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관련 정보는 왜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할까?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기후위기가 ‘투자 대상의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즈니스의 가장 중요한 위험을 식별하고, 이러한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를 반대하는 기업도 많다. 공시 리스크가 있을 뿐 아니라 기후위기 리스크 노출을 꺼려서다. 정부는 기후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후 정보가 필요하다. 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해야 하는데, 기업의 자발성에 의존한 기후 정보만으로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투자자, 기업, 정부를 아우를 수 있는 건 바로 금융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한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1722조~2097조원의 누적투자가 필요하다고 예측했다. 국가 재정으로 소화하기에는 불가능한 투자 규모다. IMF는 주요 선진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계속 보조금 위주의 정책을 펼친다면 공공부채가 GDP의 40~5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지구온난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전 세계적으로 민간 중심의 기후 금융이 뿌리내려야 한다. 기후 정보공개는 바로 돈의 물길을 바꿀 기후 금융의 기초 인프라다.
정량보다 중요한 TCFD 정성 정보
비재무정보 공개 의무화 기준으로는 소위 빅3가 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유럽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에 따른 기준서(ESRS) 그리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 관련 공시(The Enhancement and Standardization of Climate-Related Disclosures for Investors)다. ISSB의 지속가능성 전반(S1)과 기후(S2)에 대한 표준은 지난 6월에 발표됐고, 유럽연합(EU)의 ESRS는 7월에 최종 확정되었다. SEC의 기후 공시안은 2022년 3월에 발표되었지만 확정이 지연되고 있다.
빅3의 기후 관련 공시는 공통적으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프레임워크를 수용한다. TCFD의 4대 핵심 카테고리는 ‘기후위기 대응 의사결정 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metric)와 목표’다. ‘전략’ 카테고리에서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 전략과 의사결정, 재무 상태, 재무 성과, 현금흐름 그리고 기후 회복력에 대한 보고를 권고한다. ‘이것까지 해야 하나? 혹은 할 수 있을까?’로 논의가 뜨거운 스코프3 배출량 공시는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한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정량적 지표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은 정성적 보고에 가깝다. 백태영 ISSB 위원은 이에 대해 “(ISSB에서) 재무정보란 재무적 관련성이 있는 정보이며, 재무 수치가 아니다. 정량보다 정성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빅3의 기후 정보공개 기준을 특징별로 살펴보면 투자자 측면에서 중대성을 강조하는 미 SEC의 대표적 내용은 1% 규칙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무적 영향이 해당 회계연도 재무제표상 주요 항목(total line item) 수치의 1% 이상이면 반드시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자산 1% 이상 감소가 기후위기 및 관련 정책으로 초래된다고 판단하면 재무제표에 반영하고 주석 사항으로 설명해야 한다. ISSB는 TCFD에 더해 SASB의 산업별 공개 표준안을 원용한 지표 공개 의무가 특징이다. 유럽 ESRS의 기후 정보공개 기준은 미 SEC와 ISSB를 대부분 포괄하는 동시에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기업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요구한다. 이를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기준이라고 한다.
의무화 도입 속도 느려도 제대로 해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빅3를 참고하면서 공시 규정, 즉 기후 관련 정보공개 기준을 가다듬고 있다. 언제부터 의무화를 시작할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ISSB 표준안을 반영한 기준을 가장 빨리 발표한 나라는 호주와 브라질이다. 지난 10월 호주는 S1과 S2로 나뉜 ISSB 표준안과 달리 ‘기후’ 하나로 통합한 기준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감축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호주의 의무화 로드맵은 2024년부터 점진적으로 확대해 2027년 완전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은 2024년 3월을 목표로 ISSB 표준안을 반영한 기준안을 준비 중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의무화 시점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ISSB 최종안 발표 이전에 지속가능성 정보공개를 법제화했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3월 유가증권 보고서 등에 ‘지속가능성에 관한 사고방식 및 대처’ 기재란을 신설해 ‘거버넌스’와 ‘리스크 관리’를 필수 기재로 하고, ‘전략’과 ‘지표 및 목표’에 대해서는 중요성에 따라 기재를 요구하는 법령을 확정했다. ISSB의 반영과 별도 트랙으로 일정 부분 자체적으로 의무화한 셈이다.
한국은 공시 가이드라인과 의무화 로드맵 발표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으며, 의무화 시점도 ISSB나 ESRS 시작 연도인 2025년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우려가 따르지만, 사실 핵심은 아니다.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처럼 스코프3 측정·검증 같은 난제에 막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늦더라도 제대로’일 것이다. 한국의 기후 정보공개 기준으로 탄소회계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생기지 않도록, 기업들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글로벌 신통상 압력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기후 금융이 경제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련 공시 규정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신지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전문위원
(*기사 전문과 더 많은 ESG 정보는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를 참고하세요.)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