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스마트폰을 꿈꾸다[테크트렌드]
최근 자동차 업계 최대의 화두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 SDV)다. 엔진이나 섀시와 같은 하드웨어와 이를 제작하는 대량 생산 능력이 우선시된 자동차 업계에 갑작스러운 IT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포티투닷을 중심으로 한 현대자동차는 IT 인재 유치의 블랙홀이라 불릴 만큼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시장에서 빨아들이고 있고 자동차 업체로는 드물게 소프트웨어 중심의 개발자 콘퍼런스를 최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콘퍼런스에서 SDV의 정의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스마트폰과 같은 형태의 개발 방식, 그리고 스마트폰의 사용자 경험과 생태계가 차량까지 확장되는 또 하나의 디바이스로 나타내고 있다. SDV는 과연 또 하나의 스마트폰이 될 수 있을까.테슬라에서 가능성을 보다테슬라가 출시된 후 많은 사람들은 기존 방식과 다른 자동차에 환호했다. 전기차는 구동력이 떨어져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실제 운행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테슬라는 이 모든 것들을 불식시켰다. 오히려 기존 드림카라 불리는 차들보다 빠른 제로백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내연기관 못지않은 주행거리는 전기차가 선택지 밖이라는 생각을 없앴다.

하지만 테슬라를 구입하고 경험을 한 사람들에겐 이러한 자동차의 본질적 가치인 주행 성능 외에 더 큰 환호를 만들 만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차량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사실과 이러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스마트폰에서나 경험했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심지어 주행 성능이나 배터리 효율이 향상된다는 부분이다. 말 그대로 그동안 쓰고 있던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OS) 업그레이드와 동일한 경험이다.

테슬라는 이러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전기차라는 혁신 외에 또 다른 혁신을 만들었다. 바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당연시했던 분산형 제어기를 버리고 중앙 집중형 제어기를 제공하였다. 제어기란 자동차의 각 기능을 컨트롤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기기로 주행, 브레이크, 스티어링, 서스펜션, 냉각, 공조를 비롯해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관리시스템(Battery Management System, BMS) 등 차량의 기능 및 성능과 관련한 많은 부분들을 각각의 제어기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제어기들은 일반적으로 평등한 관계에서 상호 필요시에만 통신을 통해 협조 제어를 하고 있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의 분산형 제어기 구조란 중심에 하나의 통신 게이트웨이(Central Gateway)를 두고 각각의 제어기들이 붙어 있는 형태를 말한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은 이러한 분산형 구조에서 보디 컨트롤, 인포테인먼트, 주행 및 주차와 같은 각각의 도메인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마스터 도메인 제어기를 두고 효율성을 높인 도메인 집중형을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테슬라가 적용한 중앙 집중형의 경우, 도메인 집중형에서 기능 통합을 극대화하고 통합된 제어기 간 통신을 통해 시스템을 제어하는 형태로 각 제어기 간 통신을 위한 게이트웨이조차 없애는 형태다.

이러한 제어기 통합과 중앙 집중화는 극단적 표준화에서 시작된다. 테슬라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테슬라의 대표 기능 중 하나인 자율주행의 경우 모델 S, X, 3, Y에는 사물을 인지하기 위한 카메라 센서, 초음파 센서, 레이더 모두를 같은 센서로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센서를 컨트롤하고 센서에서 들어온 정보를 판단하는 자율주행 제어기인 하드웨어(HW) 역시 동일한 제어기를 사용하고 있다.

주행 제어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테슬라가 만든 자율주행 기능 등과의 최적화를 만들기 위해 자체 설계한 칩까지 적용하고 있다. 이와 달리 기존 자동차 업체의 경우, 차급별로 적용된 센서의 종류나 숫자가 다르고 센서에서 들어온 정보를 판단하고 제어하는 칩 역시 반도체 회사에서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 차종, 옵션, 지역 등 여러 요구 사항에 따라 조합해 구성, 표준화된 최소 수량의 제어기로 중앙 집중화를 하기에는 비용 측면이나 다양성 측면에 한계를 갖고 있었다.삼성전자와 애플의 차이스마트폰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삼성은 현대자동차와 같은 기존 자동차 업체와 유사하다. 디스플레이, 카메라, 통신칩을 비롯해 시스템을 구동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까지 외부에서 조달해서 사용한다. 운영체제도 구글 안드로이드를 채용하고 그 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 별도로 적용한다. 결국 삼성전자는 시장에 나온 또는 나올 예정인 부품을 잘 조합해 이를 시장에 적절하게 제공하는 제조 역량이 가장 큰 강점이다. 단점은 생태계 측면에서 운영체제를 구글에 의존하기 때문에 애플만큼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반면 애플은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만들고 이를 강화하고 있다. 운영체제를 자체 개발하고, 최적화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도 자체적으로 만든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강력한 커플링이자 디커플링을 의미한다. 자체 표준화된 하드웨어 아키텍처에 맞춰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업그레이드는 현재 안드로이드 시장의 파편화와 비교해 아이폰의 운영체제 통일성 및 앱 개발 환경 일원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폰의 수직 통합은 애플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맥북이나 애플 워치, 에어팟과 같은 이종 디바이스로의 동일한 사용자 경험 및 끊김이 없는 연동에 따른 확장은 차별화를 만들었고 이는 다시 앱이나 소프트웨어의 생태계 확대를 만드는 선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과 애플에 기존 자동차 업체와 테슬라의 차이를 투영할 수 있다. 근본적인 차이이자 시작은 바로 가장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와 칩 개발을 직접 하냐 여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수직 통합 작업을 만드는지 여부다. 물론 애플이나 테슬라를 보면 무조건적인 장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다양한 시장 및 수요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 두 업체 모두 굉장히 단순한 제품 라인업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대로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또한 폐쇄적인 생태계 환경으로 자체적인 모듈화 및 표준화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다 보니 자유로운 개발자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SDV가 바라보는 세상아직 SDV가 정의되고 적용된 실체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방향성과 이들이 바꿀 세상을 단정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독일의 폭스바겐이나 현대자동차처럼 기존 자동차 업체들 역시 과거와는 달리 소프트웨어와 자체 개발한 칩의 중요성에 대해선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스마트폰이나 테슬라에서 경험한 사용자 경험 이상의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자율주행과 같은 아직까지 상용화되지 않았거나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기술들과 서비스들이 필요할 것이고 안정적 하드웨어에 기반하여 소프트웨어에 따라 각각의 기능과 수행의 형태가 변화하는 자동차가 아닌 하나의 ‘탈것’이라는 디바이스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최형욱 CJ대한통운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