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원금만 회복하면 다시는 국장 쳐다도 안 볼 거예요.” 최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국장은 답이 없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하고 정치권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증시부양책을 쏟아냈지만 증시는 연초부터 내리막을 걷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증시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한국만은 예외다.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주요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국내 증시만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상 최고치?… 한국은 최하위 수준
‘세계적 상승+증시부양책’에도…나홀로 추풍낙엽 K-증시
1월 31일 코스피는 전일보다 1.72포인트(0.07%) 하락한 2497.09에 장을 마쳤다. 한 달 전 2024년 증시 첫 거래일에 2669.81로 축포를 터뜨리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쓸쓸한 1월의 마감이었다. 새해가 되면 투자자들의 낙관적 전망이 반영돼 주가가 오른다는 ‘1월 효과’는 없었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 첫 거래일인 1월 2일과 29일 등 총 8거래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전 거래일 대비 하락 마감하며 약세장을 지속했다. 한 달간 한국 코스피지수의 하락률은 5.96%였다.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1월 코스피는 평균 2.7% 상승했고, 월별로 보면 11월(2.8%)에 이어 두 번째로 상승률이 높았지만 2024년 1월은 예외였다.

글로벌 증시의 영향을 받았을까. 틀렸다. 미국에선 500개 대표기업을 모은 S&P500지수가 사흘 연속 랠리를 이어가더니 지난 1월 24일 장중 4900 선을 사상 처음으로 찍었다. 한 달간 S&P500은 3.25%, 나스닥종합지수는 3.32% 올라 경제의 복원력을 시사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역시 2.06% 상승을 기록했다. 미국 증시는 올초 불안한 시작을 보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아마존·애플 등 소위 매그니피센트7의 상승이 증시 반등을 이끌었다.

일본의 닛케이225지수는 한 달간 8.43% 오르면서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의 상승세를 보였다. ‘재팬 디스카운트’로 악명 높았던 일본 증시는 곧 40,000 선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러한 예측이 현실화돼 1989년 12월 29일에 세운 역대 최고 기록인 38,915.87을 넘어서면 증시 관점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된다.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개선, 주주환원정책 등을 기반으로 밸류에이션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튀르키예는 인플레이션 상승에 지수가 13.27% 뛰며 전 세계 주요 증시 중 상승폭이 가장 컸고,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50은 3.17% 상승하며 유럽의 안정적인 회복세를 나타냈다. 독일은 DAX30지수가 1월 24일 장중 1만6900 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G7 중 3년 만에 나홀로 ‘역성장’하며 붙은 멸칭 ‘유럽의 병자’ 의미가 무색할 정도다.

러시아 증시도 MOEX 지수가 3.72% 오르며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아시아에서는 베트남 VN30이 3.08% 오르며 강한 경제성장의 신호를 보냈다.

경제성장률 둔화로 먹구름이 낀 중국을 제외하면 1월 한 달간 한국은 글로벌 증시의 주요 지수 중 최하위 수준이었다. 나홀로 부진한 흐름에 기관투자가 자금은 국장을 떠나 미국, 유럽,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부터 1월 30일까지 기관투자가들은 코스피에서만 6조2496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는 2조8611억원 순매수했지만 1월 중순(12일)부터 팔자세로 변하며 순매도 비중이 크게 늘었다. ‘반도체·중국’에 묶인 K-증시 보통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를 따라 움직인다. 미국 주요 지수가 오르면 코스피지수도 오르고 미국 주요 지수가 내려가면 코스피지수도 내려간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미국 주요 지수가 상승해도 코스피지수는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이다.

거시경제(매크로)의 변화도 지정학적 리스크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 증시는 새해부터 부양책이 넘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2일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공매도 개혁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며 “임기 중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그후로도 대통령의 증시부양책은 계속됐다. 1월 17일엔 한국거래소를 찾아 고소득자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허용하고 기업들에는 주가 부양 대책을 의무적으로 내놓으라고 했다. 지난해 말엔 공매도를 금지하고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도 높였다.

1월의 데이터를 보면 부양책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장기적 관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최근의 주식시장 하락은 한국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보다는 기업의 성장률 둔화가 원인으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1월 24일까지 코스피시장에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147개다.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50개)의 약 3배에 달한다.

특히 2차전지 대형주들이 신저가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SK이노베이션(자회사 SK온 포함), 삼성SDI 등이 대표적인 예다.

2차전지 업계는 주요 셀 소재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부진, 배터리 광물 가격 하락 전망,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과 이로 인한 미국의 정책 변동 불확실성 등으로 업황 전망이 크게 악화됐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와 중국 및 독일 시장에서의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가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추겼다.

건설업계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계기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부각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용평가업계와 증권가에서 재무적 부담이 크다고 평가받은 동부건설, 신세계건설, 코오롱글로벌을 포함한 다수의 건설주들이 연초 이후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화학·정유 부문도 롯데정밀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 등의 신저가 기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최고운 애널리스트는 “불확실한 대외 경기환경과 수요 부진,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중국 중심의 대규모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이 단기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의 경기침체와 지정학적 갈등이 부각되며 호텔신라, GKL, LG생활건강 등 중국 소비 관련주들도 신저가를 기록했다.

2024년 한국 증시를 이끌 주도주로 꼽혔던 반도체도 힘을 못 쓰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연초 기대감을 높였지만 삼성전자는 7만전자에서, SK하이닉스는 13만닉스에서 횡보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선두주자인 SK하이닉스는 높은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98조619억원으로, 올해부터 HBM 양산을 시작하는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약 126조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디커플링 해소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의 탈동조화 현상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국내 증시의 산업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국내 증시가 반도체 업황의 영향을 크게 받게 만들고 있다. 2014년 18.92%였던 두 종목의 비중이 2019년 19.08%를 거쳐 현재 20.89%로 높아졌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 역시 한국 증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중화권 증시는 연초 이후 10% 이상 하락하며, 역사적인 저점수준(HSCEI 기준)까지 급락했다. 가장 큰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관측되는 경기침체 우려에도 중국 당국이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는 점이 꼽힌다. 리딩투자증권의 곽병열 애널리스트는 “연초 이후 한국 증시 부진의 가장 직접적인 외부요인은 중국 변수의 악화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디커플링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국 경제 상황,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기업 실적의 문제들은 주가에 어느 정도 선반영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종의 이익 변동성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국내 실적 변수의 불확실성이 점차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곽 애널리스트는 “이는 곧 국내 실적변수의 불확실성이 점차적인 개선 가능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의 실적 불확실성이 감소함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이 더욱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