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에①
프랑스 오트 쿠튀르 패션은 귀족들과 돈 많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했다. 오트 쿠튀르의 명맥은 1920년대 샤넬, 장 파투, 뤼시앵 를롱, 1940년대 피에르 발망과 뉴룩을 발표한 크리스찬 디올, 오트 쿠튀르의 황태자라 불리는 이브 생 로랑까지 이어졌다. 샤넬의 슈트 한 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0시간, 웨딩 드레스는 80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오트 쿠튀르의 옷은 너무 비쌌으므로 사기 힘들고, 그 수준의 기성복을 원하는 수요층이 늘게 되자 생겨난 것이 프레타 포르테(바로 입을 수 있는 옷, 영어로는 레디 투 웨어)이다. 1952년 최초의 럭셔리 레디 투 웨어 끌로에가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했다.
끌로에의 창업자 가브리에라 아노카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0년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레이몬드 아기옹과 결혼한 뒤 젊은 부부는 1945년 파리로 이주했다.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가비 아기옹(사진①)이 되었다. 파리지앵 가비 아기옹은 1952년 끌로에를 설립했다. 그녀는 첫 번째 컬렉션에서 형식적인 오트 쿠튀르 작품 대신 고품질의 패브릭과 섬세한 디테일이 조화를 이룬 편안한 실루엣의 우아하고 현대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저는 작은 컬렉션을 디자인했고 오트 쿠튀르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숙련된 재봉사를 고용했어요. 그리고 저는 직접 단추나 패브릭 같은 소재를 구하기 위해 찾아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저는 이 일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그것은 마치 토네이도 같았어요”라고 가비 아기옹은 말했다. 1953년 자크 레누아르와 동업으로 끌로에의 성장을 이루어 나갔다.
보헤미안 정신을 지니고 다크 뷰티(Dark beauty)를 추구하던 그녀는 전통적인 패션의 규칙을 거부하고, 그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당시 실존주의자들과 예술가들이 자주 모이는 명성 높은 예술가들의 공간인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에서 1958년 봄여름 컬렉션을 발표했다. 모델들은 테이블에 앉아 카페라떼를 마시는 기자들 사이로 테이블 주변을 오가며 작품들을 선보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 끌로에는 파리 좌안 예술가 지구의 여러 카페에서 젊고 활기가 넘치는 패션쇼를 진행했다.
제라드 피파르는 가비 아기옹이 고용한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1958년 이후 끌로에의 의류 제품은 알파벳 순서대로 이름이 정해졌고 이 전통은 1987년까지 계속되었다. 1960년대 막심 드라 팔레즈, 미셸 로지에, 그라지에라 폰타, 칼 라거펠트와 같은 재능 있는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영입했다. 디자이너들은 가비 아기옹의 예술적 방향에 맞춰 서로 공동 작업을 진행하며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칼 라거펠트는 1964년 한 시즌당 2벌의 의상을 디자인했으나 점차 많은 디자인을 하게 되면서 1966년에는 끌로에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다. 칼 라거펠트가 끌로에에 합류한 후 1년이 지난 1965년 그는 1966년 봄여름 컬렉션을 위한 테르툴리아(Tertulia) 드레스를 디자인 했다(사진②). 수작업으로 채색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모티브가 끌로에의 우아한 품격과 조화를 이루며 보헤미안적인 매력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1974년부터는 그의 풍부한 재능을 입증하여 끌로에의 단독 디자이너로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로써 칼 라거펠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자신의 이름을 걸고 프레타 포르테, 즉 기성복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란 새로운 장을 열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한 브랜드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브랜드에서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칼 라거펠트 또한 끌로에와 펜디에서 같은 시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각각의 브랜드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으로 역량을 펼쳤다.
폴 매카트니 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1997년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가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를 갓 졸업한 그녀는 당시 25세였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도 그녀는 빈티지 란제리, 시그니처인 로우 라이즈 팬츠와 프린티드 티셔츠를 믹스 매치해 로맨틱하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한층 더 섹시해진 록앤롤 스타일로 완성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생기 넘치는 당당함과 매력적인 스타일의 브릿팝, 걸 파워, 세빌 로우까지 모든 트렌드를 하나로 묶은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했고(사진④), 결과는 새로운 패션 애호가들을 끌로에의 세계로 대거 유입시켰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2001년 끌로에를 떠났다. 이후 그녀의 최측근이자 친한 친구인 피비 필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후 여러 명의 크리에이티브를 거쳐 2023년 끌로에는 세메냐 카말리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1985년 끌로에 창업자 가비 아기옹은 알프레드 던힐 Ltd(현 리치몬드 그룹)에 회사를 매각하여 경영에서 물러났다.
자료 참조:끌로에닷컴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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