘이주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총력을 가했다. 가장 먼저 슬로건을 만들었다. 지역의 지명도가 낮았기 때문에 이름부터 홍보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러브 사이조(LOVE SAIJO)’라는 슬로건을 통해 이를 홍보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이주 타깃을 정했다. ‘도쿄와 오사카에 사는 2030세대’였다. ‘1대 1’ 오더메이드 이주체험이 경쟁력
2021년 사이조시로 이주한 고마키 마사유키씨 가족./마사유키씨 제공
2021년 사이조시로 이주한 고마키 마사유키씨 가족./마사유키씨 제공
“사이조시의 가장 큰 경쟁력은 ‘오더 메이드’ 이주체험이다.”

지난 11월 3일 만난 사이조시 시티프로모션 추진과 니시무라 도모노리 과장은 사이조시가 ‘젊은 세대가 살고 싶은 지방도시’에 오른 비결이 ‘오더 메이드’ 전략이라고 말했다.

사이조시는 1년에 2번 도쿄와 오사카에서 이주 설명회를 연다. 주말 이틀 동안 여는 설명회에 평균 40세대가 참여한다.

이 중 90%가 사이조시를 직접 방문해 살아보는 이주체험까지 유입된다. 다른 소멸 지역도 이 같은 ‘이주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체험보다는 단체 버스를 타고 와서 관광지나 자연 경관을 위주로 둘러보고 가는 ‘관광’에 가깝다.

사이조시는 1박 2일 동안 1세대를 일대일로 대응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이 온다고 하면 실제 사이조시에서 초등학교 자녀를 둔 시민들의 생활 반경을 그대로 체험하게 프로그램을 짠다.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부터 아이와 함께 갈 만한 식당, 캠핑장, 아웃도어 시설 등을 보여준다. 이후 실제 이주해 초등학교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미래의 실생활을 가상체험시켜 주는 것이다. 이들이 오기 전 어떤 직업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미리 듣고 프로그램에 녹인다.

니시무라 과장은 “모든 것을 버리고 타향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주자 가족의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주 후에도 직업 주선과 교류회를 통한 커뮤니티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모든 체험 비용은 시에서 지원한다. 이주자 가족에게 거주 지원도 하고 있다. 사이조시에 있는 빈집을 수리해 거주할 경우 시에서 상한가 200만 엔(약 1700만원)까지 지원한다. 아이가 있는 집은 400만 엔(약 3400만원)까지 지원비가 늘어난다.

‘오더 메이드’ 이주체험 프로그램은 실제 성과로 나타났다. 2021년 사이조시에 1177명이 이주했고 그중 80%가 젊은 세대였다. 올해는 12월까지 1500명의 이주자가 예상된다.

2021년 사이타마에서 사이조시로 이주해온 고마키 마사유키(52)씨 역시 이주체험 프로그램이 이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고마키씨는 “우리 부부 둘 다 사이조시와는 전혀 무관했지만 산과 바다, 강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서 이주체험을 신청했다”며 “1박 2일 동안 담당 직원들이 직업부터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실생활까지 열의를 다해 신경 써주고 있는 모습에 감동해 이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이조시는 이주자들이 이주 후에도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요소로 ‘교류’를 꼽았다.

니시무라 과장은 “이주자들이 이주 이후 사이조시에서 비슷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형성해 교류할 수 있게 돕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시청 직원들과 주민들 모두가 도우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일본 '노잼도시'가 '살고싶은 지방 1위'로 거듭난 비결[지방생존 리포트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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