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긴 CJ임원 인사, 구창근 CJ ENM '신상필벌' 칼날 피하나
CJ그룹 임원인사가 해를 넘긴 가운데 주력 계열사인 CJ ENM 구창근 대표의 거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CJ ENM 전임 대표였던 CJ그룹 강호성 경영지원 대표가 지난해 말 전격 사의를 표하며 자리를 내놓은 가운데 강 대표의 바통을 이어 받은 구 대표 역시 지난 1년간 이렇다 할 실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5일 회사에 따르면 2022년 10월 부임한 구 대표의 임기는 2025년 3월까지로 아직 1년 이상 남아있다. 하지만 구 대표가 부임 이후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음에도 회사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23년 3분기 영업이익이 반짝 흑자전환 하긴 했지만 연간 실적으로는 누적적자가 유력한 상황이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직원들의 분위기 역시 뒤숭숭하다는 내부 전언이다. 구창근 대표 체제에서 조직 문화가 나락으로 치달았음을 개탄하는 비판이 직원 익명 게시판 등 여러 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영화 부문 실패도 뼈아프다. 야심작으로 내세운 텐트폴 영화 더문이 50만 남짓 관객을 동원해 '폭망'이라는 혹평을 들었고 회사가 배급한 2023년 영화 중 5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이 단 한개도 없었다.
반면, 경쟁사인 중앙그룹 산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배급 또는 투자를 한 범죄도시3, 서울의봄은 연속으로 1000만 영화에 등극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맞았다.
'신상필벌'을 원칙으로 내세운 CJ그룹 인사철학에 비춰볼 때 구 대표의 임기가 남았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 대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 엔터테인먼트 업계 수장으로서는 초유의 중복 증인 소환 위기를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된 것.
환노위에서는 구 대표 주도로 이뤄진 직원 구조조정에 대해 추궁당할 예정이었고,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투표조작 범죄와 향응 접대를 받아 실형을 받은 비리 PD의 재입사가 온당했는지 캐물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 대표는 대통령 중동 순방 동행을 이유로 불출석했고 국감 기간 카타르에 머물렀다.
CJ ENM이 구 대표 방문 이후 카타르에서 이룬 성과는 3개월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발표된 바 없다. 이 때문에 국감회피용 출장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구 대표는 CJ올리브영 갑질 의혹으로도 식은 땀을 흘렸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협력업체에 대한 타 거래처 입점 제한을 통해 이익을 올린 혐의로 CJ올리브영 법인과 구창근, 이선정 등 전 현직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5000억 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도 시사한 바 있으나 과징금 16억원의 경징계에 그쳤다. 검찰 고발도 이뤄지지 않았다.
CJ올리브영은 CJ그룹 경영승계의 핵심 축이어서 당초 알려진 5000억원 과징금 규모가 현실화 했을 경우 협력업체 입점 제한 의혹 당시 올리브영 수장을 맡았던 구창근 대표의 책임이 막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CJ ENM 전임 대표였던 강호성 CJ주식회사 경영지원 대표가 용퇴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피프스시즌 인수 추진 부담 등 사실상 CJ ENM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구 대표가 유임될 경우 그야말로 '럭키가이'라는 해석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대표직을 이어 나가게 돼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우선 CJ ENM 적자에 한 몫을 한 OTT 티빙을 돈을 버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웨이브와의 합병을 추진 중으로 알려졌지만 걸림돌이 많다. 웨이브 주주들과의 이해관계를 정리해야 하고 가입자 수가 '1+1=2' 방식으로 늘어날지도 미지수다. 중복 가입자수를 고려하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 있어 업계 1위 넷플릭스와의 규모의 경제 싸움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 먹는 하마로 알려진 CJ라이브시티 사업 연착륙도 고민거리다.
CJ그룹의 대표 계열사 중 하나인 CJ ENM은 영화를 비롯해 한국 대중문화의 개척자 역할을 해 왔다. 구창근 대표는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CJ의 영화투자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도 외계인 2부, 베테랑 속편, 하얼빈 등 쟁쟁한 작품 개봉을 예고했다. 지난해 적자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K콘텐츠 산업에서 CJ ENM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아직까지 절대적이다. 이에 CJ 계열사 구원투수로 활약해 온 구 대표가 CJ ENM에서 올 한해 어떤 '구창근 매직'을 발휘할지, 아니면 신상필벌 인사 원칙으로 인해 조기에 짐을 쌀지 엔터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