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후 반등한 집값, 이명박 정부 시절 떠올려
전문가들 “몇 년간 구조조정 거친 뒤 상승할 것”
2022년 5월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정부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예고한 대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면서 급격한 부동산 시장 하락에 직면했다. 시장은 7년 가까이 이어진 상승세가 끝나고 하락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주택 미분양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에 대처해야 했다.
시장에선 우선 다가오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 포레온)’ 4786가구 분양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 그간 분양가 규제, 공사비 갈등으로 분양이 미뤄졌던 서울 강동구 소재 둔촌주공 재건축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으로 알려진 데다 올림픽공원에 인접하고 9호선 역세권인 입지로 인해 상징성이 큰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분양 일정을 시작한 둔촌주공은 문재인 정부 시절 시행된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대상으로 2년 실거주 및 8년 전매제한 대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새해 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분양가상한제 대상 단지에 대해 3년간 실거주 의무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주택 소유자도 무순위 청약이 가능해졌고 전매제한 기간도 단축됐다. 결국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3월 초소형인 전용면적 29~49㎡ 타입 899가구까지 무순위 청약을 통해 ‘완판(계약마감)’에 성공했다.
정부는 이어서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했다. 공약대로 부동산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종부세 산정에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도 60%로 낮아지면서 보유세 부담이 크게 줄었다. 소득제한이나 DSR 적용 없이 9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신청이 가능한 특례보금자리론도 판매됐다. 50년 장기 대출 상품도 나왔다. 2023년 상반기부터 8월까지 서울 부동산 시장은 잠시 반등했다. 그러나 가계부채 확대를 우려한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일반상품 판매를 중단시키고 태영건설발(發) PF 위기설이 대두되면서 시장은 다시 하락 국면에 돌입했다.
정부는 민간공급 활성화에 나섰다. 2023년 8월까지 누적 주택 인허가 및 착공 실적이 전년 대비 각각 39%, 56% 감소하면서 주택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정부는 9·26 공급대책을 통해 공공택지 전매 제한을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한편, 공사비에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에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을 명시하도록 했다. 또 HUG와 주택금융공사의 PF 대출 규모를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확대하고 보증 심사 시 시공능력순위 기준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29일 태영건설이 채권단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며 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가라앉은 상태다.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 운용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정부는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안전진단 통과를 못 한 아파트도 30년 연한을 넘기면 재건축 사업을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과 미분양 주택에 대한 취득세 감면 등도 포함됐다. 정부는 그 후속조치로 재건축 용적률을 법정상한의 150%까지 상향하고 적용 대상을 서울 목동, 상계 등 전국 105개 지구로 확대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2월 1일 입법예고했다.
부동산 규제란 규제는 다 풀어버리겠다는 게 이 정부의 기조다. 하지만 부동산은 하락기로 접어들었고, 가계부채는 턱에 차 있다. 시장에서는 ‘태영 다음은 어디일까’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리인하가 필수적이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늦어지는 분위기이고 한국은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못해 금리인하의 여력도 크지 않다. 이처럼 모든 시장의 지표는 하락을 가리키고 있어 이 시장을 거꾸로 돌려놓겠다는 윤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속에 치러지는 총선도 변수다.
전문가들 “부동산 계급화 심화할 것” 현재 부동산 시장은 ‘반등’과 ‘대세 하락기 진입’ 사이 갈림길에 놓여 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수도권 집값은 떨어지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제 반등을 예상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시장이 대세 하락기에 진입했다면 현재 윤석열 정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셈이다. 부동산이 잠시 반등했다는 점과 PF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유사해 보인다. 정책의 큰 줄기는 규제완화지만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데 한계도 있어 보인다. 당장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금융위기 당시 학습효과로 인해 부실 규모는 10년 전보다 대폭 축소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 정부는 가계부채와 미분양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지난해 집값이 오르고 특례보금자리론 실적이 급증하자 9월부터 일반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관련법의 국회 통과가 필요한 세율 조정은 차치하더라도 일부 완화된 다주택자 대출규제도 시장에 충격을 줄 만큼은 아니라는 평가다. 이번 정부 임기는 시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보다 ‘다지는 시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말하는 시장 정상화는 문재인 정부 규제 전 시기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지만 이미 경기가 꺾인 상황에서 규제를 푼다고 해서 민간공급이 늘기는 어렵다”며 “정부는 일부 규모가 크거나 상징적인 사업을 제외한 부실 사업장에 대해선 적극 개입하지 않고 시장 논리에 맡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거품이 빠지면서 ‘옥석 가리기’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과 계층 양극화도 심화할 전망이다. 인구구조 변화도 시장을 바꾸고 있다. 조영광 대우건설 빅데이터 연구원은 “지방 미분양은 가족 구성원 수가 줄고 있는 현상과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하고 비싼 대형타입을 고가에 분양해 발생한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서울의 주거선호 지역과 GTX 개통 지역이 살아남을 것이고 이로 인한 계급화 현상도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몇년 뒤가 될 지 모를 옥석가리기가 끝나는 시점이 새로운 매수 타이밍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자산가치를 부풀렸던 유동성이 빠진 자리에는 교통 인프라, 학군등을 갖춘 주택이 여전히 많은 실수요를 자랑하며 임대차 시장에서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당장 반등은 어렵지만 하락기가 길어지더라도 몇년 안에 반드시 상승장이 올 것”이라면서 “하락기동안 서울 내 주요 입주단지 매수 기회를 잡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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