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연장근로시간 계산법’ 대법원 첫 판단
[법알못 판례 읽기] 주 52시간 근로제(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아래에서 합법적으로 연장근로를 했느냐를 따질 때는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초과분을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루 8시간 초과분을 각각 더해선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이번 판결로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노사 합의 때 허용되는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어떻게 계산할지 기준이 세워지게 됐다는 평가다. 기업들은 조금 더 유연한 인력 운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반대로 노동계는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판결이 나왔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 4일 하루 12시간 근무도 ‘합법’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023년 12월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항공기 객실청소업체 대표 이모 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이 씨는 3년간 총 130회에 걸쳐 주 52시간제를 어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근로자는 3일 근무 후 하루 휴식하는 식으로 일했다. 이에 따라 일주일에 보통 5일을 근무했으나 어떤 주는 3일이나 4일 또는 6일씩 근무하기도 했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 근로시간은 40시간, 1일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동시에 제53조 1항은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1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1·2심은 1일 8시간을 넘는 근로시간을 각각 더해 이 씨가 3년간 109회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했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하루 12시간(8시간+4시간)씩 주 4일간 총 48시간 근무한 경우 연장근로를 16시간(4시간×4일)으로 산정, 1주 12시간 한도를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넘긴 8시간만 연장근로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53조 1항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1일 연장근로 한도까지 별도로 규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밝혔다.
고용부도 행정해석 변경 예고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현행 근로기준법 조항을 정확히 해석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53조 1항은 당사자 합의를 전제로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로 정했다. 이번 판결로 하루 몇 시간을 일하든 한 주의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으면 합법이란 기준이 사실상 세워졌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대법원 판결내용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용부는 2023년 12월 26일 참고자료를 배포해 “이번 판결은 행정해석으로만 규율됐던 연장근로시간 한도 계산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며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로 인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고민한 것으로 이해하며 이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행정해석과 판결의 차이로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행정해석 변경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고용부는 2018년 5월 발표한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에서 “1주 총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발생하는 초과근로시간의 합계가 12시간을 넘으면 법 위반”이라고 적었다.
하루 12시간(8시간+4시간)씩 주 4일 근무하면 총근로시간은 48시간으로 주 52시간을 넘진 않지만 연장근로시간이 16시간(4시간×4일)이어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것이 고용부의 해석이다. 하지만 고용부가 대법원 판결을 반영해 해석을 변경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일선 현장에서의 근로시간 규제도 조만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 “하루 21.5시간 밤샘 근로도 가능” 맹비난
노동계에선 이번 판결을 두고 “하루 21.5시간의 밤샘 근로나 몰아서 일 시키기가 가능해진다”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특례업종이나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사업장처럼 근로기준법상 ‘11시간 연속 휴식’이 보장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론적으로 이틀 연속 법정휴게시간(4시간마다 30분씩)을 뺀 21.5시간씩 일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어서다.
민주노총은 대법원 판결 직후 논평을 내 “육체적 한계를 넘는 노동을 금지하고자 일 단위로 법정근로시간을 정한 법 취지를 무너뜨리는 결과”라며 “일주일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으면 하루 15시간씩 사흘을 몰아 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명문에만 집중한 채 현실을 무시한 판단을 함으로써 근로자 건강권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물꼬를 텄다”고 했다.
한국노총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그동안 현장에 자리 잡은 연장근로수당 산정방식과 배치되는 판결로 시대착오적”이라며 “국회는 연장근로에 대한 현장 혼란을 막고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돋보기]
기업 간 갈등도 유발…포스코·두산, 3100억원 분쟁 중
주 52시간 근로제는 그동안 기업 대표의 형사처벌이나 노사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여겨졌지만 기업 간 법정 분쟁을 촉발하는 사례도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발생한 추가 공사비 3100억원을 두고 다투고 있는 포스코그룹과 두산그룹이 대표적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3년 상반기 포스코그룹 계열사인 삼척블루파워를 상대로 약 3100억원의 추가 공사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중재를 대한상사중재원에 제기했다.
삼척블루파워는 포스코그룹이 삼척석탄화력발전소 운영을 위해 2011년 세운 계열사다. 2018년 8월 두산에너빌리티에 발전소 2기를 총 4조8790억원에 짓는 공사를 맡겼다. 발전소는 오는 4월 완공 예정이다.
발전소 착공 한 달 전인 2018년 7월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것이 이번 분쟁의 ‘불씨’가 됐다. 삼척블루파워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도급계약에 새 제도를 반영할지를 두고 논의하다가 일단 기존 법규를 기준으로 계약한 뒤 나중에 공사 진행 상황 등을 확인하고 정산할 금액을 다시 협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근로자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면서 공사 기간과 인건비가 늘어 예상보다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됐다”며 추가 비용 3100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삼척블루파워는 “주 52시간제만으로 그 정도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동안 국내 재판에선 인과관계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아 주 52시간제를 추가 비용 발생 원인으로 인정한 사례가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중재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이기면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한상사중재원이 판정을 내리면 분쟁 당사자들은 해당 내용을 자진해 이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이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간다. 판정에 불복해 국내 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긴 하지만 절차상 심각한 하자가 없는 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한 편이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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