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정책 인사이트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사진=AFP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사진=AFP 연합뉴스
지난 9월 20일 미국 하원 우주과학기술위원회(Committee on Science, Space and Technology)에서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SBTi)를 대상으로 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번 청문회 배경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사무 전반에 걸쳐 기후 관련 재무 리스크를 반영하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기후변화가 미국 경제, 예산, 금융감독 정책과 연기금의 운용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이 행정명령의 골자였다.

연방 업무에 기후 리스크 반영 행정명령



행정명령 조치 중에는 조달 참여 기업의 기후 리스크 관리 방안 수립도 포함되는데, 미 행정부는 2022년 11월 행정명령 이행을 위한 연방 조달 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은 조달 참여 기업의 계약 규모에 따라 차등 의무를 부여했다. 계약 규모 5000만 달러(약 650억원) 이상 기업은 글로벌 환경 정보 플랫폼인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를 통해 스코프 1·2·3 배출량과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CFD)에서 요구하는 기후변화 관련 거버넌스, 리스크 관리 및 전략 등을 보고하도록 했고, SBTi를 통해 과학 기반 목표를 승인받도록 했다. 공화당 주도로 개최된 이번 청문회는 조달 참여에 대한 요구조건 중 하나인 SBTi 승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청문회의 주요 쟁점 사안은 기업의 목표 평가 권한을 미 행정부가 직접 행사하지 않고,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민간 이니셔티브에 위임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였다.

SBTi는 2014년 기후변화와 관련한 대표적 비영리기관인 CDP,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세계자원연구소(WRI)와 세계자연기금(WWF)이 공동으로 설립한 이니셔티브다. 2023년 11월 기준 전 세계 6700여 개 기업이 참여 중이며, 한국에서도 5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기후와 관련해 참여 기업이 가장 많은 이니셔티브 중 하나다. SBTi 참여 기업은 2년 내 SBTi 기준에 부합하는 목표를 수립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SBTi는 기업이 제출한 목표를 검증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서약서를 제출한 기업 중 목표를 승인받은 기업은 3896개이며, 국내에서는 LG전자·SK텔레콤·신한금융그룹 등 23개 기업이 목표를 승인받았다.

‘과학 기반 감축목표’. 길고 낯선 용어다. 이니셔티브 이름을 이토록 어렵게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이 그동안 온실가스 목표를 수립하던 관행과 관련이 깊다. 과거 대다수 기업이 목표 수립에 적용한 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을 먼저 파악한 후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정한다. 즉 ‘할 수 있는 만큼’ 또는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는 방법이다. 다음은 국가나 경쟁사를 벤치마킹해 유사한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처럼 온실가스와 관련한 규제가 있는 지역의 기업은 규제에서 받은 할당량을 목표로 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SBTi는 이런 방식으로 목표를 수립해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우려에서 시작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 과학에서 제시하는 수준의 목표 수립이 필요하다. 이때 기후 과학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를 말한다. IPCC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지금부터 2050년까지 약 30년 동안 배출할 수 있는 누적 온실가스 총량, 즉 탄소예산은 약 400~500GTCO2e이다. SBTi는 기업이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남아 있는 탄소예산 범위 안에서 각 섹터 그리고 섹터 내 기업이 ‘해야 하는’ 만큼 목표를 수립하자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연간 4.2% 이상의 감축이 필요하다.

공급망 이어 정부 조달 시장 요구 증가

SBTi는 2021년 기업의 넷제로 목표에 대한 기준을 발표했다. 기준에 따르면 기업은 기업이 소유한 설비에서 직접 배출되는 스코프1 배출량과 전기 같은 전환 에너지 소비에서 발생하는 스코프2 배출량뿐 아니라 공급망이나 고객이 자사 제품 사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스코프3 배출량을 포함해 목표를 수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목표를 수립할 때는 2050년 이전에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장기 목표뿐 아니라 2030년 이전의 단기 목표도 함께 수립해야 한다.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배출되면 최소 10년 이상, 길게는 몇 만 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물며 온실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점의 배출량뿐 아니라 누적 배출량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IPCC에서도 1.5℃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50년 이전 넷제로와 함께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SBT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다. 실제로 이니셔티브 도입 이후 초기 5년간 참여 기업은 700여 개 수준이었고, 목표를 승인받은 기업도 많지 않았다. 최근 2~3년 동안 SBTi 서약 및 목표 승인 기업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선제적 노력도 있지만, 투자자나 고객사의 요구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에 기반한 목표 수립과 이행은 투자 기관이 기업 인게이지먼트를 할 때 TCFD에 부합한 기후 정보공시와 함께 빠지지 않는 요구사항이다. 금융기관의 넷제로 목표에는 금융배출량이 포함되는데, 금융배출량은 투자 또는 대출 기업의 배출량과 연동되기에 자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목표 수립과 이행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공급망을 통한 요구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와 기업에 가장 큰 압력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이제는 SBTi에 참여하지 않거나 넷제로 목표를 수립하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이들 기업은 공급망을 포함한 스코프3 목표 수립과 이행이 필요하다. 특히 SBTi는 단기 스코프3 목표 유형 중 하나로 공급망 기업이 SBTi에 참여하도록 하는 인게이지먼트 목표를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SBTi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으며, 전체 참여 기업 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30%가량(2054개)이다.

또 이번 청문회 주제인 정부 조달에도 주목해야 한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정부 조달 시장 규모는 13조 달러에 이르며, 2022년 기준 국내 조달 시장 규모는 약 196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 이번 행정명령 이전부터 연방조달청(GSA)과 해군이 CDP 공급망(CDP Supply Chain) 프로그램에 가입해 조달 참여 기업에 기후 정보를 요구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와 해군은 수년 전부터 CDP의 공급망 프로그램을 통해 공급사에 기후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청해왔다.

SBTi,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아
미국 조달 시장 참여 조건 된 ‘SBTi’
미 의회에서 개최한 이번 청문회는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미 행정부가 SBTi를 파트너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입찰이나 다른 기관과의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SBTi 외에는 기업의 감축목표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없는 현 상황을 방증한다. 다시 말해 SBTi가 기업 목표와 관련해 사실상 표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SBTi가 민간 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향후 미국뿐 아니라 지속가능 조달을 추진하는 다른 국가의 정부에도 확산될 가능성도 드러냈다.

우리 기업도 금융기관이나 고객사뿐 아니라 조달 시장의 요구와 대응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정부는 해외 조달 시장에 참여하는 우리 기업의 지속가능성 및 기후변화 이슈 대응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에서 조달업체를 선정할 때 CDP 공급망 프로그램이나 SBTi 등을 반영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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