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가업승계 전략]
평생 일군 기업, 지속가능 경영과 엑시트 전략[한국형 가업승계 전략③]
1983년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 연우를 창업한 기중현(65) 대표.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업계 1위로 키웠지만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에 기 대표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대신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외부 파트너를 찾기로 결정했다.

마침 국내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한국콜마가 매수에 관심을 보였고, 지난해 4월 두 회사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창업주가 가진 지분의 55%가 약 2814억원에 한국콜마로 매각됐다. 한국콜마는 인수 이후 연우와 협력해 친환경 용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조세부담 줄이고 파트너십 위해” 매각 선택기업도 하나의 인격체와 같아 더 나은 여건에서 성장을 꿈꾼다. 이런 의미에서 매각은 보다 넓은 차원의 승계다. 비록 자녀를 통해 가업을 물려주는 건 아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을 더 잘 키워줄 수 있는 주인을 만나 성장이라는 날개를 다는 셈이다. 또한 매각은 상속·증여를 통한 승계에 비해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가업승계를 하면 최고 세율 60%로 상속·증여세가 발생하지만, 매각하면 처분 주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최대 27.5%까지 내면 된다. 피할 수 없는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평생 일군 기업, 지속가능 경영과 엑시트 전략[한국형 가업승계 전략③]
창업주가 경영권을 매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부담되고 자녀가 가업승계를 희망하지 않아 현금화(cash-out) 필요가 있는 경우다. 한국M&A거래소의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도를 원하는 기업 10곳 가운데 1곳이 승계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을 시장에 내놨다.

또 다른 이유는 업종 전환이나 해외 진출, 새로운 성장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 경우 창업주는 중견기업 이상으로 회사를 키우고 싶지만, 투자 자금이나 인적 자원, 해외 네트워크 등에서 한계를 느끼고 부족한 역량을 채워줄 수 있는 파트너십을 원한다. 앞서 언급한 연우처럼 매각을 통해 지속적 성장과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으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성공적 매각 위한 세 가지 전략은그렇다면 새로운 성장을 꾀하고 넓은 차원의 가업승계로 이어지는 매각 전략은 무엇일까? 여러 기업들의 매각을 자문하면서 성공하는 매각의 공통점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업자 지분을 한 번에 팔지 마라. 오너의 지분을 일정 부분 남기고 나머지를 추후 매각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매도자는 인수자의 네트워킹과 자본력을 통해 향후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 나머지 지분에 더 높은 가치를 매겨 매각할 수 있다. 또한 이 전략은 자녀 지분을 통해 경영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재투자를 통해 가업승계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경영의 구석구석을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은 오너밖에 없다. 창업주가 남은 지분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면, 회사 구성원과 새로운 인수자에게 적응 기간을 주고 경영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다.

장민호 고려대 교수가 2000년 창업한 구강스캐너 기업 메디트가 대표적 사례다. 2019년 유니슨캐피탈(UCK)이 3200억원에 인수한 이후에도 창업주는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2대 주주로 남아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메디트는 매각을 통해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 판로를 개척했으며 올해 초 MBK파트너스에 2조원 넘는 금액으로 재매각됐다. 창업주는 두 번째 매각 후 자신의 남은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평생 일군 기업, 지속가능 경영과 엑시트 전략[한국형 가업승계 전략③]
둘째, 제삼자 컨설팅을 받아라. 오랜 고민 끝에 창업주가 매각으로 방향을 잡아도 실제 실행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경영자가 회사를 팔고 싶다고 언제든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최악의 경우는 아무런 계획이 없는데 시장에서 매각설만 도는 것이다. 이럴 땐 십중팔구 기업 가치만 떨어지고 실제 매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부 오너는 주변 인맥을 활용해 인수자를 수소문해 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절한 인수자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각에 성공하려면 매각 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적합한 인수자를 주변에 소문이 나지 않게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회계법인이나 증권사 등 인수합병 전문가를 통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자문사 선정 △매각 전략 수립 △매수자 탐색 △기업가치 평가 △협상 및 계약 체결 △거래 종료 등의 매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혹시라도 매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새로운 투자처를 연결해 주거나, 기업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조언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셋째, 평소 재무제표를 관리해라. 재무제표 관리는 기업 가치를 제고해 인수자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매각 전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은 재고자산수불부(자산의 보유 상황과 입출고 등의 내용을 일정 양식으로 기록한 문서), 유형자산명세서 등 재무회계 관련 자료를 잘 갖춰 놔야 한다. 특히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만큼은 평소에 잘 관리할 것을 권한다. 매출이 아무리 많아도 적자가 나는 회사라면 인수에 관심을 가지는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규모 설비 투자는 자제하고 기존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재무 지표를 우상향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홍성표 삼일PwC 파트너. (사진=삼일PwC)
홍성표 삼일PwC 파트너. (사진=삼일PwC)
홍성표 삼일PwC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