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테크 시장에서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율 주행이었다. 테슬라를 필두로 구글의 웨이모, 현대차와 앱티브의 합작사인 모셔널, ADAS계의 최강자인 모빌아이까지 자동차와 연관된 부품 기업부터 완성차 업체까지, 그리고 IT 기업까지 모두 자율주행의 현실화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했다.
한국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품으로 간 포티투닷부터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라이드플럭스, 마스오토 등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또한 자율주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라이다와 레이더 같은 센서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 스타트업들도 다수 생겨났고 이들의 앞날은 장밋빛일 것이라 예상됐다. 자율주행 택시에서 배달 로봇으로국내에서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은 2022년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년간 천문학적인 투자를 한 해외 자율주행 업체가 도심 내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과거와 비교했을 때 진일보된 성과들이 있었지만 그동안 투자했던 돈을 회수할 만큼 상용화의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가장 앞섰다는 평을 받았던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이나 오토 파일럿이 시내주행이나 고속도로 주행에서 사물을 오인식하고 사고를 일으키면서 자율주행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함과 함께 과연 차량 내 자율주행 시스템만으로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투자 시장에 새로운 대안이 떠올랐다. 로봇이다. 그전에도 로봇에 대한 개발과 상용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특히 이족이나 사족 로봇의 경우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순 있었지만 그 기간이 오래가지 않았다. 비싼 개발비에 비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의 정도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로봇 기술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도 한파를 비껴가진 못했고 결국 현대차에 인수됐다.
하지만 바퀴가 있는 로봇, 거기에 자율주행 능력을 이식한 식당과 같은 곳의 서빙 로봇이나 배송, 배달 로봇의 경우는 또 다른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었다. 2019년 말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떠났던 노동자들은 코로나가 풀리면서 식당 서빙과 같은 단순 노동 업무에 복귀하지 않았다.
상승하는 인건비에 비해 오르지 않는 제품 가격들은 결국 인건비를 효율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만들었고 하나의 솔루션으로 서빙 로봇이 자연스럽게 퍼지게 됐다. 과거와 비교하면 진일보된 인지-판단-제어 기술은 실제 값싼 로봇을 투입해도 기존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2024년, 다시 자율주행의 해가 될까최근 서울시는 합정역에서 동대문역을 오가는 심야 자율주행 버스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밤 11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 10분까지 버스전용차로 9.8km를 왕복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자율주행 서비스는 단순히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이기 위한 체감형 서비스에 집중됐다. 인명사고 등의 우려로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사람들의 이동이 많지 않은 곳에서 서비스를 하다 보니 실제 사람들이 자율주행을 체감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시작된 심야 자율주행 버스는 교통량이 적은 시간으로 사고 등에 대한 이슈는 피했지만 대중교통이 끝나는 시점에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데 좀 더 우리의 실생활에 다가왔다고 보인다.
물론 아직은 세이프티 오퍼레이터 역할의 드라이버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시범서비스가 이슈 없이 끝났을 때 새벽 시간 무인 자율주행 심야버스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강남 지역 여러 곳에 자율주행 도로 표시가 생겨나고 있다. 2022년 6월 서울 도심 강남에서의 자율주행 로보라이드 시범 운행 착수 행사를 시작으로 1차 운행 구간에서 다양한 운행 테스트를 진행했고 2차 운행 구간으로 서비스 구간을 확대하면서 생겨난 표지들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2025년까지 자율주행 대중교통 상용화와 2027년 레벨4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열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리고 이번 심야 자율주행 버스를 비롯해 2차 강남 자율주행 지역 확대까지 계획에 따라 하나하나 확대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과 인프라자율주행을 단순화하면 인지-판단-제어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 가지 요소 모두 수많은 기술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단계인 제어를 보면 자동차를 기준으로 차량을 컨트롤하는 부분을 말한다. 특정 신호에 의해 운전자가 운전하는 것처럼 가속을 하고 제동을 하고 스티어링을 통해 방향을 바꾸는 등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일상적으로 차를 제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대부분 차량 제조사의 영역으로 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를 판매한다는 부분은 그만큼의 안전을 제조사가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차량의 제어 영역은 차량 제조사만이 만질 수 있는 외부에서 볼 땐 블랙박스의 영역이다. 판단의 영역은 알고리듬과 연산, 그리고 학습의 영역이다.
이 부분은 대부분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 고유의 알고리듬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알고리듬 기반을 얼마나 빠르게 병렬로 처리할 수 있는지가 바로 NPU와 같은 반도체의 영역이다. 현재까지 미국의 엔비디아가 독보적으로 앞서가고 있지만 국내 몇 개 스타트업들도 이 분야에 도전 중이다. 사실 얼마나 자신의 알고리듬에 맞춰 NPU를 설계하느냐 역시 기술력의 차별화이고 대표적으로 테슬라가 자체적으로 설계한 NPU를 탑재한 FSD 하드웨어를 적용하고 있다.
가장 첫 번째 부분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는 인지 부분은 센서를 의미한다. 하지만 센서만을 얘기하진 않는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부분이 측위다. 바로 내가 현재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선 GPS와 같은 센서가 쓰이고 있지만 실제 도로 위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찍기 위해 10cm 이내의 오차를 갖고 있는 고정밀 지도(HD map)가 활용된다.
이렇게 파악된 내 위치는 자율주행 차량이 가야 하는 부분들의 도로 표지나 횡단보도 등 각종 표지와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차량에 탑재된 또 다른 센서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차량의 ‘자율’ 주행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라이다라는 레이저 기반의 센서가 없이 카메라만으로 사물을 구분하는 테슬라로 대표되는 자율주행 기술이 있고 정확성과 안전성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라이다를 장착한 자율주행 기술로도 나뉠 수 있다.
최근 또 하나의 중요한 기술이 언급되고 있는데 바로 도로 위의 각종 인프라와 이를 연동하는 통신 표준이다. 지금까지 C-ITS라 불리는 차세대 지능형 교통체계의 표준은 와이파이를 기반으로 한 WAVE 방식과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망을 활용한 C-V2X 방식이 표준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여왔다.
자율주행 개발 업체들은 표준의 불확실성에 따라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지원하는 형태의 기술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망을 활용한 LTE-V2X가 표준으로 정리되면서 그동안 불필요하게 개발되었던 부분들이 해소되게 되었고 인프라를 통한 차량-사물 간 통신 역시 빠르게 개발될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의 뜨거움은 가라앉았지만 좀 더 현실화되고 있는 자율주행. 2024년에 다시 한번 뜨는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최형욱 CJ대한통운 상무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