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 반도체에 9000조 투입하는 이유
영상 AI '소라', 창의성에 기반한 '종합예술'
AI 주도권, 미국 빅테크가 장악

[스페셜 리포트 : AI 직업 도장깨기①]
개발자 이어 할리우드까지 비상…'AI 직업 도장깨기'가 던지는 질문
따라잡기 힘든 속도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디자이너만 해도 충격이었다. 이제는 영화감독까지 AI가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AI가 육체노동은 물론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하는 직업을 침범한 데 이어 이제는 ‘종합예술’인 영상제작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오픈AI가 촉발한 ‘Sora(소라)’ 충격이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가장 큰 파괴적 혁신이 덮치자 산업의 판도도 급변하고 있다. 오픈AI를 등에 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애플을 꺾고 세계 1위 기업에 올랐고 AI가 전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탁월한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선진국 기업들을 겨우 따라잡은 한국은 AI 시대에 다시 길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I의 일자리 침공에 한국 사회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샘 알트만 오픈 AI CEO./연합뉴스
샘 알트만 오픈 AI CEO./연합뉴스
오픈AI·메타·소프트뱅크까지…‘쩐의 전쟁’의 시작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반도체 ‘독립’을 위해 최대 7조 달러(약 9300조원)을 쓰겠다고 했다. 챗GPT, 소라 등 오픈AI가 개발한 생성형 AI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것을 넘어 반도체 생산의 주도권까지 가져가겠다는 말이다.

챗GPT처럼 생성형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려면 고사양 반도체가 필수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대규모 학습·추론·연산 등을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연산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IT 기업이 자체 반도체 개발을 선언한 건 처음이 아니다. 테슬라,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기술이 진화할 때마다 AI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반도체를 자체 개발해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연합뉴스
오픈AI가 반도체에 7조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하는 이유는 AI 시대의 확실한 주인공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AI 반도체 시장 개발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생산을 통해 공급망 차질 없이 수급까지 안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을 위해 펀딩도 시작했다. 중동 등 다양한 투자자, 반도체 제조업체, 전력 공급업체가 함께 자금을 모아 AI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를 건설한 뒤 기존 TSMC나 삼성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가 생산을 맡는 파트너십 체제를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트먼이 지난 1월 한국을 찾은 것도 이 같은 구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월 25일 한국을 찾은 올트먼은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찾아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면담했다.

AI ‘쩐의 전쟁’에는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도 뛰어들었다. 손 회장은 최근 AI 반도체를 위해 최대 1000억 달러(약 133조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는 일본 창조신 이름을 딴 ‘코드명 이자나기’로 명명했다. 1000억 달러 중 300억 달러는 소프트뱅크가 출자하고 700억 달러는 중동 등 외부에서 투자를 받을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이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을 보유한 만큼 AI 반도체 생산에 뛰어들 경우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는 별개로 손 회장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도 협력하고 있다.

메타도 자사의 AI 기술력을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춘 AI'로 설정했다. 메타는 최근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추고 모든 상황을 학습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을 선언했다. 저커버그 CEO는 최근 “대규모언어모델(LLM) ‘라마3’로 업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을 선보이기 위해 AGI에 공을 들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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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로 제작한 영상. 프롬프트: 잠든 주인을 깨운 고양이가 아침 식사를 요구합니다. 주인은 고양이를 무시하려고 하지만 고양이는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고 마침내 주인은 고양이를 조금 더 붙잡기 위해 베개 밑에 숨겨져 있던 간식을 꺼냅니다./오픈AI
소라로 제작한 영상. 프롬프트: 잠든 주인을 깨운 고양이가 아침 식사를 요구합니다. 주인은 고양이를 무시하려고 하지만 고양이는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고 마침내 주인은 고양이를 조금 더 붙잡기 위해 베개 밑에 숨겨져 있던 간식을 꺼냅니다./오픈AI
AI로 돈은 흘러 들어가는 와중에 인간의 미래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2년 전까지는 코딩 열풍이 불었다. 기업은 연봉 경쟁을 하며 개발자를 모셔갔고, 개발자는 플랫폼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직업으로 인정받으며 몸값이 치솟았다.

2년여 만에 상황이 뒤집혔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얼마 전 “이제 아무도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제 코딩은 AI가 해주니 인간은 AI와 접목할 수 있는 생물학 등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GPU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 파급력은 더 컸다. 올해 초 그는 가전전시회인 CES에 참석하는 대신 엔비디아와 AI 생명공학 스타트업 리커전이 주최한 바이오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AI가 침범한 건 개발자의 영역뿐만이 아니다. AI는 시간과 정보로 쌓는 전문성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특권’이라고 여겼던 창의성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챗GPT가 나온 지 1년여 만에 할리우드에 비상이 걸렸다. 오픈AI가 간단한 명령어 몇 줄로 고화질의 영상을 제작해주는 ‘소라(Sora)’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소라로 생성할 수 있는 영상은 최대 1분짜리였지만 충격은 상당했다. 고화질, 섬세한 표현, 세련된 연출 기법이 담겼을 뿐 아니라 명령어로 제시하지 않은 내용은 스스로 ‘스토리텔링’을 해서 완성본을 만들어냈다. 단 한 줄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각본부터 촬영, 연출, 편집까지 소라가 ‘창의성’을 기반으로 결과물을 내놓는 셈이다.

런웨이 등 기존 AI를 통한 영상 제작 플랫폼이 만들어낸 작품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는 뭉개진 그림, 물체 간의 어색한 상호작용, 현실과 다른 물리적 작용 등 “아직 AI가 사람 따라잡기는 멀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라는 빛에 따른 변화, 동물의 움직임, 인간의 움직임 등을 사실에 가깝게 구현하며 ‘할리우드 종말론’까지 이끌어냈다. 단 두 문장으로 영화 예고편 뚝딱
소라로 제작한 영화 예고편. 프롬프트 : 빨간색 모직 니트 오토바이 헬멧을 쓴 30세 우주인의 모험을 담은 영화 예고편, 푸른 하늘, 소금 사막, 영화 스타일, 35mm 필름으로 촬영, 생생한 색상./오픈AI
소라로 제작한 영화 예고편. 프롬프트 : 빨간색 모직 니트 오토바이 헬멧을 쓴 30세 우주인의 모험을 담은 영화 예고편, 푸른 하늘, 소금 사막, 영화 스타일, 35mm 필름으로 촬영, 생생한 색상./오픈AI
#명령어 : 빨간색 니트로 만들어진 헬맷을 쓴 30세 우주인의 모험을 담은 영화 예고편. 푸른 하늘, 소금 사막, 영화 스타일, 35mm 필름으로 촬영, 생생한 색상.

단 두 줄의 문장을 입력하자 소라가 우주비행사의 모험을 담은 영화 예고편을 제작했다. 섬세한 지시 없이 단어 몇 개로 원하는 것을 적었을 뿐인데 결과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 예고편 못지않았다.

푸른 하늘과 소금 사막으로 이뤄진 행성에서 빨간색 헬맷을 쓴 우주비행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탐험에 나서는 장면이 펼쳐졌다. 우주선 내부에서 조종하는 듯한 장면도 이어졌다. 소라에 지시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스스로 채워 넣은 것이다.

소라 연구개발을 이끈 오픈AI의 빌 피블스는 소라가 카메라 각도나 타이밍을 통해 서사(내러티브)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소라가 제작한 영상을 올리며 “여러 번의 샷 변경이 있는데 이는 (여러 컷을 제작하지 않더라도) 소라에 의해 한 번에 생성된다”며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소라가 자동으로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소라가 명령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연출 기법을 통해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나간다는 얘기다.
소라로 제작한 영상. 프롬프트 : 골드러시 당시 캘리포니아의 역사적 영상./오픈AI
소라로 제작한 영상. 프롬프트 : 골드러시 당시 캘리포니아의 역사적 영상./오픈AI
소라가 명령어를 이해할 뿐 아니라 물체가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연 영상은 한 여성이 주택가를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차창 바깥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밖이 어두워지자 창문에는 여성의 얼굴이 비친다. 빛에 따른 사물의 변화를 이해한 것이다.

소라는 챗GPT와 달리3(DALL·E 3)에 적용된 시각 데이터를 훈련해 언어 이해 품질을 높였다. 그 결과 다양한 캐릭터, 행동, 피사체와 배경 등 사용자가 제시한 세부 정보로 복잡한 장면을 생성할 수 있다. 또 이미지를 움직임이 있는 영상으로 변환하거나 두 개의 영상을 합쳐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에서 CG처리를 하는 것처럼 기존 영상의 배경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소라로 제작한 영상./오픈AI
소라로 제작한 영상./오픈AI
소라가 공개되자 뉴욕 증시가 흔들렸다. 소라의 직격탄을 맞은 건 포토샵과 동영상 편집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도비였다. 지난 2월 16일 소라 공개 후 하루 만에 어도비 주가는 7.41% 하락했다.

2월 둘째 주에만 약 12% 하락하며 주중 나스닥 주요 종목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채 거래를 마감했다. 소라가 어도비의 주 사용자인 디자이너, 영상편집자의 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기존 이미지를 영상으로 변환하고 기존 영상을 명령어대로 편집하는 등 디자이너나 영상편집자의 일을 소라는 단 몇 분 안에 해버렸다.

IT업계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들썩였다. 지난해 4월 중국 인터넷 보안 기업 치후360 창립자 저우훙이는 오픈AI의 발표 직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소라가 광고와 영화 업계를 완전히 흔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우 창립자는 이어 소라의 등장으로 인간의 지능에 가까운 인공범용지능(AGI) 구현에 필요한 기간이 10년에서 1∼2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의 한 재계 관계자 역시 소라를 ‘뉴턴 모멘트’라고 불렀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소라로 인해 AI 발전에 특이점이 올 정도로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소라로 제작한 영상. 프롬프트: 마법의 시간 동안 마라케시에 서서 눈을 깜박이는 24세 여성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70mm로 촬영된 영화 필름, 피사계 심도, 생생한 색상./오픈AI
소라로 제작한 영상. 프롬프트: 마법의 시간 동안 마라케시에 서서 눈을 깜박이는 24세 여성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70mm로 촬영된 영화 필름, 피사계 심도, 생생한 색상./오픈AI
AI시대에 파괴적 혁신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모두 미국 기업들이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엔디비아 그리고 온갖 스타트업들까지 산업의 주도권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AI 경쟁력으로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 정도다. 한국은 AI 민간투자, 인재, 연구 수준 등 모든 영역에서 뒤쳐진다.

영국 데이터분석 미디어인 토터스인텔리전스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글로벌 AI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인재, 연구수준 지표가 12위에 불가했고 민간투자 부문은 18위로 홍콩보다 뒤쳐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생산라인을 증설하기로 했다./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생산라인을 증설하기로 했다./SK하이닉스
한국 기업 중 반도체와 스마트폰, 전자제품 등 IT 수직계열화를 이룬 삼성전자가 이들과 경쟁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지만, AI 기술 패권을 주도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 빅테크가 'AI 반도체 동맹'에 삼성전자를 선택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AGI 전용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AGI 컴퓨팅 랩’ 조직을 신설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수요를 소화하고 AI 동맹 강화를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양한 리스크가 파격적 혁신의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럼에도 AI시대가 올 것이라는 명백한 미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경영진의 실책에 대한 지적은 피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AI용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HBM 경쟁력이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여전히 TSMC와의 격차가 크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 이슈는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수험생들이 수십 년간 의대로 진학했고 의대 정원 확대로 이 흐름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만 문제가 아니다. 전체 한국 사회는 더 심각하다. AI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고 하는데 사라질 직업, 바뀔 직업의 판도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