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해치는 포퓰리즘, 후유증은 국민 몫으로
정부 역할은 시장경제 지원하고 유지하는 데 그쳐야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가까이 온 것 같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 마구잡이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거대 야당이 건전재정 기조를 보란 듯이 무시하면서, 8개 상임위에서 요구한 예산 증가율이 올해 대비 4%를 이미 초과했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전 정부의 선거 공약이자 국정과제였지만, 여당이던 당시 이 문제를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다가 야당이 되자 정치 전략의 일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 다수석을 앞세운 야당은 금융회사의 이자수익 중 일부를 부담금의 형태로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조세의 형평성과 효율성에 위배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큰 폐해를 가져올 것이 뻔한 포퓰리즘적 법안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정부와 여권도 이에 질세라 가격 통제와 시장 개입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부총리가 텔레비전에 출연해 라면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공무원들이 생필품 가격을 일대일 마크하는 물가 관리가 시작됐다. 개별 품목별 물가 관리 정책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 52개 생필품을 선정해서 별도 관리(MB 물가)한 적이 있지만, 그 결과 일반 소비자물가지수가 12% 증가한 데 비해 선정된 생필품 가격은 약 20%가 상승하기도 했다. 시장에 반하는 가격 통제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물가가 더 치솟는 후유증을 초래하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고 공매도 전면 금지를 통해 개미투자자들의 호의를 얻고자 하며,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횡재세에 대해서도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각종 수수료 인하 압력 정책들이 난무할 기세이다. 시장경제의 성과로 발생한 이익에 페널티를 가하면 경제활동에 대한 동기와 의지는 사라질 것이다. 소수 기업의 횡포로 가격이 폭등한 것이면 경쟁을 촉진해서 풀어야 한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마누엘 푼케 박사 연구팀이 총 28개국 72명 리더가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논문 ‘포퓰리스트 리더와 경제’가 AER(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1900~2020년 동안 발표된 포퓰리즘 관련 논문과 기사, 책 등을 연구한 이 논문에 의하면 포퓰리스트 리더가 집권한 직후에는 국내총생산(GDP)에 별 영향이 없었지만 15년 후에는 포퓰리스트가 아닌 리더가 집권했을 때보다 GDP가 평균 10% 감소했고 국가채무는 10%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제 저널리스트 헨리 해즐릿은 그의 저서 ‘Economics in Lesson One’에서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가격 개입은 필연적으로 시장 왜곡과 국민 고통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정책들이 나오는 배경은 자유시장경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정부와 대중의 성급함을 악용하는 정치권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경제의 정치화로 인해 시장경제가 마치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해즐릿은 알렉산더대왕이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모든 국민에게는 정부에 이렇게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디오게네스는 “태양이 가려지지 않도록 조금만 비켜서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정부의 역할은 자유시장경제가 잘 작동하도록 지원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는 말로 들린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