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삼성전자에서 지난해 성과급이 '제로(0)'인 반도체 사업부를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직원들의 노동조합 가입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들에선 성과급 지급 규모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 중 최대 규모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조합원은 지난 5일 기준 1만6600여명이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 직원 12만명의 약 14% 수준이다.

전삼노 조합원 수는 지난해 9000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성과급 예상 지급률이 공지된 12월 말에 처음 1만명을 돌파한 이후 한 달여 만에 66%가량 늘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사내 게시판 나우톡에는 노조 가입 인증도 이어지고 있다.

'연봉 50%→0%' 뿔난 삼성맨…노조 가입 줄이어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의 노조 가입 급증은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29일 사내에 사업부별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을 확정해 공지했는데 반도체(DS) 부문은 실적 한파로 OPI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같은 '삼성맨'인데도 업황과 실적에 따라 부서별로 성과급 희비가 엇갈렸다. DS부문은 OPI 지급률 0%를 기록한 반면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부문은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호실적을 거두면서 OPI 최대 비율인 연봉의 50%를 받게 됐다. OPI는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되기 때문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초까지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OPI를 지급받아왔던 DS부문은 역대급 실적 악화에 빈 봉투를 받게 됐다.

OPI는 소속 사업부의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매년 한 차례 지급하는 것으로, 목표달성장려금(TAI)과 함께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성과급 제도다.

DS부문의 목표달성장려금(TAI) 지급률도 지난해 하반기 기준 평균 월 기본급의 12.5%로 상반기(25%)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DS부문 내에서도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는 0%다.

이에 DS부문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며 노조가 직접 경영진을 찾아가 '격려금 200% 지급'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지급 계획이 없다며 거부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7조73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연간 영업이익을 재원으로 지급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는 받지 못하게 됐다. PS는 1년에 한 번,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SK하이닉스의 대표적인 성과급이다.

다만 임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 '생산성격려금(PI)'으로 월 기본급의 50%를 지급하기로 했다. PI는 SK하이닉스가 실적 목표에 따라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지급하는 성과급이다. 전년(100%)보다 지급률이 낮아졌지만, 지난해 말 영업손실을 보더라도 PI를 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제도를 개선한 덕분에 성과급을 받게 됐다. 자사주 15주와 격려금 200만원도 지급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최근 직원들에게 자사주 15주와 격려금 2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 DS부문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5일 오전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마련한 시위 트럭이 서울 여의도 일대를 돌고 있다. 사진=블라인드
5일 오전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마련한 시위 트럭이 서울 여의도 일대를 돌고 있다. 사진=블라인드
"성과급 더 달라" LG맨은 트럭 시위, 현대맨은 파업 예고

최근 대기업들에선 성과급 지급 규모를 둘러싼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700여명은 성과급 불만으로 지난 5일부터 서울 여의도에서 3.5톤 트럭 및 스피커를 이용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영업이익 2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썼지만, 회사 측은 영업이익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변동성이 커 성과 산정에 포함될 수 없다고 공지하며 전년 대비 절반 수준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의 성과급은 지난해 평균 870%(기본급 대비)에서 올해 평균 362%로 대폭 줄었다.

직원들은 IRA 포함 재무제표상 이익을 바탕으로 성과급 산정, 목표 달성치가 아닌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이익금의 일정 규모를 성과급 재원으로 설정하는 '프로핏 셰어링' 방식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지난해 성과급이 3분의 1 수준인 기본급의 240%로 책정되며 직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년도에는 최대 705%의 성과급을 지급한 바 있다. LG이노텍은 지난해 연간으로 전년 대비 5.2% 증가한 20조605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경기 침체와 IT 분야 전방 수요 부진으로 연간 영업이익은 34.7% 감소한 8308억원에 그쳤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ㆍ기아 본사.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ㆍ기아 본사. 사진=연합뉴스
호실적을 거둔 대기업들도 성과급 지급 규모를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현대차그룹은 노조가 사측에 특별성과급을 요구하고 있어 설 연휴가 끝난 뒤 지급 규모와 시기 등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성과급은 연말성과급과는 다른 별도의 포상이다.

기아 노조는 설 연휴가 끝나면 오는 13일부터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는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2022년 격려금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1인당 400만원을 지급했고, 지난해에는 특별성과급으로 400만원과 현대차 주식 10주 등 약 600만원 상당을 지급했다.

현대차·기아 노조의 특별성과급 요구가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등 다른 계열사들에도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초 현대모비스 노조는 현대차보다 특별성과급이 적다는 이유로 본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고, 현대제철 노조도 사장실을 점거하며 특별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직 지난해 임금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현대제철 노조는 오는 22일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 앞에서 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