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중국 축구가 보여준 안되는 조직의 특징 [EDITOR's LETTER]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가 뭔지 아십니까.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아닙니다. 설화 맥주입니다. 처음 들어본다고요? 네 중국에서만 팔리니까요. 중국에서 1등 하면 세계 1등 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모든 분야에서 약진했습니다. 세계적 스포츠 강국으로도 부상했지요.

하지만 불가사의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축구입니다. 아시안컵에서도 예선 탈락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분노했다고 합니다.

14억 명 중 가장 잘하는 11명 뽑으면 되는데, 왜 중국 축구는 저 모양일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만 명당 한 명이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급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메시 7000명이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이 축구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였습니다. 축구광 시진핑 주석이 태국에 대패하는 것을 보고 육성 정책을 지시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독재자의 지시는 절대적입니다. 축구클럽 2만 개를 만들고, 초·중학교에서 축구를 필수과목으로 하고, 2030년 아시아를 제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시작부터 이상하지요? 개인의 취미를 국가 프로젝트로 만든 것 자체가. 이어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이 간부가 되어 자리를 꿰찼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구단을 설립하고 스타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수백억원 연봉을 주고 영국 등에서 데려왔습니다. 한때 중국 축구단 연봉은 일본의 6배, 한국의 12배가 됐습니다. 수혜자는 또 있었지요. 중국 선수 몸값도 뛰었습니다. 실력 말고 몸값만. 2019년 평균연봉 10억원에 달하는 구단도 생겼습니다. 선수들은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중국 내에 안주했지요.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몸을 사렸습니다. 다치면 연봉에 악영향을 미치니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선수선발 과정에 특유의 ‘관시(關係)’가 작용했다고 합니다. 유소년팀은 비싼 학비 때문에 축구 잘하는 애들이 아니라 부잣집 애들이 가는 사교의 장이 됐습니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도 관시가 작용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14억 명 중 11명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중국을 말하다 문득 또 다른 미스터리가 떠올랐습니다. 인류의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피렌체 르네상스. 인구 6만 명의 소도시, 그것도 여성들의 예술 활동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만 명 중에 100년에 1명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예술가 20명이 나온 것 말입니다.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회화를 그린 마사초, 원근법의 발명가이자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을 건축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이 그들입니다.

인간의 재발견을 통해 인류 지성사에서 두드러지는 예술의 탑을 쌓아 올린 피렌체 르네상스는 천재들이 발현된 시간이었습니다. 이 예술의 시간에 대한 설명은 다양합니다. 공정한 경쟁, 메디치라는 후원자, 예술 토대가 된 자본의 형성, 패자부활 등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중국 축구와 피렌체 르네상스 시기를 비교해 기분 나쁜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확률 얘기였으니 이해해 주시길.

다시 중국 축구 얘기입니다. 중국 축구는 조직 운영자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현장감 떨어지는 간부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정한 출신들이 울타리에 안주해 도전정신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시가 인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이 문화 때문에 지금 우리 조직의 수많은 잠재력 있는 ‘메시들’이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탁구만 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