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법인에 벌금 2000만원
위헌 신청 기각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2년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 무죄로 인정받기 어려운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두성산업을 포함해 지금까지 최소 1심 선고가 끝난 11개 기업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중대재해법, 헌법에 배치된다 볼 수 없어”
창원지법 형사4단독 강희경 부장판사는 2023년 11월 3일 두성산업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기각했다.
강 판사는 “처벌 법규 구성요건이 다소 광범위해 법관의 보충 해석이 필요한 개념을 사용한 것만으로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배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처벌 수준을 놓고도 “입법 재량권이 헌법 규정이나 원리에 반해 자의적으로 행사된 경우가 아닌 한 법정형의 높고 낮음은 입법 정책의 당부 문제이지 헌법 위반의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에어컨 부품 제조회사인 두성산업은 2022년 2~3월 유해화학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클로로포름) 급성 중독으로 직원 16명이 독성간염에 걸렸다. 이 사고로 그해 6월 말 회사의 대표가 기소됐다.
검찰은 두성산업이 클로로포름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도 사업장에 국소배기장치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중대재해법 제2조 2호는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안에 3명 이상 생기면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한다.
두성산업은 사고 원인과는 별개로 중대재해법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해왔다.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규정한 내용이 불명확하고 경영책임자 등이 짊어지는 형사책임도 과하다고 봤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위헌성 다툼을 제대로 시작하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다. 관할 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여야 헌법재판소가 정식으로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다.
두성산업 측은 이날 재판에서 중대재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강 판사는 대표이사 A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320시간을 선고했다. 두성산업 법인은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강 판사는 “A 씨는 사건 발생 전 이미 여러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했음에도 국소 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작업자들이 독성화학물질에 노출돼 급성간염이라는 상해를 입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두성산업 측은 1심 판결 이후 항소했다. 중대재해법의 위헌성을 두고 다툼을 이어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대재해 재판’ 11건 모두 유죄
현재 법원에선 중대재해법 재판을 두고 기업 측의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날까지 최소 1심 선고가 종료된 11건의 중대재해 사건에서 모든 기업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중견 철강사인 한국제강의 경우 대표가 1·2심에서 연이어 실형(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돼 있다.
한국제강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대표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형량은 징역 1년~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이하였다. 이 중에서 중견 건설사 온유파트너스의 대표는 1심 판결 후 항소를 포기해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그럼에도 기소된다고 반드시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위법 정황이 명확한 중소기업의 재판만 있었지만, 앞으로는 큰 비용을 들여 안전사고 예방체계를 구축했던 대기업들의 재판도 예정돼 있어서다.
실제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던 대기업이 기소되지 않는 사례가 나오면서 재판에서도 대기업이 무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전주지검은 전주공장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최근 현대자동차를 기소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앞서 지난 8월엔 울산지검이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온산공장 폭발사고와 관련해 에쓰오일의 후세인 알카타니 전 대표(CEO)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회사의 정유생산본부장과 생산운영본부장 등 13명이 산업안전보건법 및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동부지검도 비슷한 시기 LG전자의 자회사인 하이엠솔루텍의 에어컨 수리기사 추락사 사건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수리기사의 과실이 사고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돋보기]
‘중대재해 1호’ 삼표산업도 위헌성 다툼 나서나
두성산업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국내 1호 중대재해 사건으로 재판 중인 삼표그룹이 어떤 전략을 펼칠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중대재해법의 위헌성을 다투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지 얼마 안 돼 두성산업의 시도가 무산돼서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측은 지난 10월 24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 등을 두고 열린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가능성을 거론했다. 정 회장 측은 “벌써 말씀드리긴 조심스럽지만 (중대재해법) 입법 전후로 위헌성 논란이 있었던 만큼 위헌법률심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삼표그룹 계열사인 삼표산업의 채석장 붕괴사고와 관련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계열사의 사고로 그룹의 총수가 재판에 넘겨진 첫 사례다. 삼표산업 대표이사와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있었음에도 정 회장이 경영책임자로 지목됐다.
삼표산업은 2022년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채석장에서 무너진 토사 약 30만㎥에 근로자 세 명이 매몰돼 사망한 사건으로 조사를 받아왔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정 회장 등 삼표산업 경영진이 양주사업소 가채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대시설인 야적장을 채석장으로 변경하고 석분토의 하부부터 골재를 채취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기소 과정에서 정 회장이 그동안 삼표산업 경영 전반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시를 내린 정황도 제시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21년 1월 28일 삼표산업 환경안전본부로부터 사업장 순회점검 결과 △2021년 10월 23일 양주사업소 덤프트럭 추락 사고 △2022년 1월 19일 양주 석분토 야적장 최상단에서 지반이 붕괴돼 트럭이 전복된 사건 등을 보고받았다.
또한 △2021년 3월 4일 협력사 불법파견 근절 △2021년 4월 1일 다른 회사의 안전 취약점을 참고해 협력사 일용직을 상용직으로 전환배치 △2021년 9월 29일 모르타르 사업장 전체 보행자 통로 안전 점검 △양주시 채석장 붕괴사고 직후 모든 채석장의 야적장 안정성 검토 등을 지시했다.
검찰은 “정 회장은 삼표산업 정례보고와 월간실적회의, 그룹 경영관리회의 등에 참석해 회사 대표이사 등에게 주요 현안을 보고받아 경영상 결정을 내렸다”며 “최고경영자로서 삼표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정 회장 등 삼표그룹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은 12월 22일 열린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삼표그룹 측이 중대재해법에 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해 재판부가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하게 된다. 헌재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은 일시 중단된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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