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와 한국사내변호사회(이하 한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로이어’는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로펌과 변호사를 알아보는 조사다. 2010년부터 시작해 14회째를 맞았다.
올해도 로펌의 주요 고객인 한사회 소속 변호사들과 기업법무 담당자에게 설문을 돌려 어느 로펌의 ‘전문성’이 가장 뛰어난지, 또 어느 로펌의 ‘서비스’가 가장 좋은지 물었다. 각 부문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변호사가 누구인지도 함께 적어내도록 했다.
올해는 평가 방식에 변화를 줬다. 설문 결과에서 도출한 점수에 ‘정성평가’까지 더해 최종 수상 로펌을 선정했다.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구성한 ‘평가위원회’(위원장 이황 고려대 교수)를 구성했다. 로펌 상황을 잘 아는 로스쿨 교수와 대기업 법무담당자가 위원으로 참여해 직접 로펌들과 변호사들의 올해 활약상을 검토한 뒤 평가에 반영했다.
그 결과 올해 전문성 부문 ‘대상’은 김·장 법률사무소가 차지했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법무법인 율촌이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와 함께 총 41명의 변호사가 ‘베스트 로이어’에 이름을 올렸다.
올 한 해 로펌의 주요 고객인 국내 기업들을 둘러싼 대내외적 여건은 좋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칩스법’ 과 같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새로운 질서가 생겨났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들은 큰 위기감을 느꼈다.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새 규제가 만들어지며 기업들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023년 법률 시장에는 이런 기업들의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반영됐다. 올해 주요 로펌은 구조조정과 새로운 규제대응을 위한 노동, 중대재해 부문 관련 일감이 넘쳐난 것으로 전해졌다. 또 IRA, 칩스법 등으로 대표되는 해외규제 분야 자문 건도 급증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2023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전문성 평가 조사에서 올해 전통 강호들의 활약이 유독 돋보인 것도 이런 기업들의 어려워진 경영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수많은 법조인력과 경험치를 앞세워 복잡다단한 법률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대형 로펌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났음을 엿볼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톱10’에 안착한 로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업계에서 오랜 기간 활약을 이어온 로펌들이 일제히 순위권에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올해 역시 급성장을 이어가며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키워낸 신예 로펌들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매번 조사 때마다 10위권 내에 깜짝 등장했던 다소 생소한 이름의 ‘다크호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경비즈니스와 한국사내변호사회(이하 한사회)가 함께 진행한 ‘2023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전문성 평가는 ‘금융 일반(은행·증권·핀테크 등)’, ‘M&A·IPO’, ‘조세·관세’ 등 14개 부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로펌의 주요 고객인 한사회 소속 변호사들과 기업법무 담당자에게 설문을 돌려 각 부문별로 실력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로펌을 적어내도록 했다.
총 1479명이 설문에 참여했으며, 이들이 적어낸 답변을 종합해 점수를 매겨 로펌 순위를 책정했다. 이후 ‘베스트 로펌 로이어 평가위원회’(위원장 이황 고려대 로스쿨 교수)에서 그 결과를 토대로 ‘정성평가’를 진행해 최종 수상 로펌을 선정했다.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다. 주요 로스쿨 교수 및 대기업 법무 담당자 등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
올해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량평가 및 정성평가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로펌에 수여하는 ‘대상’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가 차지했다. 김앤장 ‘빅딜’ M&A 휩쓸어김앤장은 한경비즈니스가 베스트 로펌 조사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선두자리를 다른 로펌에 내준 적이 없다. 올해 역시 대상의 주인공이 되며 업계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부문별 순위에서도 경쟁 로펌들을 압도했다. 김앤장은 ‘조세’ 부문(법무법인 율촌 1위)을 제외한 13개 부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김앤장은 올해도 수많은 기업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올해 사정이 좋지 않았던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김앤장은 규모가 큰 거래들을 연이어 수임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상반기 최대 ‘빅딜’이었던 롯데케미칼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MBK파트너스의 메디트 인수 자문 역시 김앤장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두 건의 거래액은 각각 2조7000억원과 2조4000억원에 달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 및 SK온과 미국에 배터리공장 합작회사(JV)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도 김앤장이 자문을 맡았다. 총 투자금액만 10조가 넘는 규모다.
김앤장의 실력을 믿고 문을 두드리는 해외 기업 고객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해외 기업들이 김앤장의 단골손님이다. 국내 로펌 중 최고라고 평가받는 김앤장의 문을 두드려 최적의 법률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올해 김앤장을 찾은 대표적인 해외 기업으로는 부동산·인프라 투자 등의 사업을 하는 싱가포르 대기업 케펠(Keppel)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한국 내 데이터센터 사업 진출을 위해 김앤장에 도움을 요청했다. 김앤장 관계자는 “해외 기업의 국내 법인 설립에 대한 풍부한 업무 경험과 규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케펠의 데이터센터의 설립 및 운영 규제에 관한 상세한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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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뒤를 잇는 ‘최우수상’에는 세 곳의 로펌이 선정됐다. 법무법인 세종(이하 세종), 법무법인 율촌(이하 율촌), 법무법인 광장(이하 광장)이다. 평가위원회는 세 로펌의 전문성 평가 점수 차이가 아주 근소했던 점을 감안해 ‘공동 최우수상’ 선정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율촌·세종 맹활약 이어져이 중에서도 세종과 율촌의 최우수상 선정은 올해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관전포인트다. 실적과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국내 로펌업계의 순위는 보통 ‘김광태’(김앤장, 광장, 태평양) 혹은 ‘김태광’(김앤장, 태평양, 광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이 세 개 로펌이 ‘빅3’로 불린다.
김앤장이 압도적 선두 자리를 이어 가는 상황 속에서 광장과 태평양이 매년 치열한 2위 싸움을 펼쳐왔다. 한경비즈니스의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매년 광장과 태평양 중 어느 로펌이 김앤장의 뒤를 이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런 판도에 균열을 가게 한 로펌이 율촌과 세종이다. 매년 적극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며 사세를 확장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이는 두 로펌을 바라보는 업계 평판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효과가 처음 나타난 것은 ‘2019년 대한민국 베스트 로펌’ 조사다. 당시 세종이 처음으로 전문성 평가 3위를 기록하며 ‘빅3’ 구도를 깨트렸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한경비즈니스 조사에서 더 이상 ‘빅3’가 함께 ‘톱3’에 이름을 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톱3 중 한 자리는 항상 율촌이나 세종에 돌아갔다.
율촌과 세종의 활약상을 보면 올해도 왜 사내변호사들과 대기업 법무 담당자들이 두 로펌에 높은 점수를 줬는지 이해가 간다.
율촌은 올해 특히 공정거래 부문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다수 처리했다. 율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글로벌 게임 개발 및 배급 사업자인 액티비전블리자드의 발행주식 전부를 687억 달러(약 84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게임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대리했다. 그리고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 없는 단순승인 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율촌 관계자는 “여러 해외 경쟁당국에서 해당 거래에 대한 ‘불허’ 내지 ‘시정조치’가 결정 또는 검토되는 상황에서 본건 거래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국내 시장의 특수성 및 차이점을 강조해 단순승인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율촌이 송무 부문에서 맡아 처리한 사건도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국내 대형 극장을 대리해 건물주들을 상대로 한 임대료 감액 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냈다. 율촌은 3곳의 영화관에 대해 평균 감액률 20%의 성과를 얻어냈다.
‘조세 명가’라는 별명답게 율촌은 조세 부문에서도 투자기구 등을 대리해 업계 최초로 ‘중과세율 배제가 농어촌특별세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는 조세심판원 결정을 획득하는 등 여러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냈다. 율촌은 이번 전문성 평가 결과 ‘조세 부문’에서 김앤장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세종은 올해 가장 활발하게 인재를 영입한 로펌으로 꼽힌다. 다양한 분야에서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스타급 변호사’들을 대거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전력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세종은 올해 다방면에서 활약을 이어갔다. 금융일반 부문의 경우 세종은 올해 에너지 분야에서 활발하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수행해냈다. 유럽 최대 사모펀드인 EOT의 SK쉴더스 인수 관련 금융자문, 제주 한림 해상풍력단지 관련 PF 자문, 전남 안마도 해상풍력 사업개발 및 PF 자문 등을 세종이 담당했다.
국제중재 부문에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미르의전설2’ 관련 라이선스 문제로 위메이드가 중국 회사 지우링과 벌인 1조6000억원대 국제중재에서 위메이드 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종은 현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등 다수의 공기업을 대리해 각종 상사중재와 국제건설 분쟁,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을 수행 중에 있다.
최우수상에 선정된 광장은 청호나이스가 코웨이를 상대로 제기한 수백억원대의 얼음정수시스템 특허침해 소송 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광장은 항소심에서부터 코웨이를 대리했다.
그리고 결과를 완전히 뒤바꿨다. 코웨이의 특허침해를 인정했던 청호나이스의 청구를 모두 인용했던 1심 판결을 수임 1년 만에 뒤집고 코웨이의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여러 대형 로펌들이 코웨이의 대리인으로 참여했지만 모두 실패한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을 광장이 새롭게 인수해 성공시킨 것이다. 광장의 역량과 전문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외에도 광장은 올해 MBK파트너스의 메디트 경영권 지분 인수자금 조달과 관련해 대주단을 위한 9000억원의 대출에 관한 자문을 제공했으며, 2500억원대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킨 디스커버리펀드의 사기 사건에서 피고인을 대리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저력 과시한 태평양·화우‘우수상’은 태평양과 화우가 차지했다. 태평양은 올해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M&A였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경영권 이전 및 한화그룹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를 완수해낸 주인공이다. 태평양은 매각 측인 한국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을 대리해 한화그룹이 국내 2위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 주식 49.3%를 인수하는 거래를 자문했다.
부동산·건설업 부문에서의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사업비만 6조원 규모인 동북아시아 최대 복합리조트이자 한국의 넷째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서게 될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 개발을 자문한 것도 태평양이었다.
송무 부문에서 태평양이 맡은 사건 중에는 삼성SDS 데이터센터 화재사건을 주목할 만하다. 설치한 발전기 연도의 하자로 인해 화재가 발생, 약 600억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던 사건이다. 삼성SDS가 시공업체인 삼성중공업 및 그 하도급업체인 한화테크윈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1심에서 전부 패소하고 항소심을 태평양이 수행하게 됐다. 태평양은 항소심에서 화재 원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시공업체들의 책임을 입증해 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화우도 우수상에 선정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화우는 그간 세간의 화제를 모으는 기업 경영권 분쟁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며 ‘경영자문’ 부문에서 맹위를 떨쳐왔다. 한진칼과 KCGI 펀드 등 3자 연합 간 경영권 분쟁에서 한진칼 측을 대리했으며, 금호석유화학을 둘러싼 박찬구 회장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회사 측을 대리해 큰 잡음 없이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한앤컴퍼니를 대리해 남양유업 분쟁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2023년에도 활약은 이어졌다. 올해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도 화우가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진은 최대주주와 분쟁이 발생하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키로 결의했다. 이때 화우는 최대주주(이수만 전 SM총괄프로듀서)를 대리해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화우의 손을 들어줬다. 아울러 화우는 최대주주의 지분을 하이브에 매각하는 거래도 자문했다.
화우는 IPO 부문에서 올해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스마트글라스를 제조·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 캡틴비전(옛 글람)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법률자문을 제공한 로펌이 바로 화우였다.
이 밖에도 법무법인 지평, 법무법인 대륙아주,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동인 등 전통의 강호들이 사내변호사 및 기업법무 담당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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