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회사 잘 키우려면…가족기업의 혁신·성장 전략[한국형 가업승계 전략④]
몇 해 전 부친으로부터 자동차부품 회사를 물려받은 3세 경영자 A 씨는 앞으로 사업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다. 전기차로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에 대응하고자 로봇과 반도체 기업을 인수했지만, 관련 분야 네트워크가 부족하고 인수한 기업 간의 시너지가 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가업을 물려받았다면 A 씨와 같은 고민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들은 창업주나 2대와 달리 산업이 완전히 재편되고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가업을 물려받았다. 특히 자동차나 섬유, 유통 분야처럼 산업이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평생 이어온 업(業)의 본질 자체를 바꿔야 할지 결정해야 할 시기다.

게다가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업을 해 온 기업에는 좋은 품질과 서비스, 재무적 성과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비(非) 재무적 가치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인 PwC가 전 세계 82개국 가족 경영기업 관계자 204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들은 고객 데이터 정보 수집과 활용 방안, ESG 및 다양한 포용성의 조직문화 같은 비재무적 목표 달성 전략을 가진 기업이 더 많은 신뢰를 얻는다고 분석했다.

급변하는 산업 및 경영 환경에서 3세 경영자가 가족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wC의 한국 회원사인 PwC컨설팅은 성장을 위한 체질개선(Fit for Growth),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T),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유용한 전략을 소개한다.
물려받은 회사 잘 키우려면…가족기업의 혁신·성장 전략[한국형 가업승계 전략④]
첫째, ‘핏 포 그로스 전략’으로 경영 비효율을 제거하라오랫동안 가업을 일궈온 기업에서는 불가피하게 비효율이 쌓인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제품군도 많아지고, 제품의 생산 및 판매 조직도 비대해진다. 고객과 거래를 오래 하다 보면 요구사항도 다양해진다. 이럴 때는 복잡성 해소 차원에서 사업 전반을 재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파레토 법칙’이라 불리는 2대 8 법칙을 적용해 수익이 안 나는 20%의 제품, 조직, 프로세스를 정리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재고를 줄이고 재무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현재 비즈니스를 효율적으로 유지하면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도 지속하는 것이다. ‘핏 포 그로스’로 불리는 이 같은 경영 효율화 작업은 기존 사업의 슬림화를 통해 캐시플로(현금흐름)를 창출하고, 이를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이는 차별화 역량에 집중해 새로운 절감 기회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비용 줄이기에만 초점을 맞춘 ‘마른 수건 쥐어 짜기’와는 다르다. 일례로 40년간 사업을 유지하며 원가 절감이 어려웠던 B 기업은 공장 운영 전반에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품질 관리 비용을 최적화해 유지관리 비용을 30% 줄일 수 있었다.
물려받은 회사 잘 키우려면…가족기업의 혁신·성장 전략[한국형 가업승계 전략④]
둘째, DT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구성원 합의가 중요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근본적으로 혁신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 디지털 기술에는 인공지능, 드론, 3D프린팅, 블록체인, 가상현실, 로봇, 사물인터넷, 증강현실이 포함된다. 기업의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품 서비스의 디지털화 등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해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대부분 CEO들은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DT를 꼽고 있지만 여러 기업이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DT를 단순히 일시적 트렌드로 인식해 단기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마치 화려한 패션처럼 도입하면 기술 최우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충분한 투자 없이 내부 구성원의 혁신만 강요하는 경우도 실패 이유로 꼽힌다.

규모가 작은 가족 기업일 경우, DT에 대한 대규모 투자보다 경영자가 DT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회사 규모와 여력에 맞게 필요한 기술을 전략적으로 핀포인트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또한 이 기술을 수용하고 전파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셋째, ESG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라기업들이 ESG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다. 어떤 기업은 ESG를 경쟁력 제고의 수단으로 보고 고객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반면, 다른 기업은 ESG를 규제 관점에서만 바라보면서 ‘회사규모도 작고 담당 직원도 없는데 왜 하는 거냐’며 사실상 손 놓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과도한 대응이나 감정적 반응은 금물이다. 최근 ESG는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분야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객 니즈에 맞춰야 한다.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이 친환경이라면,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값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입찰이나 거래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영자의 감지(sensing) 능력이다. 모든 회사가 ESG 경영을 똑같은 수준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SG 정책과 전략이 회사의 어떤 부문에 어떤 강도로 영향을 받는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ESG를 어느 정도 우선순위로 둘지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ESG에 관한 회사의 정책과 조직,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 정책의 경우, 회사가 ESG 전략을 갖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증거다. ESG 정책은 공통적인 특성이 많아서 타사 벤치마킹을 통해 기본 정책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 자사의 ESG 정책을 공표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ESG는 넘기 힘든 허들이 아니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부터 준비하고 이를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김창래(왼쪽)∙윤영창 PwC컨설팅 파트너. (사진=삼일PwC)
김창래(왼쪽)∙윤영창 PwC컨설팅 파트너. (사진=삼일PwC)
김창래·윤영창 PwC컨설팅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