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안정’ 사이 ‘투트랙’ 전략
재계는 ‘50대 CEO’ 전성시대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삼성과 LG가 2024년도 임원인사를 마무리한 가운데 40대 부사장, 30대 임원 등 ‘젊은 피’들이 대거 발탁되며 세대교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경기침체와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래 준비를 위해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주는 투트랙 인사를 단행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사법리스크 부각에…“변화보다 안정”


삼성은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앞당긴 조기 인사를 단행하며 쇄신보다 안정을 도모했다.

올해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의 관전 포인트였던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 ‘투톱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사장 승진 대상자는 단 2명이다. 용석우(53) 디바이스경험(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업부장(부사장)과 김원경(56)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공공업무(Global Public Affairs)팀장(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각각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과 글로벌공공업무실장을 맡게 됐다.

지난해 삼성 오너일가를 제외한 첫 여성 사장으로 이영희 글로벌마케팅실장을 깜짝 발탁한 것을 포함해 사장 승진자가 7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소폭 인사다. 아직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남은 상황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2020년 9월 기소 이후 3년 2개월 만에 재판이 모두 마무리되며 2024년 1월 26일 선고만 남겨놓고 있다.

신사업 발굴을 위한 부회장급 전담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며 ‘안정 속 변화’를 택했다. 전영현(63)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이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는다.

미래사업기획단은 1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먹거리 아이템을 발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자와 전자 관계사 관련 사업을 중심으로 신사업 발굴을 검토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황 둔화로 인한 삼성전자의 실적 위기감과 사법리스크 문제가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다.

11월 27일 삼성전자 후속 인사에서는 부사장 51명, 상무 77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4명 등 총 143명이 승진했다. 2022년 187명에 비해서는 줄어든 규모다. 삼성전자는 2022년 30대 상무 3명, 40대 부사장 17명을 배출했다. 올해는 이보다 규모가 줄었으나 30대 상무 1명과 40대 부사장 11명을 발탁해 젊은 리더 등용 기조를 이어갔다.

올해 신규 임원 평균연령은 47.3세로, 전년(46.9세)보다는 다소 높아졌다. 갤럭시 S시리즈 선행 개발을 주도한 손왕익(39) 디바이스경험(DX)부문 MX사업부 스마트폰개발1그룹 상무가 이번 인사에서 유일한 30대 상무다.

황인철(46) DX부문 MX사업부 AI개발그룹장은 최연소 부사장 승진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올해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의 대표가 대부분 유임됐고, 임원 승진을 최소화했다.

LG
CEO 세대교체…구광모 친정체제 강화


LG그룹은 올해 임원인사를 통해 올드보이(OB)에서 영보이(YB)로의 세대교체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끌어온 ‘44년 LG맨’ 권영수(66) 부회장이 물러나고 1969년생 김동명(54) 자동차전지사업부장(사장)이 새로운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다. 권 부회장보다 신임 CEO의 나이가 12살 젊어졌다. LG이노텍은 정철동 사장이 LG디스플레이의 구원투수로 투입되면서 후임으로 1970년생 문혁수(53) 부사장을 CEO로 선임했다.

LG그룹의 전체 승진 규모는 2022년 160명 대비 축소된 총 139명으로, 이 중 신규 임원은 99명(전년 114명)이다. 신규 임원의 평균 연령은 2022년과 같은 49세다. 1980년대생 임원 5명 등 신규 임원의 97%(96명)가 1970년 이후 출생자다. 1982년생인 손남서(41) LG생활건강 상무가 최연소 임원이다.

이번 인사는 젊은 리더십으로 세대교체를 통해 취임 6년 차를 맞은 구광모 LG그룹 회장 체제를 강화하고 미래 준비에 방점을 찍은 인사라는 평가다.

구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 CEO를 교체하며 성과주의에 기반한 신상필벌로 조직 분위기 쇄신 의지도 분명히 했다. 2022년에만 2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간 LG디스플레이 CEO가 교체됐고, 호실적을 낸 조주완 LG전자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LG그룹 부회장단은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이 임명한 ‘6인의 부회장’이 모두 물러나고 구 회장 취임 이후 임명한 인물들만 남겨졌다. 구 선대회장 시절 임명된 마지막 부회장인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용퇴하며 LG그룹 부회장단은 기존 3인 체제에서 권봉석 (주)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2인 체제로 변화했다.

LG그룹은 “성과주의와 미래 준비라는 기조를 유지하되 지속성장의 긴 레이싱을 준비하는 리더십으로의 바통 터치, 분야별 사업경험과 전문성과 실행력을 갖춘 실전형 인재들을 발탁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SK
최태원 ‘서든데스’ 경고…부회장단 세대교체 예상


12월 초 예정된 SK그룹 임원인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 10월 CEO 세미나에서 2016년 6월 이후 7년 만에 ‘서든데스(돌연사)’ 위험성을 다시 경고하며 경영 화두로 던진 만큼 인사폭이 클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특히 지난해 전원 유임됐던 부회장 4인의 거취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선 올해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주)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그룹 부회장단의 일부 세대교체를 예상하고 있다.

차기 부회장 승진자로는 SK그룹 ‘카본 투 그린’ 전략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1964년생 59세 동갑내기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과 박상규 SK엔무브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현대차그룹
젊은 리더·R&D 인재 전진배치 예고


현대차그룹은 11월 17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현대차·기아 구매본부장 이규석(58) 부사장과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서강현(55)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각각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현대차그룹은 통상적으로 12월에 인사를 해왔으나 올해는 CEO급 인사를 한 달 정도 앞당겨 주요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의 CEO를 교체했다. 12월 정기임원인사에서도 세대교체 흐름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신규 임원 중 30% 이상을 40대로 발탁했던 만큼 R&D와 미래사업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 젊은 리더를 전진배치하는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돋보기]
80년대생 부회장 등판…임원 연령대 더 낮아져

30~40대인 오너 3·4세들이 초고속 승진으로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며 젊은 오너들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임원인사로 40대 부사장, 30대 상무 등 젊은 리더 발탁이 추세다.

올해 임원인사의 특징은 1980년대생 부회장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HD현대그룹에선 정기선 사장이 HD현대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코오롱가 4세 이규호 사장이 지주사 (주)코오롱의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올라섰다. BGF그룹의 2세 홍정국 사장도 연말 인사에서 BGF·BGF리테일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1980년대생 오너가 중에서는 이규호 (주)코오롱 부회장(1984년생),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 정기선 HD현대 부회장(1982년생), 홍정국 BGF·BGF리테일 부회장(1982년생),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1981년생) 등이 40대 초반에 ‘부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