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안으로 부상
높아지는 활용도…한국도 중국과 화물협력 나서

2019년 중국철도총공사가 유럽행 노선에 투입한 화물열차가 6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철도역에 도착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9년 중국철도총공사가 유럽행 노선에 투입한 화물열차가 6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철도역에 도착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유럽 화물열차가 새로운 글로벌 운송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매년 평균 운행 횟수를 1000회씩 늘리면서 지난해 운송 물량을 190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까지 키우면서다. 이처럼 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발생한 글로벌 물류 위기를 중국-유럽 화물열차 확대의 기회로 활용,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물류 인프라를 건설하고 있다. 이 열차를 활용하기 위한 한·중 협력도 구체화되고 있다.
누적 운송량 790만 TEU 돌파
2011년 첫 개통된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작년 말까지 총 790만 TEU의 화물을 실어날랐다. 누적 운행량은 8만2000회에 이른다. 2020년 운행량 1만2000회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물동량을 증가시켜 작년엔 1만7000회를 넘어섰다. 2025년에는 운행량 2만회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은 지난해 3만2000 TEU의 물량을 중국-유럽 화물열차를 통해 아시아 밖으로 실어날랐다. 올해는 4만3000 TEU까지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물류위기가 확산되면서 더 각광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를 통하던 물류망이 붕괴하면서 중국 화물열차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또 작년 말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상선을 나포하는 등 해운업계 물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도 중국-유럽 화물열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환경 규제 심화와 세계 해운업계 양대산맥의 동맹 해체 등으로 글로벌 해운시장은 요동치고 있는 점 역시 중국-유럽 화물열차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호재다.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 아래 물동량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서부·중부·동부통로 등 3개 노선을 활용한다. 서부통로는 신장 아라산커우에서 카자흐스탄을 통해 폴란드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된다. 중부통로는 네이멍구에서 몽골과 벨라루스 등을 거쳐 유럽으로 연결된다. 동부통로는 네이멍구와 중국 헤이룽장성을 통해 러시아 철도와 연결돼 유럽으로 연결된다.
3단계 걸쳐 발전…운송기간 한 달 줄어

운송상품은 개항 초기 휴대전화, 컴퓨터 등 전자기기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의복, 자동차부품, 식량, 와인, 커피원두, 가구, 기계설비 등으로 운송 품목이 점차 늘고 있다. 이 중 자동차부품과 중고차, 전자제품이 주력 운송 품목이다. 2020년 기준 주요 운송화물은 원자재(30.2%), 기계부품(15.2%), 자동차부품(11.5%), 첨단제품(10.6%), 소비재(9.8%), 의류(6.9%), 자본재(5.1%), 화공품(10.4) 등이다. 중국-유럽 화물열차가 주목받으면서 점차 첨단제품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콜드체인 운송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신선식품 등으로 운송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유럽 화물열차의 최대 장점은 운송기간이 10~15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해상운송은 통상 45일이 소요된다. 평균 운송기간을 살펴보면 시안-폴란드 바르샤바 구간은 12일, 청두-폴란드 로즈 구간은 14일, 충칭-독일 뒤스부르크 구간은 15일, 정저우-독일 함부르크 구간은 15일, 우루무치-터키 이스탄불 구간은 10일 소요된다. 해상운송 대비 최대 4분의 1 수준까지 운송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지난 10년간 3단계에 걸친 발전단계를 거쳤다. 개통 초기 2~3년간(2011~2013년)은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통관 효율이 낮고 유럽에서 중국으로 보내는 화물이 거의 없었으며 운행시간도 길었다.

하지만 2단계(2014~2018년)에 이르면서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고속발전을 하게 된다. 각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노선을 개통하며 국경 세관이 크게 확대됐다. 기존 IT제품에 국한됐던 수송 품목도 점차 자동차부품, 와인, 의류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후 3단계(2019년~)에선 소프트웨어 등 통관시스템이 크게 개선되면서 고품질 발전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데이터교환 플랫폼을 통해 자료공유가 가능해지면서 통관 효율이 크게 개선됐고, 2019년 10월에는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유럽에 이르는 최초의 국제전자상거래 전용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현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복합운송 감독관리모델을 수립하고 디지털 통관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유럽 화물열차는 미래 중점사업으로 아라산커우 통관구의 컨테이너 교체 능력과 효율성 향상에 힘을 쏟고 있다. 훠얼궈스 통관구와 만저우리 통관구도 환적 능력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저우·청두·충칭·시안·우루무치는 중국-유럽 화물열차 집결센터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운행시간 단축과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안-독일 뒤스부르크 양방향 완행열차 노선을 주 1회에서 2회로 증편하고, 운행기간은 12일로 줄였다. 철도 화물운송 전자상거래 시스템(95306 시스템)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또 화물열차 운행정보 자동 수집, 화물차 추적 및 자동 안전적재 감지 기능 등을 통해 정보화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밖에도 중국-라오스 철도, 서부 육해 신통로 연결을 추진 중이다. 흑해와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남부철교 루트 개발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 물류망의 다양성을 높이고 해상·육상 복합운송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계산이다.

중국 언론들도 중국-유럽 화물열차의 성과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무역 확대와 지역경제 발전 등 여러 측면에서 중국은 물론 유라시아대륙 전체의 경제발전에 특별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기존의 항공과 해운 운송을 보완하는 친환경 물류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중 협력도 구체화
중국-유럽 화물열차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활용도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국가철로국은 한국에서 출발해 친황다오항을 경유한 뒤 몽골로 가는 국제 컨테이너 열차를 2018년부터 개통해 매주 1회 100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운송 중이다. 또 한국 부산항-양라항-우한-폴란드 노선도 2022년 7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2021년 3월부터는 LG그룹이 생산하는 LCD패널과 가전부품 등을 실은 ‘LG전용열차’가 한국-산둥성-광저우-폴란드 노선으로 운행 중이다.

한국 기업의 주요 운송품목은 전자제품, 기계류, 전자상거래 물품, 국제우편, 가구, 방역물품, 완성차 등이다. 과거에는 삼성과 LG 등 동유럽에 진출한 현지법인 요청에 의한 긴급부품 운송 위주에서 점차 전자, 자동차 기업의 부자재 운송 빈도와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추후 협의를 통해 배터리 등 유럽 수출이 필요한 핵심 품목으로 운송 품목을 확장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문제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크게 늘면서 한국 물량의 적체가 심화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이 자국국적 화물사 수출 화물을 우선적으로 배차하고 있어서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해외 환적 화물을 처리하고 있는 칭다오항은 물동량 대비 열차운행 배정횟수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한·중 철도당국은 정부 간 협력 강화를 통해 철도-해상 복합운송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놓고 다양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철도공사는 한국-중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을 잇는 7000km의 수송루트를 구축하기 위해 ‘국제복합운송 시범 운송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작년 8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국제복합운송협정에 가입했는데, 한국철도공사는 이 협정과 연계해 국제복합운송 시범운송사업을 성사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개최되는 OSJD 물동량 회의 등을 통해 한국의 수출입 물동량을 연 단위로 확정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올해 중국-유럽 화물열차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도착하는 한국 물동량은 전년 대비 34%가량 늘어난 4만3000 TEU에 달할 전망”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안정적인 수송 통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