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강점으로…명품 대신 1020세대 놀거리 강화
온라인 유행하는 모든 것, 더현대 팝업스토어로 고객에 제공
K-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오프라인으로 끌어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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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서남부 상권은 오랜 기간 쇼핑의 불모지였다. 불편한 교통환경 탓에 접근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백화점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2002년 양천구 목동에 새 점포를 낼 때도, 2021년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더현대 서울’이 들어설 때도 그랬다.

업계의 평가는 갈렸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유동 고객을 끌어모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무리수’라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여의도는 상권 특성상 평일에는 매출을 내기 어려워 주말 2일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상품력이었다. 백화점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명품을 유치하지 못하면서 ‘앙꼬 없는 찐빵’ 신세가 됐다. 업계에서는 “백화점은 명품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2년이 지난 현재, 더현대 서울은 업계 최단 시간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리테일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현대 서울의 성공 전략은 ‘역발상’이었다. ‘3조’보다 더 주목받는 ‘1조’최근 백화점 업계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것은 신세계와 롯데의 매출 경쟁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곳에서 먼저 ‘매출 3조원’을 달성하고, 1위 점포 입지를 강화할지 여부다. 신세계에서는 강남점, 롯데는 잠실점을 앞세워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세계가 더 가능성 높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신세계 강남점은 2019년에도 국내 최초로 매출 2조원을 달성하며 단일 점포의 매출 2조 시대를 열었다.

이 같은 상황에 주목받는 곳은 따로 있다. 12월 2일에 연매출 1조41억원을 기록한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이다. 2021년 2월 오픈한 이후 2년 9개월 만에 달성한 ‘연매출 1조원’이다. 국내 백화점 중 최단 기간에 해당한다.

더현대 서울은 2021년에 매출 6700억원을 기록했고, 이듬해 전년 대비 41.9% 증가한 9509억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경기침체로 소비가 위축, 업계 전반의 성장 둔화에도 5.6% 늘어난 매출을 기록하며 1조원을 돌파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서울을 대표하는 트렌디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표방한 더현대 서울이 이번 최단 기간 1조원 돌파로 한국을 넘어 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쇼핑 메카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더현대 서울은 오픈 초기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명품 브랜드 유치 실패 △주말 대비 낮은 평일 방문객 빈도 △코로나19 여파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더현대 서울은 ‘에루샤 없는 백화점’으로 통한다. 현대백화점 측은 오픈 직전까지도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빅3’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매장 오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유치에 실패하며 3대 브랜드 없이 오픈했다.

에루샤 매장은 백화점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매출에도 중요한 부분이다. 백화점의 급은 에루샤 유치 성과에 달렸으며, 3대 명품을 모두 유치해야 ‘특급’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들 3대 브랜드는 점포의 전체 매출에서 약 10%를 차지한다. 백화점 3사 가운데 ‘에루샤’를 모두 가진 점포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신세계백화점 본점·강남점·센텀시티점·대구,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등 6곳에 불과하다.

아울러 여의도 상권 특성상 주말 장사로 실적을 끌어올려야 했다. 오피스 상권으로 직장인들이 많아 평일에는 F&B(식음료) 매장으로 수요가 몰렸고, 이외의 매장은 고객 유치가 어려웠다. 코로나19로 인한 고강도 거리두기 정책도 매출에 부정적이었다. 더현대 서울은 오픈 직후인 3월부터 확진자 발생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일부 점포를 폐쇄하며 매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같은 어려움 탓에 일각에서는 이른바 ‘오픈발’이 사라지면 더현대 서울의 방문객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신세계·롯데 '3조 경쟁'에도…'현대 1조'가 더 주목받는 이유
사진=현대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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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을 강점으로…더현대, 어떻게 성공했나더현대 서울은 우려와 달리 업계 최단 기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경쟁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명품 매장 유치 실패를 상쇄할 MD 확보 등에 집중한 결과다.

특히 더현대 서울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을 썼다. 명품이 없는 것을 기존 백화점과의 차별점으로 역이용했다. 명품 소비를 주도하는 연령대는 경제적 소득이 있는 30~50대다. 명품 경쟁력이 약한 더현대 서울은 이들 대신 1020세대를 확보하는 데 전념했다. 팝업스토어(일회성 매장) 운영과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유치에 집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현대 서울 이전까지 1020세대는 백화점 업계의 주요 고객층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소비 규모가 작고, 백화점을 방문한다고 해도 상품 구매보다는 맛집, 문화센터 등 구매 이외의 목적이 주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기업 오픈서베이의 ‘백화점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20~30대는 타 연령 대비 구경과 아이쇼핑 목적으로 백화점에 방문한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사에 응한 4050세대의 42.4%는 물건 구매 목적으로 백화점을 방문했다. 오픈서베이는 “타 연령대 대비 40대에서 백화점 방문 시 소비가 일어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20대는 전체 방문 대비 소비가 일어나는 경우가 적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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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은 낮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오픈 후 2년간(2021년 2월 26일~2023년 11월 31일) 500여 회의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애니메이션, 아이돌 가수, 트로트 가수, 웹툰 등 주제도 다양하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팝업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도 기존 백화점과 경쟁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과 경쟁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마뗑킴’, ‘시에(SIE)’, ‘쿠어’, ‘디스이즈네버댓’ 등 2030세대 선호도가 높은 온라인 기반 패션 브랜드를 유치했다. 더현대 서울은 온라인 브랜드의 ‘백화점 1호 매장’을 유치시키는 역쇼루밍 전략을 펼치면서 고객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픈 첫해 19.1%에 달했던 식품 매출 비중은 2022년 16.5%, 올해 13.2%로 서서히 감소했고 영패션은 2021년 6.2% → 2022년 10.3% → 올해 13.9%로 늘어났다. 더현대 서울의 영패션 매출 비중은 더현대 서울을 제외한 현대백화점 전 점포 평균(8.2%)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다

이 과정에서 더현대 서울은 ‘힙한 백화점’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보, 2030세대의 매출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더현대 서울의 2030세대 매출 비중은 지난해 50.3%에서 올해 60%로 늘어났다. 더현대 서울을 제외한 현대백화점 15개 점포의 2030세대 매출 비중(26.1%)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객단가는 10만원을 넘어섰다. 2021년 8만7854원에서 지난해 9만3400원, 올해 10만1904원으로 집계됐다. 해외 명품 매출은 올해 전체 매출 중 25.6%를 차지하며 객단가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더현대 서울의 상승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루이비통 입점이 확정돼 올해 말 매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루이비통의 입점은 향후 에르메스, 샤넬 등의 매장 유치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한 브랜드가 들어오면 다른 브랜드와 협상할 때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루이비통 오픈,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한 단독 매장 오픈 등으로 매출 증대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