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들에 214억원 손배 책임 인정
주민소송 10여만에 잠정 결론

[법알못 판례 읽기]
용인경전철 운행 모습. 사진=뉴스1
용인경전철 운행 모습. 사진=뉴스1
2조원대 세금 낭비 논란이 불거진 용인경전철 사업을 추진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수요예측 기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0여 년 만에 이정문 전 용인시장, 한국교통연구원 및 담당 연구원들의 과실이 인정됐다. 이들은 약 214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지자체가 무분별한 민간투자사업으로 대규모 예산을 날리게 됐을 땐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선례를 남긴 판결이란 평가다.

잘못된 수요예측이 부른 30년 재정난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성수제·양진수·하태한)는 2024년 2월 14일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 용인시장은 이 전 시장, 한국교통연구원, 담당 연구원이 용인시에 214억6000여 만원을 지급하도록 청구하라”고 명령했다. 이 전 시장의 후임이던 서정석·김학규 전 용인시장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용인경전철은 1997년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의 지시로 검토된 이후 3명의 용인시장을 거쳐 2010년 6월 완공됐다. 민간자본 투자방식으로 1조32억원이 투입된 대형사업이었지만 경전철이 운행되기 전부터 법적 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용인시는 시행사인 캐나다 봄바디어와 최소수입보장 비율을 놓고 국제중재를 벌인 끝에 패소해 이자를 포함해 8500억원가량을 물어줬다.

2013년 4월 경전철 개통 이후 문제는 더 커졌다. 이용객 수가 기대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10여 년간 용인경전철의 하루 이용객은 9000~3만 명 수준으로 용인시가 예측한 14만 명을 크게 밑돌았다.

그럼에도 30년간 운영수익의 90%를 보장한다는 계약에 따라 용인시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봄바디어에 4293억원을 내며 재정난에 허덕였다. 이용객 수가 그대로라면 2043년까지 1조원 이상을 더 지급해야 할 판이다.

이 같은 상황을 보다 못한 주민들은 2013년 10월 당시 시장과 정책보좌관 박모 씨를 상대로 1조232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박 씨의 책임 일부만 인정돼 10억원대 배상을 하란 판결이 나왔다. 다만 주민들이 지자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자체는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0년 “용인경전철 사업이 잘못된 수요예측 조사로 실시됐다면 주민들은 이에 따라 입은 손해를 청구하는 소송을 할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2005년 주민소송제도 도입 이후 지자체의 민간투자사업에 대해 주민들이 감시하고 소송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용인경전철 역사 모습. 사진=용인시
용인경전철 역사 모습. 사진=용인시
지자체 민간투자에 책임 묻는 주민소송 첫 인정

파기환송심에서도 용인시 측의 책임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전 시장은 교통연구원의 과도한 수요예측에 대해 최소한의 타당성 검토도 하지 않고 2004년 사업시행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실시협약을 맺은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며 “시장으로서의 선관주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경전철) 운영 수입이 전망치에 못 미치면 수입 보장에서 제외하는 ‘저지 규정’도 두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수요예측을 했던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들의 경우 이 전 시장과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했다고 봤다. 경전철의 하루 이용객이 예측치의 5~13%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연구원들은 합리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과도한 수요예측을 했고 용인시 협상단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지금까지 봄바디어에 지급한 4293억원을 용인시의 손해금액으로 확정하고, 책임비율을 5%로 판단해 주민들이 받아야 할 손해배상금을 확정했다. 용인시가 앞으로 20년간 봄바디어에 1조원 이상을 더 내야 할 가능성이 높음을 고려하면 추가 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손해배상은 용인시가 직접 이 전 시장 등을 상대로 청구해 진행될 전망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주민소송에서 원고 측 승소가 확정되면 해당 지자체장은 판결 후 60일 안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해야 한다. 기한까지 지급되지 않으면 반환 청구 소송을 해야 한다.

주민 측을 대리한 현근택 변호사는 “수요예측을 잘못한 기관에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 처음 인정됐다는 점이 의미 있다”며 “용인시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역시 대법원까지 가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제로 배상이 이뤄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닮은꼴 경전철’ 부산·의정부도 초긴장

‘세금 먹는 하마’로 불린 용인경전철 사업을 두고 전임 지자체장과 수요예측 기관이 200억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다른 지자체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경전철 사업에서 장기간 적자를 내고 있는 부산시와 김해시, 의정부시가 대표적이다.

부산시와 김해시는 2011년 부산·김해경전철을 개통했다. 두 지자체는 용인경전철 사례와 마찬가지로 최소수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사업시행사와 계약을 맺었다.

처음엔 20년간 운영수익의 90%를 보장하기로 했지만 하루 이용객이 예측치의 10분의 1 수준인 3만 명에 불과하자 비율을 두 차례 하향 조정했다. 2017년에는 최소수입보장 조건을 최소비용보전 조건으로 변경했다.

그럼에도 2023년 김해시가 505억원, 부산시가 293억원을 지급하는 등 매년 수백억원의 재정이 비용보전을 위해 투입되고 있다.

경전철 개통 이후 2023년까지 12년간 두 지자체가 시행사에 낸 금액만 약 7300억원에 달한다. 지금도 경전철 하루 이용객이 4만 명대에 그치고 있음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두 지자체 재정 상황에 적잖은 부담을 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정부시도 같은 처지다. 의정부경전철은 2012년 7월 운행을 시작했지만 5년간 약 3600억원의 적자를 낸 끝에 2017년 5월 민간사업자가 파산했다. 의정부시는 이용객이 예측치(7만9000~15만 명)의 50%를 넘으면 전체 관리운영비의 80%를 부담하기로 했지만, 이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할 정도로 실적이 부진했다. 그 후 민간사업자가 투자금 반환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의정부시는 1720억원을 물어줘야 했다.

의정부시는 2019년 새 사업자에 경전철 운영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연간 고정 관리운영비(약 200억원)을 정해두고, 운수 수익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의정부시가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럼에도 하루 평균 경전철 탑승객이 4만5000명 수준에 그치면서 의정부시는 약 100억원을 관리운영비 보전액으로 지출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들 지자체 역시 민간사업자에게 운영수익 중 상당부분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경전철 투자사업을 벌였다가 재정 부담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주민들이 민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