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의 변화를 돌아봅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규정한 단어는 생존이었습니다. 분단, 전쟁, 가난 속에 살아남는 게 목표일 수밖에 없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들은 가난 속에도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함께”,“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 이후 20년 한국 사회를 지배한 단어는 성장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 120달러 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87년 세계 평균치를 넘어섰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성장의 결실을 나눠야 한다는 분배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경제성장의 과실뿐 아니라 정치 권력도 분배의 대상이었습니다. 1997년 최초의 정권교체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분배의 시대도 일단 막을 내렸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자산 격차는 심해지고, 유치원에서부터 경쟁을 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공동체는 훼손됐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졌고, 이념적 갈등은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20여 년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단어는 각자도생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올해는 새로운 단어가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전쟁은 외교로, 분쟁은 협상으로, 극단적 경쟁은 작은 협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마추어는 프로페셔널로, 강압적 수사는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부채 폭탄은 연착륙이란 단어로 대체되는 소식을 전하길 기대해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도 격랑이 멈추고, 고요와 평안이라는 단어가 찾아드는 2024년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