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와 수많은 비즈니스 동반자들[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해마다 5월 첫째주면 ‘오마하의 축제’가 열린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라는 소도시에서 열리는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다. 3일간 계속되는 주총엔 줄잡아 3만여 명이 몰린다.

하이라이트는 첫째날 열리는 ‘주주와의 대화’다. 대개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가 넘어 끝난다. 주인공은 워런 버핏(93) 회장과 찰리 멍거(99) 부회장. 두 사람은 6시간 넘게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며 투자철학을 공유한다. 물론 주연은 버핏이다. 그는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달변이다. 주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물개박수를 칠 정도의 화술을 구사한다. 이런 버핏도 자신의 답변이 끝나면 반드시 마이크를 멍거에게 넘긴다. 멍거의 화법은 버핏과 다르다. 직설적이고 짧다. 버핏이 “멍거, 자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으면, 퉁명스럽게 “다 얘기해 놓고선, 당신과 같다”고 말해 환호를 자아낸다. 환상적인 ‘투 올드맨쇼’다.

필자는 2006년부터 3년 연속 벅셔해서웨이 주총에 참석했다. 그 때마다 두 사람이 연출하는 투자토크쇼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모든 질문마다 버핏이 먼저 답하는 건 아니었다. 주로 아시아와 글로벌 투자, 전통 제조업 투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멍거에게 답하도록 했다. 멍거는 특유의 간결하고 투박한 말투로 해박한 지식을 전달했다.

주총 마지막 날엔 기자간담회가 열린다. 2006년에도 그랬다. 오마하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100여 명의 기자가 참석했다. 동양 기자로는 일본 닛케이(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와 단 둘이 참석했던 필자는 운 좋게도 첫 번째 질문 기회를 얻었다. 필자는 대뜸 “한국 증시를 어떻게 보느냐. 관심 있는 한국 종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버핏은 “아, 한국은 자네가 잘 알지”라면서 멍거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멍거는 “어릴 때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근처에 살아 한국에 대해 좀 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10분 넘게 한국 예찬론을 이어갔다.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다. 정(情)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문화도 부럽더라”로 시작하더니 “한국 기업의 약진은 경이스럽다. 버핏이 한국 주식 투자를 망설일 때 사라고 권유한 것도 나였다(버핏은 2004년 포스코 등 20여 개의 한국 주식을 샀다). 벅셔해서웨이가 한국에서 많은 일을 하더라도 놀라지 마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랬던 멍거 부회장이 11월 28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1976년 벅셔해세웨이에 합류한 이후 47년간 버핏과 함께했다. 남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같은 주식을 매수해 단기차익을 거두는 ‘담배 꽁초’ 전략을 고수하던 버핏을 위대한 기업을 찾아 장기투자하는 투자자로 바꾼 것도 멍거였다. 그는 결혼(장기투자)할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연애(단기투자) 상대방을 만날 때와 다르다며 버핏을 설득했다고 한다.

2017년 주총에서는 “낚시의 첫 번째 법칙은 물고기가 있는 곳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법칙은 첫 번째 법칙을 절대 잊지 않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버핏은 성명을 통해 “벅셔해서웨이는 멍거의 영감,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즈니스 세계에서 동업자와 동반자는 많았다. 하지만 버핏과 멍거 같은 ‘영혼의 단짝(soulmate)’은 없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공동창업했지만 같이하지 못했다. 박현주 회장과 함께 미래에셋 신화를 창조한 최현만 회장도 최근 물러났다. 로이터통신은 ‘버핏과 멍거의 결합이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고 보도했다. 삼가 멍거 부회장의 명복을 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