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로 시작한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저성장과 고용위기의 시대. 창업을 꿈꾸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성공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해 본 경험이 있는 배태준 변호사는 스타트업 초기 창업자 멘토링, 투자심사 참여 및 자문 등을 통해 나름의 가설을 세웠다. 바로 성공한 스타트업에는 대표의 ‘리더십’이 빛난다는 사실이다. 배 변호사는 성공한 창업자들을 인터뷰해 이 가설에 대한 검증을 시도하기로 했다. 각 분야에서 각광받는 기업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업 및 활동 분야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와 더불어 ‘리더십’의 세부 항목에 대한 창업자들의 경험과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
트래블월렛 창업자 김형우 대표는 B2C를 넘어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다른 회사에 제공하는 지불결제 B2B 비즈니스로의 확장을 꿈꾼다. 이 기업은 IT 인프라를 100% 클라우드상에 구현해 IT 인프라 설치 및 관리에 드는 비용을 현저히 낮췄다. 따라서 타사 대비 수수료가 저렴하고, 정산 과정을 단순화·자동화해 효율성이 높다. 이러한 장점 덕에 이미 여러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에 지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트래블월렛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은행의 ‘트래블로그’와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명칭이 유사해 헷갈려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트래블월렛 김형우 대표는 “트래블로그 역시 시장을 같이 키워 나가는 좋은 사업자지만 2023년 11월 기준 트래블월렛의 거래량은 트래블로그의 4~5배 정도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버티는 힘’이라고 말한다. 무수히 많은 기업 중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운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좀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운이 좋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야구에서도 타석에 많이 서는 타자가 안타를 더 많이 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기회가 올 때까지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한다. 그는 “하지만 맹목적인 파이팅 정신으로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금물”이라며 “개선 없이 무작정 버티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도 떨어져 나가고 본인도 피폐해진다”고 설명했다.
2023년 예상 매출액 400억원, 2024년 예상 매출액 1000억원, 누적 투자유치액 700억원의 고공 실적을 보이고 있는 트래블월렛 김형우 대표와 기업가 정신 및 규제 개선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Q. 기업가 정신과 관련, 대표님이 창업하고 나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기를 쓰면서 제 기억을 정리하는데,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는 데 운이 90% 이상 작용한 것 같습니다. 가끔 자기 능력으로만 성공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분들이 계시는데, 스스로 돌아보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두 번째는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즈니스기는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서 거래 조건이 많이 달라집니다. 신의와 믿음이 있다면 상호 호혜적인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잘되기 위해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고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주면서 시너지를 내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람의 신의와 성실이 주는 가치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가운데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제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90% 이상이 돈이었습니다(웃음). 하지만 스타트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창업해서 성공할 정도로 열의가 있고 노력하는 사람은 회사를 다녀도 먹고살 정도의 돈은 벌 수 있을 겁니다. 창업의 길은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매우 외롭고 긴 길입니다. 이 과정을 버티기 위해서는 ‘뜻’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종래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축은 대기업과 제조 기반의 중소기업입니다. 하지만 현재 인구나 산업 구조 상 제조업이 무너져 가는 것 같습니다. 반면 서비스나 IT 중심의 3차, 4차 산업은 아직 약합니다. AI나 소프트웨어와 같은 분야가 새로운 산업 영역을 채워줘야 합니다.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신산업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마켓을 상대로 누구보다도 오류가 적고 효율이 높은 결제대행 소프트웨어를 제공함으로써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면서 해외 매출도 올리는 것이 트래블월렛의 목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내 자녀가 살아가게 될 대한민국에서의 4차 산업 및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싶습니다. Q. 트래블월렛이 추구하는 가치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기존 사업자들과 조화를 유지하면서 협업하자’입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가 식당을 운영한 제 지인의 일화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기존 상인들의 텃세가 심하지 않겠냐고요. 당연히 굴러온 돌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그분은 반경 3km 내 음식점과 겹치지 않는 메뉴로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주변 상인들이 찾아와 식사를 하고, 많이 도와줬다고 합니다. 결국 매출도 꾸준히 유지하면서 그 지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가게로 성장했고요.
트래블월렛도 기존 플레이어와 상생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공격이 방어보다 병력이 다섯 배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경쟁은 반드시 출혈을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필드를 찾아 애로사항을 해결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금융기관이나 카드회사와 조화를 유지할 수 있었고 많은 협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Q.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불결제에 필요한 IT 인프라와 시스템 구축 및 운영을 아우르는 프로세싱 비즈니스 분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트래블월렛은 최근 BC카드와 해외 QR결제 사업제휴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트래블월렛 고객은 빠르면 내년부터 카드 결제 외에도 BC카드 결제망을 통한 QR 결제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는 해외 QR결제 외에도 해외 QR결제 인프라 확대를 위한 계획도 함께 실행하려고 합니다.
이 서비스가 유망한 이유 중 하나는 데이터입니다. 현재 성장세라면 저희는 곧 한국인 여행객의 해외 결제 데이터를 30~40%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불결제 업무를 완전히 자동화한다거나 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등의 신사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또 지불결제 과정에서 결제승인처리 문제 등 생각보다 오류가 많습니다. 현재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결하고, 이 과정에서 분쟁도 적지 않습니다. 저희가 빅데이터를 모으면 오류 유형과 수정된 결과값을 분석해 오류를 수정하는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분쟁 및 승소율 데이터가 쌓인다면 적정한 보험금액을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전 세계 지불결제 뱅킹을 주도하는 여러 국제 금융기관들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지불결제 프로세싱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합니다. Q.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창업자들이 참고하면 좋은 팁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성과를 냈더라도 해외, 특히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나가면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신뢰를 얻고 사업을 진행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조금 더 신속하게 진행하고 싶다면 국내외 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정부나 코트라(KOTRA) 등 공공기관에서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도와줍니다.
우리 기업은 일본 정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입상한 것이 일본 진출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회사의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정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보증이 중요하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방법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Q. 우리나라의 창업 환경 중 개선을 바라는 부분이 있나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에도 규제 샌드박스의 기회가 충분히 제공됐으면 합니다. 현재 주로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성공한 스타트업이 이 제도를 이용합니다. 규제기관에서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의 목소리에 크게 귀기울여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습니다.
좋은 취지로 만든 제도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활용하지 못한다면 자칫 대기업을 위한 독점적 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정책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초기 스타트업에도 일정 부분 샌드박스 신청 TO(Table of Organization, 정원)가 배분되는 구조를 만들거나, 대기업으로 하여금 스타트업과 상생적 차원에서 샌드박스를 함께 신청하는 것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배태준 법무법인 세종 신산업플랫폼·ICT·TMT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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