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연이어 햄버거 시장 눈독
해외 유명 햄버거 브랜드도 한국행 러시
현대백화점그룹의 종합식품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는 현재 햄버거 시장 진출을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스테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텍사스 로드하우스’의 햄버거 브랜드 ‘재거스’의 국내 론칭을 검토 중이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재거스 론칭에 대해 내부적으로 계속 논의를 이어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대그린푸드가 한국에 들여오는 방안을 고민 중인 재거스는 미국에서 ‘가성비 햄버거’로 평가받고 있는 브랜드다. 대표 메뉴인 ‘선라이즈 버거’의 현지 가격은 약 5.99달러다. 맥도날드의 빅맥(약 5.19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2020년 텍사스 로드하우스 매장을 국내에 단독으로 들여오면서 이 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텍사스 로드하우스는 매장을 7개까지 늘리는 등 성공적인 외연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맺어진 끈끈한 파트너십을 토대로 택사스 로드하우스와 함께 새롭게 한국 햄버거 시장을 개척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현대그린푸드가 햄버거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시장이 다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외식업계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운 시장을 꼽으라면 ‘햄버거’를 꼽는 사람들도 많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햄버거 브랜드들의 간판이 내걸리며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신상 햄버거집 앞엔 늘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들을 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그린푸드 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올해 해외 유명 햄버거 브랜드를 한국에 들고와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 ‘햄버거 열풍’은 이어질 전망이다.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각광‘제2의 햄버거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햄버거가 외식업계를 뒤흔드는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햄버거 시장 규모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3조원 규모였던 햄버거 시장은 지난해 약 5조원대로 불어났다. 코로나19로 외식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은 상황 속에서도 불과 2년 사이 70% 넘는 고성장을 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햄버거가 커피, 치킨과 함께 햄버거는 외식업계에서 망할 가능성이 낮은 ‘3대 업종’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최근 햄버거 시장은 저가, 고가 브랜드 할 것 없이 장사가 다 잘되고 있다. 저가 브랜드는 경기불황의 수혜를 입고, 고가 브랜드는 다양화한 취향으로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소비자들로부터 ‘정크푸드의 대명사’라며 외면받았던 햄버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바뀌고 있다.
맥도날드, 롯데리아와 같은 일명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서 고물가 시대에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가성비 식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자장면 한 그릇도 1만원이 넘는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에서는 1만원 이하로 음료까지 곁들여 한 끼를 해결하는 게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야기한 경기침체 장기화와 더불어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지난해 햄버거가 불티나게 팔렸다”며 “이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맥도날드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좋은 실적은 1월에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리아 역시 아직 실적 공개 전인데, 전년 대비 매출이 증가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수제 버거’와 같이 고급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사가 직접 만드는 ‘프리미엄 버거’는 젊은층 사이에서 단백질과 채소 등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식사’로 주목받고 있다. 고기 패티, 빵과 채소 등 신선한 식재료만을 활용해 정성스럽게 만드는 수제 버거는 햄버거가 정크 푸드라는 소비자 고정관념을 확 지워버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SPC가 들여온 ‘쉐이크쉑’ 매출이 크게 늘자 잇따라 신규 매장을 연 것이 이 상황을 설명해준다.
프리미엄 버거는 세트(감자칩 및 음료 추가)로 즐기려면 3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야 하는 곳도 많다. 그래도 맛집으로 소문난 햄버거 가게는 주말, 평일할 것 없이 오픈과 동시에 긴 대기줄이 만들어지기 일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저가, 고가 햄버거 양쪽 모두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햄버거 시장이 급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어게인 2010 우려도 나와특히 최근에는 해외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유명 햄버거 브랜드들이 연이어 대기업들과 손을 잡고 한국에 진출하고 있으며 다점포 계획까지 내놓고 있어 앞으로도 시장 규모는 더욱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
해외 햄버거 브랜드의 한국 진출은 2016년 SPC가 뉴욕의 명물 ‘쉐이크쉑’ 버거를 한국에 들여오며 큰 화제를 모은 이후 한동안 조용했다.
2022년 11월 bhc가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햄버거 브랜드인 ‘슈퍼두퍼’를 들여와 강남에 매장 문을 열며 다시 붐이 일었다. 오픈 3개월 동안 하루 평균 1500만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할 만큼 매장은 붐볐다. 현재 슈퍼두퍼 점포 수는 3개까지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한화갤러리아가 햄버거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극했다. 미국의 3대 버거로 불리는 파이브가이즈를 설득해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파이브가이즈 운영에 집중하기 위해 에프지코리아라는 자회사까지 설립하며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도 해외 브랜드 유치를 앞세운 대기업들의 햄버거 시장 진출은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그린푸드까지 재거스 론칭을 고민 중인 가운데 국내 몇몇 기업들이 미국 LA를 대표하는 버거 ‘인앤아웃’의 한국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다양한 브랜드의 햄버거를 즐길 수 있어 소비자들 입장에선 발길 만한 일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요즘 외식업 유행은 급변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햄버거 인기가 확 꺼질 경우 그간 우후죽순 생긴 점포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맥도날드, 버거킹, 맘스터치 등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등장했지만 매각이 쉽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실제로 과거에도 햄버거 시장은 지금처럼 경쟁이 가열됐다가 차갑게 식은 사례가 있다. 2010년께 갑작스레 수제 버거 열풍이 일며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고 기업들은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수제 버거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고 대부분 쓴맛을 봤다.
매일유업의 ‘골든버거 리퍼블릭’, CJ푸드빌의 ‘빕스버거’ 등 수제 버거 열풍을 겨냥해 점포를 열었다 실패한 사례다. 신세계푸드는 로열티를 지급하고 2011년 미국의 수제버거 브랜드 ‘자니로켓’을 야심차게 한국에 들여왔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2022년 사업을 접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 햄버거는 저가, 고가 가릴 것 없이 한국인들에게 라면과 같은 최애 기호식품이 됐다”며 “쉽게 시장 규모가 축소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