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 산책]
빼앗긴 내 상표, 돌려 받을 수 있을까[김우균의 지식재산권 산책]
미등록 상표를 사용해 동업하던 와중에 동업자 중 1인이 협의도 없이 다른 동업자가 해당 상표를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독으로 해당 상표를 출원해 등록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상표등록은 유효할까.

종업원이 회사의 신제품 출시계획을 알게 되자 해당 제품의 상표를 자기 명의로 몰래 출원하는 경우, 제품을 위탁생산해 납품해 주던 업체가 해당 제품의 상표를 선점 목적으로 몰래 출원하는 경우는 어떨까. 모두 배신적인 행위로서 부당해 보이고 이와 같은 출원에 따른 상표등록을 인정해 주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상표법은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할 동일·유사한 상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먼저 출원한 자가 등록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경우에도 먼저 출원한 자의 등록이 허용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히 상표법은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상표법은 동업·고용 등 계약관계나 업무상 거래관계 또는 그 밖의 관계를 통해 타인이 사용하거나 사용을 준비 중인 상표임을 알면서 그 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동일·유사한 상품에 출원한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설령 등록이 됐다고 하더라도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타인이 이미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을 준비 중인 상표(선사용상표)를 알게 됐을 뿐 상표등록을 받을 권리자가 아닌 사람이 상표권을 탈취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취지다.

위 법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거래관계의 내용과 해당 상표의 사용경위 등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서 상표의 출원행위가 배신적 행위에 해당하는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 이에 관해 대법원은 “타인과 출원인의 내부 관계, 계약이 체결된 경우 해당 계약의 구체적 내용, 선사용상표의 개발·선정·사용경위, 선사용상표가 사용 중인 경우 그 사용을 통제하거나 선사용상표를 사용하는 상품의 성질 또는 품질을 관리하여 온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도 대법원에서 위와 같은 판단 기준에 따라 사실관계를 다시 검토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기존의 상표등록을 무효로 하는 판결이 선고된 바 있다.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원고(선사용상표 사용자)는 생산을 희망하는 의류 견본을 피고에게 전달하고 피고가 이에 기초하여 의류상품을 생산하기로 피고와 합의했고, 이 합의에 따라 생산된 의류 상품에는 원고가 선정한 선사용상표가 표시됐다. 그런데 피고는 원고의 허락도 없이 선사용상표를 출원해 등록을 받았다.

이에 원고는 피고의 상표등록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특허심판원에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으나 패소했고, 원고가 이에 불복해 특허법원에 다시 소를 제기했으나 마찬가지로 패소했다. 원고는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대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의 상표등록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해 특허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원고가 선사용상표를 선정하였던 점, 원고가 의류 상품의 견본을 제공하고, 의류 상품의 원단·색상 등을 포함한 디자인 및 제작방식, 제작수량 등을 결정했던 점, 피고는 원고의 의사결정 없이 독자적으로 의류상품을 디자인해 생산한 적이 없었던 점, 원고가 생산된 의류상품의 품질을 검수한 뒤 그 유통 여부, 선사용상표의 표시 여부를 통제·결정했던 점 등을 이유로 원고가 선사용상표의 사용자라고 판단했다.

원고가 피고 명의로 상표등록을 받는 것을 용인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따라서 피고가 선사용상표를 출원해 등록받은 것은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20호에 따라 그 등록이 무효로 돼야 한다고 판시했던 것이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