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대전세무서 상대 2심서 승소
업계 파장 예고

[법알못 판례 읽기]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본부. 사진=연합뉴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본부. 사진=연합뉴스
‘복지포인트는 비과세 대상’이라는 기업과 ‘세법상 근로소득에 해당한다’는 당국 간 법리 다툼에서 법원이 처음으로 기업 측 손을 들어준 사례가 나왔다.

대전고등법원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복지포인트에 부과한 근로소득세를 취소해달라”며 과세당국에 제기한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코레일 측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현재 복지포인트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이 줄줄이 세금 환급을 요구할 수 있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1심 “소득세법상 근로소득 맞다”

대전고법 행정1부는 2023년 10월 26일 코레일이 대전세무서를 상대로 낸 근로소득세경정청구 거부처분취소 소송의 항소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경정청구란 세금을 과다하게 냈을 때 추가로 납부한 금액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코레일은 2007년부터 복지후생 규정에 따라 정규직 전환자 및 기간제 근로자, 수습사원 등 모든 임직원에게 매년 1월 1일 일률적으로 복지포인트를 지급했다. 임직원은 복지포인트를 사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쓰거나, 복지카드를 이용해 물건을 우선 산 뒤 구매에 쓴 복지포인트만큼의 돈을 환급받았다.

이 복지포인트는 사행성이 있거나 불건전한 지출, 현금과 유사한 유가증권 구매,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관련 의료비를 비롯해 기타 증빙이 어려운 지출 등 복지혜택과 직접 관련이 없는 용도에는 사용이 제한됐다. 매년 12월 20일까지 쓰지 못한 복지포인트는 자동 소멸하고, 사용하지 못한 복지포인트는 금전적으로 청구하거나 양도할 수도 없었다.

코레일은 2015년 선택적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 복지포인트를 단체상해보험과 의료비보장보험 등 보험료 지급에 강제적으로 사용되는 ‘기본항목’과 건강관리 및 자기계발, 문화레저 등에 쓰이는 ‘자율항목’으로 구분해 지급했다.

코레일은 2015년 귀속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면서 기본항목 복지포인트는 과세대상 급여에서 제외해 원천징수하지 않았다. 자율항목 복지포인트만 과세 대상인 근로소득으로 보고 이를 원천징수해 그해 근로소득세를 납부했다.

하지만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택적 복지제도에 기초한 복지포인트의 근로기준법상 임금 인정 여부가 쟁점인 사건에서 “복지포인트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당시 전합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금품이 임금에 해당하려면 먼저 그 금품이 근로의 대상으로 지급되는 것이어야 한다”며 “근로의 대상인지를 판단할 때는 그 금품 지급 의무의 발생이 근로 제공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거나 그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코레일은 2021년 3월 “2015년 원천징수한 자율항목 복지포인트는 소득세법상 과세대상이 되는 근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복지포인트를 원천징수해 납부한 근로소득세에 대한 경정청구를 냈다. 대전세무서는 이를 거부했고, 조세심판청구 역시 기각됐다. 이에 불복한 코레일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은 코레일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코레일의 복지포인트는 임금은 아니지만, 더 넓은 개념인 소득세법상 급여에는 해당한다”며 “직접적인 근로의 대가 외에 근로를 전제로 그와 밀접한 근로조건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또 “복지포인트는 요양보상금·실업급여·학자금 등 소득세법에 열거한 비과세 근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코레일 측이 청구 이유로 주장한 2019년 전합 판결에 대해서는 “모든 직원에게 균등하게 계속적·정기적으로 복지포인트를 지급했으므로 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복지포인트는 ‘근로복지’에 해당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근로의 대가’를 의미하나,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은 ‘근로의 대가’뿐만 아니라 ‘근로를 전제로 그와 밀접히 관련돼 근로조건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급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은 통상 근로기준법상 임금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본다. 2019년 8월 전합 판결에서 복지포인트는 이미 근로의 대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만큼 이 사건에선 복지포인트가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복지포인트가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이 맞다고 판단해 코레일 측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 복지포인트는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을 규정하는 내용 중 ‘근로조건’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에서 임금·근로시간·후생·해고 등 근로자의 대우에 관해 정한 조건’을 의미한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복지포인트는 ‘근로복지’에 해당하고 ‘근로조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선택적 복지제도를 규정한 근로복지기본법은 근로복지의 개념에서 임금·근로시간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을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조건 가운데 ‘후생’이 존재하나 이는 근로복지와는 별개의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2심 재판부는 또 “이 사건 복지포인트는 사용 용도가 제한적이고, 사용 기한이 있으며 근로 제공과 무관하게 매년 초에 일괄 배정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기존에 코레일이 지급하던 각종 복지수당과는 구분되는 새롭게 도입된 기업복지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대전세무서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돋보기]
한화 계열사들도 “복지포인트 세금 돌려달라” 소송전

최근 벌어지는 복지포인트 관련 소송들은 기업이 임직원을 대신해 근로소득세 명목으로 원천징수한 세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핵심이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공기업 복지포인트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서 임직원의 복지포인트에 세금을 매긴 결정을 두고 기업과 국세청 간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다.

판결 후 기업들은 임직원들을 대신해 “그동안 원천 징수해간 세금을 돌려달라”는 경정청구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세당국은 “직접적인 근로의 대가 외에 (복지포인트처럼) 근로를 전제로 그와 밀접한 근로조건 내용을 이루는 급여 역시 근로소득”이라며 버티고 있다.

국세청의 대응에 기업들은 조세심판원에 과세의 부당함을 판단해달라는 심판청구에 나섰다. 청구가 기각된 기업들은 법원에서 환급 여부를 다투고 있다.

과세당국과의 소송전이 한창인 한화시스템·한화임팩트·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심 재판 과정에서 공무원 복지포인트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과세당국은 2005년 공무원 복지포인트 제도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공무원의 복지포인트를 비과세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3사는 “공무원에게는 복리후생 성격이라며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서 민간기업 임직원의 복지포인트에만 과세하는 것은 조세 평등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한화손해사정도 마포세무서를 상대로 “2015년 원천징수한 근로소득세 약 4700만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자 소송으로 대응했다. 1심 재판부는 “근로소득이 근로기준법상 임금보다 넓은 개념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만으로 복지포인트가 근로소득이 아니라고 볼 순 없다”며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법조계에선 코레일 사건의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복지포인트 소송 전선이 대폭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1 회계연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법정 외 복지비용은 24만9400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국내 기업의 연간 임직원 복지 관련 지출 규모는 총 45조원에 달한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