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바겐세일 테슬라”…기회인가, 덫인가

25만8849원(194.77달러).

한국 시간 기준으로 2월 22일 테슬라의 주당 가격이다. 불과 한 달여 전 주당 35만2000원대였던 테슬라 주가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무시하기에는 테슬라의 명성이 주는 가격적 유혹이 지나치게 크다. 지난 한 달간 20% 가까이 하락한 주가는 이미 저점에 도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학개미들은 이미 테슬라에 베팅 중이다. 값싸진 테슬라. 기회인가, 쪽박인가. ‘3%’…제동 걸린 성장테슬라 주가에 제동이 걸린 건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2023년 한해 약 120%가량 폭등했던 테슬라는 지난해 12월 28일 장중 35만2198원을 기록한 뒤 급격한 하락세에 빠져들었다. 2024년 테슬라가 최대 경쟁사인 중국의 비야디(BYD)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분석이 주가를 끌어내린 주원인이었다.

기름을 부은 건 1월 25일 테슬라의 4분기 실적 발표였다. 3분기에 이어 매출과 주당순이익(EPS) 모두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매출은 1년 전보다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폭주 기관차 같았던 테슬라가 3년여 만에 마주한 가장 낮은 매출 증가율이다. 이마저도 자동차 부문 매출로 한정하면 성장률은 1%에 불과했다. 테슬라의 매출은 자동차 그리고 에너지 발전·저장 부문, 서비스·기타 등 크게 3개 부문으로 구분된다.

실적보다 더 우울한 건 전망이었다. 테슬라는 올 한 해 전망에 대해 “2024년 자동차 판매 성장률은 2023년에 달성한 성장률보다 눈에 띄게 낮아질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유는 내년 하반기 생산 예정인 보급형 신차 개발에 집중하면서 올해 수익성에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었다. 테슬라 측은 “우리는 현재 두 가지 성장의 파도 사이에 있다”며 “첫째는 모델3·Y의 글로벌 확장이고 다음 물결은 차세대 신차의 글로벌 확장”이라고 설명했다.

4분기 실적 발표 여파는 컸다. 글로벌 투자사인 모닝스타 리서치의 세스 골드스틴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전년 대비 50%, 또는 30∼40% 성장하는 시기는 2024년에는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부터 새어 나온 비관론이 기정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실적 발표 후 테슬라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175달러까지 떨어지며 연초보다 17%나 하락했다. 이후 주가는 회복세를 보이며 최근 최고치인 194달러까지 올랐지만 52주 최고가인 299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37%의 격차가 있다.

증권가에서도 테슬라의 목표주가를 낮추기 시작했다. 바클레이즈는 목표주가를 250달러에서 225달러로 낮췄다. 이 회사의 애널리스트는 “우려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흐린 길은 당분간 하방 리스크를 강화한다”고 전망했다. RBC 애널리스트들은 목표주가를 300달러에서 297달러로, 캐나코드 제뉴이티는 267달러에서 234달러로 낮췄다.

이는 미국의 기록적인 상승장과도 흐름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S&P500 지수는 12.5% 상승했다. 테슬라가 포함된 ‘M7(Magnificent 7, 훌륭한 7개 주식)’ 주식은 테슬라만 제외하고 모두 상승하거나 신고가를 찍었다. 테슬라는 벤치마크 S&P500 지수에 상장된 주식 중 가장 실적이 저조하다는 불명예를 안았다. 미국 현지 매체에서는 ‘M7’으로 불리는 뉴욕증시의 대표적 기술주 목록에서 테슬라가 빠져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바겐세일 테슬라”…기회인가, 덫인가
‘성장주의 대명사’ 테슬라의 주가 하락은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겼다. 떨어지는 칼날에 올라타지 말라는 격언이 있지만 서학개미들은 테슬라 매수에 나섰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가 하락이 본격화된 4분기 실적 발표일인 1월 25일부터 2월 14일까지 약 2주간 한국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주식 1위 종목은 테슬라로 집계됐다. 4억9318만 달러 순매수다.

2~4위는 매그니피센트 7의 엔디비아,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이 차지했지만 나머지 톱10에는 테슬라 관련주가 2개 더 올랐다. 테슬라의 하루 수익률 2배를 추종하는 ‘티렉스 2X 롱 테슬라 데일리 타깃 ETF’(8152만 달러) 5위, 테슬라 주가가 오르면 1.5배 수익을 얻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1.5X’(5545만 달러) 7위 등 서학개미들이 매수한 글로벌 주식 톱10의 3개가 테슬라 관련주다. 저가매수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서학개미들의 기대감에 확신을 더한 건 ‘돈나무 언니’로 유명세를 탄 캐시 우드의 또 한번의 테슬라 선택도 있다.

캐시 우드가 CEO이자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있는 아크인베스트는 지난해 말 테슬라와 전기차에 대한 비관론이 한창일 때 테슬라를 집중 매수했다. ‘파괴적 혁신’을 추종하는 우드 CEO는 테슬라의 초창기 투자자다. 그는 이번에도 향후 3~4년 안에 테슬라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미국 투자전문 매체인 더모틀리풀이 1월 15일 보도했다. 캐즘의 덫 vs 성장의 파도?회의론자들이 테슬라와 전기차의 ‘저성장’에 주목한다면 낙관론자들은 테슬라의 성장이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한다. 테슬라 측의 주장대로 ‘성장의 파도’ 이후를 기약한다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다. 월가의 투자의견 또한 매수 권고도 매도 권고도 아닌 ‘중립’이다.

먼저 회의론자들은 사상 최저의 매출 증가율(3%), 중국 비야디의 약진, 전기차 시장의 부진을 내세운다. 이들은 현재 전기차 시장이 ‘캐즘의 덫’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하이테크 마케팅 분야 대가인 제프리 무어의 기술 수용 주기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은 초기 시장에서 주목받다 주류 시장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커다란 단절에 맞닥뜨리는데, 무어는 이 시기를 ‘캐즘’이라 칭한다. 캐즘을 극복해야만 광범위한 시장으로 확대되는데 지금의 전기차 산업이 ‘캐즘의 덫’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 하나가 지난 1월 미국 시카고 등 중부 지역에 길게 늘어선 테슬라 충전 줄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감소하고 충전시간이 늘면서 테슬라 차주들이 큰 불편을 호소한 사건인데, 이는 전기차 기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미국 1위 렌터카 업체 허츠가 보유했던 전기차 5만 대 중 2만여 대를 다시 내연기관차로 바꾼 것도 일대 사건이었다. 전기차는 유지비용이 너무 크게 오르고 중고차로 매각할 때 감가율이 높으며 고객들도 예상만큼 전기차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시장이 위축되자 중고차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테슬라의 중고차 평균 값은 2022년 7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6만7900달러에서 2024년 2월 현재 3만3913달러로 떨어졌다. 19개월 연속 하락이자 반값으로 떨어진 수준이다.

최근 수익성 악화로 테슬라 정리해고가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블룸버그의 보도도 회의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보조금이 줄어드는 추세에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이유를 당분간 찾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테슬라가 ‘2020년 이후 인력을 약 두 배로 늘렸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장의 규모가 줄었을 뿐 성장을 멈춘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첫째 근거는 공장 가동이다. 지난해 7월 테슬라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공장 규모를 크게 확장해 생산량을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1월에는 홍해 리스크(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여파)로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며 잠시 생산이 중단됐으나 최근 재가동을 시작했다.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는 “테슬라의 정리해고 가능성 때문에 테슬라 주식을 매각하고 싶다면 이를 고려하라”며 “테슬라가 이렇게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지금 거대한 전기차 생산 공장을 왜 계획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중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약진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테슬라의 중국 내 전기차 판매는 2024년 1월 전년 대비 약 8% 증가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미국에 기반을 둔 테슬라에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의미 있는 성장이란 분석이다.

인공지능(AI)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테슬라가 소외되고 있지만 테슬라 또한 AI의 주요 플레이어란 사실도 낙관론자들의 주장을 거드는 대목이다.

최근 저가매수에 나선 우드 CEO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테슬라를 세계 최대 AI 기업으로 꼽으며 자율주행차 사업이 테슬라의 핵심 사업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테슬라의 혁신적인 자율주행차 기술에 증가하는 전기차 생산량이 맞물리면서 2027년까지 테슬라 주가가 20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테슬라 주가는 190달러대로 향후 수년 내에 770%가량 상승한다는 전망인 셈이다. 우드 CEO는 지난 1월 CNBC에 출연해 “테슬라는 지금 사이클과 관련해 저점을 통과하고 있다”며 “하지만 자율 택시 네트워크, 플랫폼이 작동하면 향후 2년 이내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테슬라에 주목하는 것은 성장의 재가속화와 마진의 엄청난 증가”라고 말했다.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우리는 테슬라의 극단적 부정적 내러티브가 형성되고 주식에 검은 구름을 형성하는 것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다”면서 장기적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썼다. 최대 변수 : 제왕 머스크테슬라의 장기 성장에 기대를 건 투자자라면 마지막 짚고 넘어갈 부분이 남았다. 테슬라 주가를 흔드는 최대 변수,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이자 최대주주인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테슬라 지분의 20.6%에 해당하는 7억1502만2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머스크는 최대주주이면서 전기차, 배터리 제품 및 태양 에너지 제품에 대한 모든 제품 설계, 엔지니어링 및 글로벌 제조를 감독하는 테슬라의 핵심인물이다.

문제는 그의 변덕스러운 행동과 발언으로 인해 테슬라의 주가가 급격한 변동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2018년 8월 7일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비상장사로 전환할 수 있다고 트윗한 것이 한 예다. 당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슬라를 사기 혐의로 기소해 2018년 9월 머스크와 테슬라를 합쳐 4000만 달러의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최근 실적 발표 이후 주가 급락이 이어질 때도 CEO 리스크가 터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월 초 머스크가 이사진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며 마약을 복용했으며 마치 왕처럼 행세하면서 마약 복용을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해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의 전현직 이사진이 압박을 느꼈다고 보도했다. 머스크와 그의 변호사는 이러한 의혹에 응답하지 않았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