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사외이사들이 회장을 뽑기 때문이다. 주인 없는 4대 금융그룹은 사외이사로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회장을 선출한다. 회추위는 매번 ‘만장일치로 회장후보를 추천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투표를 통해 박빙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당국이 개입을 자제하고 초임 회장을 뽑을 땐 특히 그렇다. 2023년 초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2023년 말 KB금융그룹 회장을 선출할 때도 그랬다. 박빙이었다.
어렵게 회장이 된 사람들은 사외이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 사외이사를 물갈이한다. 최대 6년의 임기를 보장한다. 이렇게 되면 연임이나 3연임은 훨씬 쉽다. 사외이사가 회장을 선출하고 회장이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이른바 ‘셀프연임’이다.
비단 4대금융그룹만이 아니다. 주인 없는 대기업도 비슷하다. 2023년 최고경영자(CEO) 선출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KT와 최근 사외이사 특혜 시비 논란이 불거진 포스코 및 KT&G가 대표적이다(물론 CEO 선출 시기에 문제가 불거져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 회사 역시 사외이사가 CEO를 뽑는다. CEO로선 사외이사에 극진할 수밖에 없다.
최근 6억8000만원이 들어간 ‘캐나다 호화 이사회’로 논란이 된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사외이사 7명에게 평균 1억500만원을 지급했다. 이사회(12회) 한 번에 875만원을 준 셈이다. KT&G도 2012년부터 코로나 기간인 2020∼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사외이사들에게 해외출장을 다녀오도록 했다. 일부는 배우자도 동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KT&G 사외이사들은 싱가포르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로부터 1조원대 소송을 제기당하기도 했다.
사외이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된 이후 ‘거수기’, ‘방패막이’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사외이사의 역할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내이사를 견제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에 일정한 기여를 한 건 사실이다. 정부도 사외이사 임기 및 겸직 제한 등 꾸준히 제도를 보완해 왔다.
결국은 대우의 문제다. 과도한 대우를 없애면 된다. 포스코홀딩스와 KT 등 대기업 사외이사의 연봉은 1억원 안팎이다. 4대 금융지주는 7000만원가량 지급한다. 회의가 열릴 때마다 거마비를 따로 주기도 한다. 해외출장은 물론 골프회원권과 법인카드, 의전용 차량 등을 제공하는 회사도 상당수다. 연간 3000만원 안팎인 한전, 가스공사, 강원랜드 등 공기업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다 보니 사외이사 강의를 받으면서까지 대기업 사외이사를 하려는 ‘실력자들’이 줄을 서 있다.
이걸 줄이자는 거다. 사외이사직을 수행하는 데 들어간 노력만큼만 보상하면 된다. 노력이 인정되면 이사회당 수천만원을 주거나 연간 1억원을 넘게 줘도 무방하다. 그렇지 않고 1년에 고작 4~5차례, 그것도 겨우 1시간 남짓 이사회에 참석하는데 지금처럼 대우를 하는 건 누가 봐도 특혜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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