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최근 2년 간 배터리 소재·바이오 사업에 대규모 자금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한국경제신문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한국경제신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신유열 전무가 한국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작년 말 롯데의 정기인사에서 롯데지주의 미래성장실장에 선임된건데요. 이 자리는 롯데의 미래를 책임지는 역할을 합니다. 롯데의 주력사업은 유통, 식품, 화학, 호텔이죠. 이들 사업을 더 강화하고, 한편으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게 미션이에요. 특히 M&A 후보 기업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신유열 전무는 부친인 신동빈 회장과 판박이 경로를 밟고 있어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노무라증권에서 일했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MBA(경영전문대학원)를 마쳤습니다. 일본 롯데로 입사한 뒤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 롯데의 신사업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오른 것도 완전히 똑같아요.

신동빈 회장은 40대 초반이었던 1997년 부회장에 오른 뒤 그룹을 확 키웠어요. 1990년대에 재계 10위 정도 했던 롯데는 2000년대 들어선 5위로 껑충 뛰었습니다. 신동빈 회장이 형 신동주 회장과 2015년에 경영권 분쟁을 벌였는데, 이때 이긴 것도 그룹을 크게 키웠다는 성과를 주주들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롯데가 요즘 어렵다고 해요. 유통은 쿠팡 같은 온라인쇼핑에 밀려서 고전하고 있고, 화학 사업도 좋지 않고요. 면세점과 호텔도 장사가 예전만 못합니다. 신동빈 회장에서 신유열 전무로 경영 승계가 이뤄지는 이 시점에 롯데는 과연 어떤 전략을 세웠을까요.
◆배터리·바이오에 투자 집중
2023년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CPhI 2023의 롯데바이오로직스 컨퍼런스 부스 / 한국경제신문
2023년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CPhI 2023의 롯데바이오로직스 컨퍼런스 부스 / 한국경제신문
우선 롯데의 주력인 유통에선 온라인쇼핑에 별다른 대응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급격하게 덩치를 불리는 쿠팡이나 CJ대한통운 같은 회사들과 연대를 이뤄가는 네이버 쇼핑, 이베이코리아를 3조4000억원이나 주고 산 신세계와는 다르죠. 오히려 마트나 슈퍼 개수를 조금씩 줄여 나가면서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롯데가 최근 재계 서열 5위에서 6위로 떨어졌는데요, 유통 사업의 부진이 아마도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화학 사업도 안 좋아요. 잘 벌 땐 연간 1조~2조원씩 이익을 냈던 롯데케미칼이 2022년 적자로 돌아섰고, 작년에도 대규모 적자를 냈어요. 또 다른 캐시카우인 면세점도 코로나가 끝났는데 좀처럼 회복이 안 되고 있죠.

롯데가 노리는 반전 카드는 기존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입니다. 최근에 투자했거나 사들인 회사들을 보면 뭘 하고 싶은지 답이 딱 나와요. 롯데가 단일 기업 인수론 가장 많은 2조7000억원을 지난해에 쏟아부은 회사가 있습니다. 일진머티리얼즈, 지금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됐죠.

개인적으로 세 가지가 놀라웠는데요. 우선, 이렇게 큰돈을 쓴 M&A인데 우리가 잘 모르는 회사란 것이고요. 그래서 그 회사를 들여다봤더니, 롯데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전기차 배터리의 소재를 만든다는 점이였고요. 마지막으로 이 회사 연간 매출이 1조원도 안 하고 이익률도 10% 수준에 불과한데 2조원 넘게 줬다는 것이죠.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동박이란 것인데요. 동박은 배터리 음극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전기차가 많이 팔리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5대 그룹인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가 전부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을 할 정도인데, 롯데가 이 시장에 늦었지만 발을 들여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배터리 소재 하면 에코프로가 떠오르는데, 한마디로 에코프로가 되고 싶은 것이죠.

롯데가 돈 쓴 것을 또 보면 롯데헬스케어와 롯데바이오로직스 법인을 세운 게 있어요. 그리고 글로벌 제약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의 미국 공장을 1억6000만 달러를 주고 인수했고요. 롯데가 하려는 건 글로벌 대형 제약사를 대신해서 약을 만들어주는, 이걸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이라고 하는데요. CDMO 사업이 탐나는 겁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같은 회사들이 이미 잘하고 있죠. 이게 반도체와 비슷한데요. 애플, 엔비디아, 퀄컴 같은 회사들이 반도체를 개발하면 이걸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 같은 회사들이 만들어주죠. 한마디로 바이오 업계의 TSMC가 되겠다는 얘깁니다. 롯데는 앞으로 바이오 사업에 수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이미 밝혔어요.
롯데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바이오 메가플랜트 조감도 / 한국경제신문
롯데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바이오 메가플랜트 조감도 / 한국경제신문
신동빈 회장은 유통, 호텔, 면세점 같은 서비스 사업으론 그룹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아요. 결국 삼성, LG, 현대차처럼 제조업, 장치산업으로 가야 그룹이 한 단계 성장한다고 본 것이죠. 서비스업은 특히 해외로 나가는 게 정말 어렵잖아요. 롯데도 백화점, 마트, 호텔을 해외에 엄청 늘리고 싶어 했는데 계획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특히 중국 시장에선 수조원을 투자했는데, 투자금 대부분을 날리고 철수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서 성공시켜야 경영 승계 작업을 원만하게 할 수도 있어요. 아무리 대기업 총수라고 해도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결국 후계자가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기존에 하던 사업을 잘했다고 인정받긴 쉽지 않아요. 백화점, 호텔, 제과 같은 사업은 아무리 잘해도 생색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배터리나 바이오 같은 신규 사업에선 성과가 조금만 나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경영 능력을 의심받았던 SK의 최태원 회장이 단번에 ‘능력자’가 된 것도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 때문이었죠. 신유열 전무가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을 겸하고 있는 것을 보면 롯데는 바이오 사업에 진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사업이 잘되면 신유열 전무는 그룹 내에서 입지를 금세 다질 겁니다.
쿠팡과 경쟁하지 않아…에코프로·셀트리온이 되고 싶은 롯데[안재광의 대기만성's]
◆기업가치 제고 노력도

사실 대규모 설비를 돌리는 장치산업은 신동빈 회장의 부친이자 롯데의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도 하고 싶어 했어요.

일본에서 롯데를 일구고 한국으로 돌아온 1960년대에 철강 사업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박정희 정부는 승인하지 않았고요. 포항제철, 지금의 포스코를 세워서 공기업 형태로 직접 했죠. 그 포스코가 요즘 배터리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롯데를 제치고 재계 5위가 된 것인데, 롯데가 여기에 맞서 배터리 사업을 한다고 하네요.

장치산업은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분야기도 해요. 한국의 전략 산업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등인데요. 전부 다 장치산업이죠. 반면 유통, 서비스 같은 산업은 정부가 육성하는 분야가 아니에요. 오히려 인허가 사업이라 정부가 ‘갑질’을 하려 들어요. 백화점, 마트, 슈퍼, 호텔 지으려면 지자체장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시장 상인분들과 사전 협의도 해야 하고요.

신동빈 회장이 과거에 구속까지 됐던 것도 인허가 사업인 면세점 때문이었어요. 박근혜 정부 때 정부가 주도하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줬는데요, 이 돈 줬다고 감옥까지 다녀왔습니다. 면세점 사업권을 청탁한 대가라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죠. 순전히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만 보자면요. 정부에서 돈 달라 해서 줬더니 감옥에 보낸 겁니다. 다시는 특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주가에도 장치산업이 유리하죠. 롯데의 유통 계열사들을 한데 모아놓은 롯데쇼핑은 시가총액이 2조원 수준인데요. 주당순자산비율(PBR)이 0.2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 백화점, 마트, 슈퍼 등등 다 팔아도 10조원은 나온다는 얘깁니다. 이건 장부가로 처분했을 때 얘기고, 시장 가격에 팔면 최소 그 두세 배는 할 텐데요. 그런데 주가가 이 모양이란 건 정말 주식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는 뜻이에요. 면세점과 호텔 사업을 하는 호텔롯데 상장을 롯데가 계속 시도했지만 잘 안 된 것도 결국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게 없어서였어요.

반면에 장치산업은 투자자들이 엄청 좋아해요. 롯데가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샀다고 했잖아요. 매출 1조원도 안 되는 회사인데, 매출 14조원 하는 롯데쇼핑보다 더 높게 기업가치를 쳐준 겁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만 봐도 답이 나와요. 반도체 사업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배터리 하는 LG에너지솔루션, 바이오 사업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롯데가 반도체는 넘보기 힘들어도 배터리와 바이오는 한번 덤벼 볼 만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유통왕국 롯데가 장치산업, 제조왕국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 집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