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극복 중인 일본, 경제활력 키우는 새 과제 남아
과감한 투자·기업가 정신 강화해 경제 역동성 키워야
물론 디플레이션을 극복한다고 해서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디플레이션 극복 이후 일본 경제의 과제는 쇠퇴 현상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경제는 2024년 실질경제성장률이 1% 전후로 예상돼 나름대로 선방할 것으로 보이지만, 오랜 저성장 기조에 머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4년에는 그동안 극심했던 엔저 현상이 후퇴할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와 같은 강한 엔고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저성장과 엔저 장기화의 효과가 겹쳐 일본의 국제적 위상은 하락하고 경제 규모는 세계 3위에서 4위로 밀려나는 방향성을 보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선진 7개국(G7) 중에서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 극복 이후 그간 경제쇠퇴의 원인을 극복해 가면서 경제적 활력을 제고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 앞에 놓여 있다. 경제쇠퇴 현상의 원인을 보면, 우선 장기불황기에 심해진 투자 부진 문제가 있으며 이 문제 해결이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1990년대 이후 장기 정체되다가 최근에야 회복세로 돌아섰으며, 이러한 흐름의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최근 반도체, 2차전지, 재생에너지 및 수소, 그린 스틸, 그린 케미컬 등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에 주력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 주체의 창업을 유도하기 위한 스타트업 지원 및 산학연계 비즈니스 생태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또 불확실한 미래의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성공 논리, 가설을 세워서 일반적 예상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 같은 기업가 정신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분야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유도하고 인프라를 확충하고 세제지원을 늘려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과거 고도성장기와 같은 도로, 항만 등의 인프라 건설뿐만 아니라 연구 인프라의 확충, 무형의 기술적 자산 확충, AI 등 IT나 콘텐츠, 문화같이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바탕을 둔 산업의 부가가치 제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투자 확대를 통해 생산성 향상에 주력할 필요도 있다. 그동안 일본 기업은 노후화된 설비를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해 왔으나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노후화된 설비를 갱신하면서 새로운 기술 체계에 기초한 기술경쟁력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초저금리와 재정팽창 등 디플레이션 극복에 주력하는 정책을 펴면서 생산성이 낮은 기업도 살아남았다. 그 결과 경기변동과 함께 비효율적인 기업이 도태되고 근로자는 새로운 스킬과 능력을 키워서 보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이동하는 신진대사, 또는 시장의 정화기능이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생산성 지향적인 전략적 투자와 산업 및 기업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기능 제고를 통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로 일본의 마이너스 및 제로 금리정책은 재정규율도 약화시키는 한편, 경제쇠퇴 현상 극복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 2022년 말 이후 단계적으로 완만하게 실시되고 있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정상화 노력은 2024년에도 이어져 자원배분의 왜곡 문제 해결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같은 장기투자 부진과 경제쇠퇴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경제적 활력을 유지 및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업과 기업의 신진대사와 신규 유망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창업을 유도하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기업의 혁신 역동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처럼 강화한 기업의 역동성은 앞으로 우리가 경제쇠퇴 현상을 피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1인당 소득의 확대 추세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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