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은 컸다. 영상 게시 이후 포토샵과 동영상 편집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도비의 주가가 큰 폭으로 급락했다. 영상업계에서는 직업인들의 생존 논쟁이 오갔다.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스물셋 서연 씨는 “대학을 가고 전공을 배워 전문가가 되는 게 의미가 있나요. 미래가 도무지 예측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AI가 촉발한 ‘일자리 공포’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어디까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AI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직업 도장깨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창의성’ 너마저…
8년 만에 틀어진 직업 전망8년 전인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우의 수가 많은 바둑은 AI가 안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번에 넘어섰다. 1승 3패를 기록한 이세돌은 AI를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됐다.
그 충격에 전문가들은 AI가 넘볼 수 없는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다수의 전문가는 ‘창의성’을 대안으로 주목했다. 컴퓨터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과 직무가 기계로 대체된다고 해도 인간의 창의성만은 살아남을 것이란 발상이었다. 직업 전문가들은 기계는 반복적이거나 패턴화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람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게 AI 시대 기계와 인간의 역할 분담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고용정보원은 ‘2030 미래 직업 세계 연구’를 펴내며 “창의력과 감성적 특성이 중요한 분야의 일은 현시점에서는 AI로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를 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기술로 인해 30년 안에 현재 사람의 일자리의 50%를 대체할 것이라는 질문에 76.8%가 동의했으나 인간의 감성, 창의력, 비판력이 요구되는 일은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85.2%였다. 불과 8년 만에 인간의 예측은 틀어졌다. 샘 올트먼이 공개한 영상은 영상업계에 속한 직업인은 물론 창작자들을 비관에 빠뜨렸다. 호주의 브랜딩 업체 팅커벨의 아트 책임자 마커스 번은 현지 매체를 통해 “소라는 분명히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으며 마치 AI가 몇 달마다 양자 도약을 하고 창의적인 산업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테크 저널리스트인 닐 휴즈는 “할리우드 작가 파업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며 “이제 많은 이들이 ‘소라’가 장기적으로 비디오그래퍼, 감독, 영화 제작자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많은 창작자가 소라의 1분짜리 비디오 생성에 흥분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 분 안에 최대 1~2시간 길이의 영화, 광고, TV 쇼를 생성하는 AI의 시대를 만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을 재구성하는 콘텐츠 창작의 지각 변동이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며 “소라는 AI가 모든 것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달라진 예측은 또 있었다. 2월 13일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 정상회의 첫날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10년간 모든 사람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람은 프로그래머가 됐다. 이것이 바로 AI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챗GPT의 등장 이후 코딩의 위기는 모두가 직감했지만 쉽게 마주하지 못한 주제였다. 그는 이날 코딩 교육에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내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코딩 교육은 새 시대의 부름이었다. 2014년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은 초·중고 학생들의 정규 과목에 코딩과 소프트웨어(SW)를 채택했다. 당시 한국은 2018년 교과과정 개편에 SW 교과를 정규 과목으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첨예한 논쟁을 펼쳤다. 그리고 1년이나 더 늦은 2019년에서야 코딩을 초등학교 정식과목으로 채택했다. 거리에 코딩 학원이 즐비할 때쯤 ‘2020 퓨처 콘퍼런스’ 행사 연사로 나온 구글 현직 엔지니어는 ‘이제 코딩을 배우는 시대도 끝났다’고 말했다. 그의 예고대로 2024년 AI시대를 이끄는 젠슨 황은 코딩 교육의 무의미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생명과학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그는 이날 “만약 제가 다시 전공을 선택한다면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2023학년도 대학원생 선발에서 서울대의 자연과학대 학과 절반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인문대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인문대학원 소속 학과 중 독어독문과와 노어노문과는 석사과정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중어중문과, 고고미술사학과(고고학 전공), 철학과(동양철학 전공),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인지과학과 등은 박사과정 지원자가 ‘0명’이다. AI의 도전장
어떤 직업이 살아남는가 젠슨 황과 샘 올트먼 등 AI 시대를 주름잡는 인사들의 발언에 AI가 전 산업을 집어삼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커졌다. 화두는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로 번졌다.
10년 전의 예측은 틀렸다. 이제는 의사, 법조인, 교사, 공무원, 연예인 등 전문가, 고위직, 예술가 등도 ‘AI’가 촉발한 실업 공포에서 예외는 아니란 주장이 나온다. AI의 도장깨기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이미 샘 올트먼의 조력자이자 오픈AI의 공동 창업자인 그레그 브록만은 지난해 6월 방한 당시 “10년 전만 해도 AI가 육체노동 직업을 먼저 대체하고 시인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같은 창의적인 직업이 가장 마지막에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AI의 발전은 어떤 작업이 어렵고 쉬운지에 대한 이러한 가정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도 AI의 영역은 우리의 상상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직업의 순위를 매길 때 AI가 지위가 높은 직업을 대체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며 “(반대로) 몸을 쓰는 일은 대체하기 어렵다. 사회적 관계와 연관된 직종은 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간호사보다 의사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펴낸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국내 일자리 중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일자리가 약 341만 개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전체 일자리의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일반 의사, 전문 의사, 한의사, 회계사, 자산운용가, 변호사, 화학공학 기술자 및 연구원 등 전문직이 AI 잠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지우 한국은행 조사역은 “로봇, 소프트웨어 등 기존의 기술과 달리 AI의 경우 고소득·고학력 근로자가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샘 올트먼은 실업난의 우려를 낙관했다. 그는 지난 1월 18일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모든 사람의 직업이 조금 더 높은 추상적 수준에서 운영될 것”이라며 “(실업을) 피할 수 없지만 더 좋은 직업이 많이 생기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직업, 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샘 올트먼은 AI의 시대를 맞이하는 전환기에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했다. AI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전환기의 시대에 대해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기는 이르다.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직업은 많이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AI가 생산성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연간 약 1.5%에 달한다. 근로자의 필요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미국 일자리의 약 3분의 2가 “AI에 의한 자동화에 노출되어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일자리가 대체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수에게 AI는 업무를 보조하는 일부가 될 것이며, 해고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경제성에서도 인간에게 승산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발표한 새로운 논문에 따르면, 인력의 자동화는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될 전망이다.
MIT 연구원들은 노동시장에서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한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들은 AI가 오늘날 미국 경제(농업 제외)에서 노동자 임금의 1.6%를 차지하는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지만, 그 임금의 23%(전체 경제의 0.4%)만이 노동자보다 로봇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머지는 여전히 인간의 고용비가 더 저렴하다는 뜻이다.
연구의 수석 저자인 닐 톰슨은 타임지에 “다가오는 변화가 있지만 그것에 적응할 시간도 있다”며 “모든 것이 즉시 혼란에 빠질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이다.
물론 일자리 창출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MIT의 데이비드 오터와 그의 동료들은 최근 연구에서 2018년 고용의 60%가 194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의 직업에 속해 있다고 계산했다.
혁신이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능력을 강화하며 새로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뜻이다.
아직 우리가 일자리가 없는 미래, 디스토피아로 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만회할 시간도 충분하다. AI가 미치지 못할 영역은 어디인가. AI와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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