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오너가가 입고 들었다 하면 완판
‘패션 인플루언서’ 뛰어넘는 영향력 과시
최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 ‘빠투’의 실적에 대해 묻자 LF 관계자로부터 돌아온 답변이다. 빠투는 프랑스에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신명품’이다. LF는 지난해 3월부터 이 브랜드를 국내에 수입·판매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선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국내 소비자들에겐 생소한 브랜드이다 보니 빠투는 한국에서 출시 초반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해 11월부터 일부 제품이 ‘품절 대란’을 일으킬 만큼 잘나가는 브랜드가 됐다. 정확하게는 ‘재계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한 행사장에서 빠투의 가방을 들고 나타난 장면이 포착된 이후부터다.
LF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이 빠투 가방을 들었다는 사실을 내부에서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그의 ‘착샷’이 SNS에서 널리 확산되면서 빠투의 판매량 또한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사장이 직접 착용한 모델의 경우 200만원대라는 다소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이부진 백’으로 입소문이 나며 모두 ‘완판’된 상태다. 예약 주문까지 밀리다 보니 현재는 해당 제품을 구매하는 것 조차 어렵다.
재벌들의 패션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들이 특정 브랜드의 옷이나 신발 등을 착용하면 순식간에 SNS상에서 ‘재벌이 입은 옷’ 등으로 게시물이 퍼지며 화제가 된다.
재벌들이 패션업계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과시하는 ‘슈퍼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톱스타보다 재벌들이 옷이나 가방을 착용했을 때 더 큰 브랜드 마케팅 효과가 나타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다양한 재벌들이 ‘패션 인플루언서’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특히 그 중심에 선 이들은 단연 ‘삼성가’다.
삼성가 중에서도 가장 대중의 이목을 많이 끄는 인물은 이부진 사장이다. 이부진 사장의 경우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패션을 자주 선보이는 점이 그 이유로 꼽힌다.
이부진이 했다 하면 ‘완판’이번에 그가 열풍을 일으킨 빠투 가방의 인기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로열패밀리 일원인 이부진 사장이 메는 가방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서 품절 대란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물론 해당 제품의 가격(약 200만원)이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재벌들이 주로 착용하는 수천만원대 가방에 비하면 비교적 싼값에 이른바 ‘재벌 룩’을 따라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패션을 앞세워 이부진 사장에 대한 호감도도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이부진 사장은 얼마 전 10만원대 원피스를 착용하고 대중 앞에 서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패션을 통해 이부진 사장이 대중에게 ‘검소한 재벌’이라는 좋은 이미지까지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친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답게 ‘재계 완판남’으로 꼽힌다. 이재용 회장이 입었다 하면 해당 제품이 곧바로 품절을 일으킬 만큼 매번 큰 화제를 모은다. 그가 착용함으로써 국내에서 대중화시킨 브랜드들까지 존재할 정도로 압도적인 ‘셀링 파워’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언더아머’와 ‘아크테릭스’를 꼽을 수 있다. 언더아머의 경우 지난 2014년 이재용 회장이 해외 출장길에서 이 브랜드의 티셔츠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재용 운동복’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으며 해외직구 등을 통해 언더아머를 구매하기 시작한 소비자들이 급증했다.
‘이재용 효과’에 힘입어 언더아머는 2017년 언더아머코리아를 설립하고 국내 시장에 직진출하기도 했다.
아크테릭스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회장이 친구와 부산 여행길에 아크테릭스의 패딩을 착용한 모습이 사진에 찍히며 단숨에 ‘대세 브랜드’로 떠올랐다.
이전까지 아크테릭스는 국내에서 일부 마니아층만 알고 있던 브랜드였다. 이 회장의 착샷 한 장을 시작으로 아크테릭스는 현재까지도 젊은층부터 중장년층에게까지 높은 인기를 끄는 아웃도어 브랜드로 성장했다.
패션 인플루언서 활동하는 재벌도 등장이재용 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둘째 여동생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공식석상에 설 때마다 화려한 의상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벌가 룩’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창동 사모님’이나 ‘청담동 며느리’들의 패션 롤모델이 된 지 오래다.
조정윤 세종대 패션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대중들은 늘 고위층이나 소위 말하는 ‘부자’들의 패션을 주목하고 이를 따라 하려는 트렌드를 보여왔는데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들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 추세”라며 “이 중에서도 삼성은 ‘재벌들의 재벌’로 불리는 만큼 일반 소비자들의 주목도가 더욱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외에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임세령 대상 부회장 등 ‘재벌 2세’들이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뽐내는 재계 대표 멋쟁이들로 꼽힌다.
최근에는 패션업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제벌 3세와 4세들도 있다. 자신의 일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 강했던 재벌 2세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화려한 의상과 삶 등을 SNS에 공유하고 소통하며 1020들의 ‘패션 워너비’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명품 브랜드들도 이들에게 협찬을 할 만큼 패션계 ‘큰손’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주인공이 DL그룹(옛 대림그룹) 4세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이주영 씨다.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 이해창 켐텍 대표의 외동딸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만 12만 명이 넘는다. 보테가베네타, 디올과 같은 유명 명품 브랜드들이 직접 그에게 가방 등의 제품을 협찬하거나 주요 행사에 초청할 만큼 패션업계의 떠오르는 ‘재벌 스타’다. 오너 일가를 사칭한 사기범들의 연이은 등장으로 곤욕을 치렀던 파라다이스그룹의 ‘진짜 손녀’ 전우경 씨도 1020으로부터 큰 관심을 끄는 재벌집 딸이다. 전필립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의 장녀로, 파라다이스 창업주인 전락원 선대 회장이 그의 친할아버지다. 전우경 씨는 파라다이스그룹의 3세라는 점 외에도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손녀이자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장녀인 애경그룹 3세 채문선 씨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비건화장품 ‘탈리다쿰’을 론칭하며 사업가로도 활동 중인 그는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칠 때마다 화려한 명품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재용 회장의 딸 이원주 씨도 활발한 SNS 활동을 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모습도 종종 포착됐지만 이보다는 고모인 이부진 사장처럼 수수한 차림의 모습으로 더 화제를 모았다.
그가 명품이 아닌 저렴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자주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재벌가 딸답지 않게 소탈하다’는 반응들이 줄을 이었다. 10만원대인 프랑스 운동화 브랜드 ‘베자’는 이원주 씨가 신고 SNS에 올려 한국에서도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처럼 재벌들의 패션이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서 이들 역시 공식석상에 나설 때 착용하는 의상 디자인이나 브랜드에 더욱 각별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미지 컨설턴트인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PSPA 대표는 “SNS가 발달하면서 과거와 달리 재계 총수들과 그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대가 됐다”며 “이들이 입는 의류나 브랜드는 단순한 옷의 기능을 넘어 기업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