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진입한 태영, 사실상 SBS만 남아
롯데 이어 신세계도 건설 지원에 진땀
태영그룹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에 몰린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를 위해 채권단에 제안한 자구안은 총 4가지였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지원과 에코비트 매각 추진 및 대금 지원, 블루원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제공 등이다. 이에 대해 최금락 태영그룹 부회장은 “태영그룹 자산 가운데 기존 자구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산이 SBS 빼고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PF 위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총 21곳으로 전년보다 7곳이 늘었다. 그중 12월에만 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12월 28일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과 함께 다음 위기설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에 대한 루머도 나돌고 있다. 내로라할 대기업 집단에 속한 곳들도 업계 관계자들 입에 오르내린다.
17일 나이스신용평가는 ‘이슈 건설사 PF우발채무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들 건설사 5곳을 명시했다. 롯데건설과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코오롱글로벌, HL디앤아이한라 등이다.
이 때문에 일부 업체는 위기설이 돌기 시작할 때부터 “아무리 어려워도 그룹이 있는데 망하겠나”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그룹이 나서 건설 계열사의 자금을 수혈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각종 규제를 풀며 위기를 진화하고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나섰지만 한번 상징적인 업체나 사업장에서 위기가 현실화하면 전반적인 리파이낸싱이 어려워지는 건설업 특성상 지원 규모는 조 단위에 이른다. 재계 10위권에 드는 굴지의 대기업이라도 지금처럼 금리가 높고 자금조달이 어려운 시점에 그룹사 자금지원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우량 계열사, 자금 수혈 참전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을 태영건설에 투입한 태영그룹의 다음 매각 대상은 폐기물 처리 업체 에코비트다. 태영이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공동투자를 통해 지분 50%를 보유한 에코비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립장을 보유해 매년 10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이런 에코비트의 기업가치는 2조원에서 3조원 사이로 알려졌다. 태영그룹은 자기 지분의 담보가액만 1조5000억원이 된다는 점에서 시장가치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 하반기 국내에 처음 강원도발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터졌을 당시 롯데그룹은 롯데건설에 대한 대대적인 자금 수혈에 나섰다. 롯데건설은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으로부터 5000억원을, 롯데정밀화학과 롯데홈쇼핑에서 각각 3000원, 1000억원 등을 긴급 차입한 바 있다. 2023년 1월에는 롯데물산, 롯데호텔, 롯데정밀화학 등 계열사가 후순위로 6000억원을 부담해 메리츠금융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 유동화증권 장기매입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롯데건설은 올해 1분기 만기가 다가오는 미착공 PF 3조2000억원 가운데 2조4000억원을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펀드 조성을 통해 조달해 본PF 전환 시점까지 장기구조로 연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펀드는 금융기관들이 참여하는 만큼 금리나 계열사 신용보강 등 측면에서 지난해 조성한 펀드 대비 조건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아파트 사업장의 미분양 적체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한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건설도 모기업으로부터 본격적인 지원을 받을 전망이다. 이미 신세계건설은 이마트가 100% 지분을 보유한 신세계영랑호리조트와 합병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신세계건설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4일 기준 신세계영랑호리조트 자산총액은 733억원이며 부채는 74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세계건설이 보증한 고위험 PF 규모가 약 1조2000억원으로 추정되는 만큼, 결국 그룹 차원의 유동성 지원방안이 나왔다.
‘애증의 건설’, 버리기 어려워
유통이 주력인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은 전국 각지에 ‘알짜’ 부동산 자산이 많은 만큼 ‘부지 매각’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서초동 롯데칠성음료 부지(4만2312㎡)는 ‘강남 최고의 금싸라기 땅’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같은 핵심 자산 매각이 장기적으로 불리한 데다 유동성이 마른 시점에서 제값에 팔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마트는 2022년 3월 진행한 입찰을 통해 부동산 개발회사인 ‘알비디케이콘스(RBDK)’에 이마트 부천중동점 부지를 38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시행사가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부지 매각이 무산됐다.
경기불황에 그룹사 사정도 좋지 못하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에 대여했던 5000억원을 회수해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지만 실적 악화에 따라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불황기에 중국 업체들의 시설 증설 영향으로 소재 공급이 늘었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에 이은 또 다른 위기에도 대기업들이 건설업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등 주력 업종의 생산시설 조성 단계에서 기밀 유출을 우려하는 곳 역시 계열사에 발주하는 것을 선호해 그룹 내 건설사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현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의 경우 이라크 건설 공사 미수금을 막지 못해 2001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간 ‘적통 경쟁’ 속에 2011년 현대차 품에 안겼다. 1973년 태영개발로 출발한 태영건설은 그룹의 모태였다.
무엇보다 지금의 위기가 잠깐이라는 인식 또한 존재한다. 우량 사업장을 보유한 대형 건설사는 사업장별 분양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자연스레 위기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택경기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분양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이달 중 서울 서초구 헌인마을 착공 및 분양을 준비 중이며 광주광역시 내에서 입지가 좋은 광주 중앙공원1지구에 2000가구 이상 분양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 특성상 경기를 많이 타고 수주 당시에는 사업성이 불투명한 것은 어쩔 수 없다”며 “몇 년 동안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비를 잘해 살아남은 회사는 주택경기가 돌아왔을 때 다시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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